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2008.07.13 05:01

우리는 왜 킹제임스성경을 믿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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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킹제임스성경을 믿는가?

Why we stand on the KJV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Part 2/2

 

* 이 글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딜랜드 시에서 Bible Baptist Church와 부속 신학원에서 목회와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는 James W. Knox 형제님이 라디오에서 강의한 Why we stand on the KJV의 내용을 요약 및 편역한 것입니다. 라디오 강의를 옮긴 것이라 듣기와 옮기기에 어려움이 있어 완전한 번역을 하지 못하고 요약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비록 내용을 요약한 것이지만, 원래 강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손상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원래의 강의가 라디오로 진행되던 것이라 다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역자가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모두 역자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오역은 역자에게 메일로 알려주세요. kjv74@hanmail.net

 

우리는 지난 시간에 왜 킹제임스성경을 믿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문제에 있어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바로 보존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완벽한 형태로 성경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온전히 보존하셨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떠한 오류도 없는 성경을 우리의 언어로 우리 세대에까지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아숭배의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들이 만든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경을 읽습니다. 여러가지 성경 중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을 선택해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번역자들의 번역 원칙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흠정역 성경의 번역자들은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중의적인 본문은 그대로 중의적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예를들면, 에베소서 3:19이 있습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the love of Christ)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본문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the love of Christ”는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들의 사랑”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이유는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성경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번역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들은 번역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번역자라면 원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번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도 중의성이 있는 그대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영어로 번역할 때에도 그대로 중의성을 가진 문장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독자들에게 성경을 해석해 주려하지 않고 성경을 그대로 번역함으로 독자들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의 해석자와 번역자가 할 일은 각기 다릅니다. 번역자는 번역에 충실해야지 해석해서는 않됩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을 정직하게 함으로 인해서 성경에 기록된 교리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성경의 번역자들은 자신들이 원문을 해석해서 자신들이 믿는 교리에 맞추어 성경을 번역함으로 새로운 교리를 창조해 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그대로 번역한 또다른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1]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을 증거하시는 동시에 하나님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2] 그러나 새로운 성경들은 이부분이 변개되어 있습니다.[3]

 

또한 킹제임스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증거하고 있는데 반해 다른 변개된 성경들은 그러한 사실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관하여 말한 그것들로 인해 놀라워하더라.”(눅 2:33)[4]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번역자들은 대부분 에큐메니칼운동[5]을 신봉하는 자들로 자신들이 믿는 특정한 교리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독자들은 그들이 해석한 성경을 번역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못된 교리가 성경적인 것인양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출판은 큰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성경번역자들 중에는 종교적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습니다. 현대 성경의 번역자들 중에는 카톨릭 교인, 유대인, 혹은 유니테리안 같은 이단들이 섞여 있습니다. 누가 성경을 번역하든 상관하지 않는 독자들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문제에 있어서 번역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정직한 번역자가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자신이 믿는 교리를 성경번역 속에 넣어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현대 번역본에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이 정당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또 다른 현대 번역본에서는 구원에 있어서 회개는 전혀 필요치 않은것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인간의 다른 행위를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성경도 있습니다. 현대의 부패한 성경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이나 화목제물에 대한 말씀과 같은 구원에 대한 부분을 변개시켰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건전한 교리를 담고 있는 성경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지난 400년 동안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번역자들은 성경번역에 있어서 많은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이러한 장치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게 아니라 번역자들로 하여금 해석하게 합니다. 예를들면, 인용부호 같은 것이 있습니다. 현대 번역본들에는 본문에서 대화가 나오는 부분은 인용부호로 묶어버리지만 실제적으로 대화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6] 이를테면 요한복음 3장이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10절에서 시작하신 말씀을 어디서 끝내신 것이고 어디부터가 사도 요한의 진술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이는 13절까지라고 하고 다른 이는 15절까지라고 하며 17절까지라는 주장도 있고 21절까지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스어 본문에는 어떠한 인용부호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변개된 성경의 번역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 원래의 본문의 의도를 훼손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특히 테트라그라마톤[7]이라 불리우는 주님의 이름을 번역할 때 더욱 그러 합니다. 테트라그라마톤은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주님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4개의 자음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읽을 수도 없고 번역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것을 “LORD”라고 표시한 것입니다.[8]

 

다른 방법으로는 번역할 수 없기에 테트라그라마톤은 일관되게 “LORD”[9]라고 표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Lord”라는 단어와는 당연히 다른 단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Lord”는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나 남편 등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 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너무 경외한 나머지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므로 이름의 발음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주님의 이름(테트라그라마톤으로 부르는)은 비록 자음으로만 이루어졌지만 부르는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기 위해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저 주님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결국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히브리어 네 철자로 구성된 테트라그라마톤을 발음하는 법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테트라그라마톤을 유대인들이 부르는 방법대로 주님이라고 번역하면서 기존의 Lord와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LORD로 표시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정직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번역이 될 수 없는 것은 번역하지 않아야 합니다. 대문자로 표시된 것을 읽을 수 없는 것처럼 테트라그라마톤도 읽을 수 없으므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여호와”나 “야훼”라고 옮기는 것은 번역이 아닌 다른 형태의 해석인 것입니다. 성경번역은 그대로 번역으로 끝나야지 해석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해석을 하려면 저자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경우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번역에 있어서는 해석을 할 수도 없고 해석이 용납될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10]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원문에서 사용하는 중의적인 표현은 그대로 살려둠으로 인해서 독자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they, he, she와 같은 대명사를 그대로 사용함으로 독자로 하여금 그것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되짚어 보며 성경을 읽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현대의 번역본들은 대명사를 실명사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다른 형태의 해석이 됨은 물론이고 충실한 번역도 아닙니다.

 

킹제임스성경에는 번역자들의 해석이 없습니다. 오직 원어의 충실한 번역만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성경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자신들이 번역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특정한 교파의 사람들만의 위하여 성경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성서공회나 성경출판사들은 특정한 사람들의 입맛에 맛는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중 일부만 포함된 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미국성서공회의 번역위원장인 유진 니다에 의하면 성경번역은 내용의 동등성만 유지하면 충분한 것이라고 합니다.[11] 그러나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을 위해 번역된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왜 해석이나 의역을 하지 않고 직역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이유를 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경건한 학자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파를 위해서 성경을 번역한 것도 아니고 더 많은 판매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번역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현대 성경 번역자들과는 다르게 순수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던 시기에는 신학이 철학에 물들기 이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이 철학에 물들지 않게 번역되게 하기 위해서 17세기 초에 성경이 번역되도록 하셨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고 나서야 철학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떨치며 신학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철학과 철학적 사고방식에 물든 현대의 번역자들은 성경을 순수하게 번역할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가 그러했듯이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도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믿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번역하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번역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이 세상의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번역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번역자들이 지적으로, 또 영적으로 합당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성경 번역에 있어서는 단순히 지적 능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적 능력과 영적 능력이 모두 충족되어야 성경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영적능력과 지적능력에 있어서 모두 탁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철자의 정확성을 위해서 150여년에 걸쳐서 4번의 교열이 이루어졌습니다. 현대 번역본들이 주는 가장 큰 유익은 50여년이 지나면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출간된지 수백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어 성경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동안 수많은 선교사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자신들이 복음을 전해서 구원한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결국 킹제임스성경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된 다양한 성경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영어라는 언어를 세월의 공격에 맞서 지켜내었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언어들은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매우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다른 언어에서는 불과 수십년 전에 기록된 글이 현대에는 매우 어색한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같은 언어인데도 수백년 전에 기록된 문장이 현대의 문법으로는 해석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은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여전히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치고 킹제임스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많은 찬송가들이 킹제임스성경의 언어(특히 시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예배의 언어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전수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성경이 바뀌지 않고 찬송이 바뀌지 않음으로 동일한 구절들이 계속 반복되어 지고 결국 그 반복되는 말씀이 쉽게 기억되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고 열매맺게 됩니다.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수 1:8)

 

오늘날 킹제임스성경은 이 세상의 빛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또한 바른 본문에서 바른 방법으로 번역된 신실한 번역본으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언제나 진리이며, 인간의 사상에 따라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말씀이므로 누구나 신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성경을 구매하라고 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새로운 성경의 열매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성경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구원받고 건전한 교회들이 세워졌습니까? 새로운 성경들로 인해서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까? 만일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성경들을 재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믿었던 킹제임스성경을 동일하게 믿고 있습니다. 옛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와 우리의 선조들이 신앙을 세웠던 그 길, 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친구들이여 하나님의 반석인 킹제임스성경 위에 서십시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렘 6:16)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성경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완벽한 성경을 온전히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선호하는 성경이 아닌 하나님께서 선호하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인간의 생각이나 사상이 들어가지 않은 성경입니다. 오늘날 변개된 대부분의 성경들은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번역자가 원문을 해석한 것입니다. 해석은 번역이 아니면 성경의 번역자들은 성경을 해석해서는 않됩니다.

 

오늘날 성경 변개는 번역자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번역자가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번역자 자신의 구매에 맞게 성경을 뜯어고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성경에는 번역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가장 비참한 일은 오늘날 성경 번역자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번역자들이 번역한 성경이 어떻게 번역될는지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될 당시에는 성경 번역자들이 철학에 물들기 이전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 성경 번역자들은 철학과 과학의 영향을 대단히 크게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철학과 과학의 방법과 잣대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출간된지 수백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어성경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선교사들이 킹제임스성경에서 선교지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오랜 세월동안 변하지 않았기에 계속 반복해서 읽을 수 있었고 암기할 수 있었으며 결국 그 말씀이 마음에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려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1] King James Bible에는 Whose are the fathers, and of whom as concerning the flesh Christ came, who is over all, God blessed foe ever. Amen.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주

[2] 한글개역성경은 본문에서는 성경을 변개하지 않았지만 각주에서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 세세에 찬양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부분을 제거하였습니다. 역주

[3] Revised Standard Version에는 to them belong the patriarchs, and of their race, according to the flesh, is the Christ. God who is over all be blessed for ever.라고 하여 이 구절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부분을 없애버렸습니다. 역주

[4] 한글개역성경은 눅 2:33에서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라고 함으로 요셉이 예수님의 친부인 것처럼 변개시켰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역주

[5] 에큐메니칼운동,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교회일치운동입니다. 각각의 교회는 서로 다른 교리를 믿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교리를 믿는 교회들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교회들이 믿는 교리의 교집합만을 추려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서로 같은 교리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특정한 교단이 믿지 않는 교리는 성경에서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변개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역주

[6] 한글개역성경에는 인용부호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의성경이나 표준새번역과 같은 개역성경이후에 번역된 성경들에는 인용부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역주

[7] 테트라그라마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말입니다. 원래의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어를 눈으로 읽을 수는 있지만 입으로 소리내어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테트라그라마톤은 하나님의 이름의 철자 4개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변개된 성경들에서는 임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역주

[8] 한글 성경의 경우, 테트라그라마톤을 흠정역 성경에서는 굵은 고딕체로 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의 경우 여호와라고 하여 단순한 번역이 아닌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주

[9] 테트라그라마톤은 항상 모든 철자가 대문자인 LORD인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주

[10] 의역도 일종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역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석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번역에 해석이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합니다. 역주

[11] 내용의 동등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성경을 의역한다는 것입니다.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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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묵 2008.07.21 21:27
    아주 훌륭한 내용입니다.
    KJV는 행 12:4의 이스터처럼 독자적인 번역 면에서만 우수한 게 아니라,
    원문에 없는 정보를 함부로 첨가하지 않고 번역할 수 없는 것은 정직하게 번역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우수합니다.
    “wine이 포도주냐 포도즙이냐?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이 4형식이냐 5형식이냐?”
    원문이 중의성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 중의성까지 그대로 옮기는 게 가장 훌륭한 번역이죠.
    인용부호라든가 특히 예수님의 직접 말씀만 붉게 처리하는 거.. 솔직히 다 필요 없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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