양육
2010.07.17 16:24

하나님의 뜻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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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독자들에게 알리는 글

이 글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딜랜드 시에서 Bible Baptist Church와 부속 신학원에서 목회와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는 James W. Knox 형제가 설교한 갈라디아서 강해의 일부인 The Will of God 1, 2의 내용을 요약하고 옮긴 것입니다. 책이 아닌 설교라는 특성 때문에 듣기와 옮기기에 어려움이 있어 내용 전체를 번역 하지 못하고 요약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비록 요약이지만, 원래 강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손상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모두 역자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Part 2/2

 

사람들은 성경에 많은 것을 더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다른 것을 더하게 되면 혼란스러워 집니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뜻은 매우 분명하고 알기 쉽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을 더하게 되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고후 1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거듭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표적이나 느낌이나 경험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은 특별한 경험이 있고 은사가 있기 때문에 자기들만 특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무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자신의 뜻을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만 특별한 것을 말씀하셨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만이 특별한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두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 외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성령으로 인치시고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더 놀라운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 누구도 성경 이외의 더 특별한 계시를 받은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감춰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순종한다면 인생의 나머지 문제들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인생의 다른 문제들에 빠져서 거기에 몰두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1:3-4)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들로 인함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1장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이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악한 이 현 세상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삶은 여전히 세상과 일치한 채 살아 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도 교회가 세상과 일치해 가고 있습니다. 교리와 음악도 세상을 쫓아 갑니다. 교회가 이 악한 세상과 어울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맞추고 심지어는 성경까지 이 세상의 구미에 맞게 뜯어 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 7:13)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주에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이번 주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지난 주 일요일 이후로 7일이 흘렀습니다. 그 모든 날 동안, 그 모든 시간 동안, 그 모든 순간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가요? 단지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을 위한 일 말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담아 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의 인생 중 얼마만큼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기독교는 과거와 비교해 보았을 때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평가하더군요. “찬양도 똑같고 기도도 똑같고 설교는 조금 나아졌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시들어 버렸다.”

 

문제는 항상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과와 상관없습니다. 많은 결과를 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없고 적은 결과를 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외형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주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디라는 특정한 장소가 하나님의 뜻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아무런 훈련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불평할 수 있습니다. 불평은 옛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자연스럽게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은 새사람에게 속한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나이가 지긋한 형제님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님은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여행의 모든 부분은 주님께 감사함으로 연결되었습니다.

 

7.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17-18을 보세요. 너희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4:19도 보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잘 행하는 가운데 자기 혼을 그분 곧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겨 지키시게 할지어다.”

 

우리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를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의를 행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에 그 고난을 견뎌내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좋은 간증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지역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는 끔찍한죄를 짓게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하게 되고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서 질문을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때리고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르게 행하다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과 실라는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과 인내와 기쁨으로 고난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 결과 빌립보 간수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고 결국 그와 그의 가족은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았으며 빌립보 지역에 교회가 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은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난을 통해서 빌립보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을 때 계속해서 의를 행한다면 우리의 간증은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행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에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사람들은 우리의 증언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며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으셨지만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자세로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8.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6을 보세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너희는 음행을 삼가고 너희 각 사람이 거룩히 구별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그릇을 소유할 줄 알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같이 욕정의 욕망으로 하지 말고 아무도 어떤 일에서든 도를 넘어 자기 형제를 속여 빼앗지 말라. 우리가 또한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고 증언한 것 같이 주께서 그런 모든 자들에게 복수하시느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우리는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악합니다. 이 세상은 음행을 조장합니다. 이 세상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과 열정과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조절해서 음행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짐승처럼 살지 말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앞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본능에 따라 삽니다. 어떤 행위를 하면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할까 봐 걱정하는 짐승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본능에 충실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은 영화와 TV와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답게 살라고 거룩히 살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세요? 음행을 삼가고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매우 분명하고 명백합니다.

 

9.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1을 보세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우리 형제 소스데네는 같은 내용이 고린도후서 1장과 갈라디아서 1장과 에베소서 1장에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을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과 우리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하노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에 대한 것을 공부하지는 않겠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사도라는 것은 영적인 은사입니다. 선지자나 복음전도자도 영적인 은사입니다. 목사와 교사도 영적인 은사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하메드의 사도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하메드의 뜻대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선포하고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종교를 세웁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만을 위한 사도였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었고 예수 그리스도 자체였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던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업이 무엇이던 간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사원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부름 받은 회사원이고 의사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부름 받은 의사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섬기는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은사가 아니라 그 은사를 주신 분입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은사를 받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은사를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사용해서 우리 자신을 섬길 수도 있고 세상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영광이나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은사를 받았을까요? 우리는 모두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는 모두 하는 일이 다르지만 모두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지체라도 그것이 없으면 장애인이 됩니다. 새끼 손가락이 없어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온전한 몸이 아닌 장애를 가진 몸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하나의 은사일 뿐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사용해서 자기의 맡은 일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받은 은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데에다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받은 은사를 다른 데에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은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지역에는 수 백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교회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면 모두 굳건히 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선 교회가 있다면 모두 오늘 당장 망하고 문닫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사역의 목적인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교회를 시작하려고 하는 분들은 잘 생각해 보세요. 왜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까? 단지 어떤 지역에 교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세우는 것인가요? 아니면 설교를 하고 목사가 되고 싶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인가요?

 

만일 어떤 지역에 교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교회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목사가 되려고 교회를 세운다면 이미 그런 교회는 차고 넘치도록 많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교회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진정한 부르심 없이 단지 목사가 되기 위해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잘못된 동기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목사일지는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일 수도 있고 그냥 목사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회사원일 수도 있고 그냥 회사원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학생일 수도 있고 그냥 학생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집을 구매할 것인지 전세로 들어갈 것인지와 관계가 없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지 혹은 홈스쿨을 할지와도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홈스쿨을 해도 아이가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보내도 훌륭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이를 정규학교에 보내느냐 아니면 집에서 가르치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이를 거룩하고 깨끗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아이의 양육관 관련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옷을 어떻게 입고 화장은 어떻게 하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기준을 만들어서 그 기준에 맞으면 영적인 사람이고 그 기준에 어긋나면 육신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기준을 가지고 거룩하고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영적인 전쟁은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과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바르게 행하고 거룩하고 성별된 삶을 살고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적인 자동차가 있고 영적인 자동차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런 물질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10.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중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로마서 8:26-28을 보세요.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계획하고 계시고 중보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여러분이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고 성령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해 주십니다. 우리도 성령님처럼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들 하나님도 중보해 주시고 성령 하나님도 중보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아들 안에 있고 성령 안에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다른 형제를 비판하고 비방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합니다. 뒤에서 비방하지 말고 뒤에서 기도해 줘야 합니다.

 

어떤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그가 변하지 않는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는 것과 비교해 보세요. 성령님께서 지금 뭐하고 계신지 아세요? 오늘 교회에 나오지 않은 모든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도를 응답 받지 못한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시지만 그 기도는 정말 거의 응답 받지 못하고 응답을 받는다 하더라도 더디게 응답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목록을 보면서 응답 받지 못한 기도가 많음에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성령님의 응답 받지 못한 기도 목록을 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는데 기도 응답 받지 못하신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3:23, 4:7). 성령님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이러한 기도가 응답 받았을까요? 그리스도의 몸이 분열되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응답 받았나요?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다고, 혹은 기도의 응답이 너무 더디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을 생각해 보세요.

 

성령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하고 가르치시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중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을 향해서 쓴 뿌리를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진정으로 꾸준히 기도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세 가지

우리가 살펴본 위의 열 가지 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알고 행하고 온전히 행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세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제가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다닐 때에 저를 가르치던 주일 학교 교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받으실 만한 뜻과 완전하신 뜻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본문은 그런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일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고 어떤 일은 받으시지는 않지만 선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선하면서 완전한 것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은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희생은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는 자매들을 보면서 저 자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고 저 자매는 하나님의 받으실 만한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선하신 뜻보다는 받으실 만한 뜻이 더 낫겠지 싶어 받으실 만한 뜻 자매에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나중에 결혼식장에서 신부 친구 중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 자매를 보고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어이없는 얘기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런 식으로 진지하게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세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가지를 세 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종종 이런 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시거나 흠이 없으시거나 더럽혀지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고 더럽혀지지 않은 분이십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거나 한 아들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한 아이가 태어났고 한 아들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놀라우신 이이시거나 조언자이시거나 강하신 하나님이시거나 영존하는 아버지이시거나 평화의 통치자이신 게 아니라 놀라우신 이이시며 조언자이시고 강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는 아버지이시며 평화의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음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하신 뜻인가요, 받으실 만한 뜻인가요, 완전하신 뜻인가요? 음행을 하던지 음행을 하지 않던지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음행하지 않으면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하신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모든 일에 감사하면 그것은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온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감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선하지 않고 받으실 만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받으실 만하지는 않지만 선한 것은 없습니다. 로마서 12:2은 하나님의 뜻에 관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의 특징을 자세히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절에서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고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하게 드리거나 받으실 만하게 드리거나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몸을 드리는 것에 관한 세 가지 측면이지 각자 다른 단계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2절도 하나님의 세 가지 뜻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세 사지는 모두 함께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희생이 거룩하고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이어야 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행하는 하나님의 뜻이 선하면서 받으실 만하고 완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6:6) 하나님의 뜻을 알면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속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종인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너희를 위해 항상 기도로 뜨겁게 수고하나니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완전하고 완벽하게 서게 하려 함이라.”( 4:12) 하나님의 뜻을 행하되 완전하게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행하시되 온전하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좌절하거나 그만두지 말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선한 것인지, 받으실 만한 것이지, 완전한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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