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구원의 길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Salvation Sermon Series를 의역한 것입니다.
1. 우리는 오늘 성경을 십여 군데 찾아볼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오늘 이 공부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주셨는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 주셔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1.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2. 먼저 로마서 6:23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짧은 구절이지만 매우 중요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3.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다”라는 말은 영어로는 “is”입니다. “is”는 수학에서는 등호입니다. 즉 “is”의 앞과 뒤가 같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선물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도 동일하게 “is”가 사용되어 하나님의 선물과 영원한 생명이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is”를 주목해서 보세요. 여기서 “is”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인 사망과 하나님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죄의 삯인 사망과 하나님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5. 한 편에는 사망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과 생명을 결정짓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하는 행위나, 하나님을 위해 이루는 업적이나, 인간의 존재 자체가 아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에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 가운데 영원히 사는가, 혹은 둘째 사망을 맞으며 불 호수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 당하게 되는가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습니다.
2. 단 하나라도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인입니다
6. 로마서 5:12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7. 왜 모든 사람이 죽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14절도 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
8. 여러분이 아담이 지은 동일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지은 죄는 지은 적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여러분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다 다른 죄를 짓고 있지만 모두 죄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짓는 동일한 죄를 자신은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처럼 끔찍한 죄를 짓지 않았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처럼 심하게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9. 심지어 감옥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자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면 자신은 그리 심한 죄를 지은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종류와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작은 죄나 강도가 약한 죄를 지었다고 해서 죄를 지었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짓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죄를 지은 적이 있다면 죄인인 것입니다.
10. 성경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2:10). 문제는 어떤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죄를 지은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죄의 종류와 상관없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만이 유일한 기준입니다
11. 로마서 3:23을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12. 사람들이 자신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기준을 스스로 정하려고 하면 마귀가 즉시 와서 미혹합니다. 마귀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듭니다.
13. 예를 들면,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기준 중 가장 첫째 자리에 오는 것은 교회입니다. 자신들이 어떤 특정한 교회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인가를 획득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교회만이 유일한 교회이기 때문에 자신들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인이고, 따라서 자신들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더 영광스럽고 잘났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기준이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가 기준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14. 반면에 교회에 위선자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죄인들과 타협자들과 도둑놈들과 변태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기준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입니다.
15. 성경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 옆에 다른 무엇이나 누구를 놓는다면 다 그 기준에 한없이 미달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가, 얼마나 여러 번 죄를 지었는가, 혹은 얼마나 심각한 죄를 지었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혹은 얼마나 적은 죄를 지었는지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렀는지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을 비교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죄가 있습니다
16.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습니다. 큰 죄냐, 작은 죄냐, 혹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냐, 적은 죄를 지었냐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가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이사야서 59장을 보겠습니다.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사 59:1)
17.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짓고,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깊은 죄의 구덩이에 빠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닿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2절)
18. 인간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방금 읽은 본문이 바로 그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심각한 죄를 지어도 구원해줄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끔찍한 죄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말을 하거나, 무엇을 하거나, 어떤 종교 행위를 하더라도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죄를 뚫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죄를 뚫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19.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이 모든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켰다 해도 여전히 여러분이 과거에 지은 죄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고 묵주를 돌리고 성례를 치르고 침례를 받고 신조를 외운다 할지라도 여전히 여러분이 과거에 지은 죄는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20.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전에 한 일이나 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 할 일을 통해서는 이미 지은 죄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5. 앞으로 할 일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바꿀 수 없습니다
21. 성경에서 가장 오랜 된 책인 욥기를 보겠습니다. 욥기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여기서 욥이 이 문제를 가지고 고뇌하면서 울부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욥의 울부짖음이었고 또 인간의 울부짖음이기도 합니다. 욥기 9장입니다. “내가 사악할진대 어찌하여 헛되이 수고하나이까?”(욥 9:29)
22. 욥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자신이 악하다면 무엇을 하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미 저지른 죄로 인해 죄인이 되었다면 앞으로 무엇을 하든 과거에 이미 지은 죄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문제의 본질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구원의 첫 단계입니다. 구원의 첫 단계는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신의 상태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23. 계속해서 다음 절에 나온 욥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눈 녹은 물로 내 몸을 씻고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손을 깨끗이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도랑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마저도 나를 몹시 싫어하리이다.”(30-31절)
24. 만일 여러분이 물에 잠긴 적이 있다거나(침례), 누군가 여러분의 머리에 물을 뿌렸다거나(세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는 이유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날 자신이 전혀 씻음 받지 못한 더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며 안타깝게도 그 때는 구원을 받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될 것입니다.
25. 계속해서 욥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그분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시므로 내가 그분께 대답할 수도 없으며 우리가 함께 재판을 받으러 갈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는 우리 둘 위에 손을 얹을 중재인도 없도다.”(32-33절)
26. 욥은 지금 자신이 최악의 상태에 처해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이 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에게 나아오시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욥의 죄가 그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누군가 서서 중재를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위에 손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손을 얻을 수 있는 존재를 욥은 찾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분이 와서 중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27. 그러나 욥은 그러한 중재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살던 시대에는 그런 중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에 실패했고, 노아도 실패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실패했고,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과 다윗도 실패했고, 엘리야와 침례인 요한도 실패했습니다. 지난 수천 년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서서 양쪽에 손을 얹을 중재인을 찾았지만 실패했습니다.
28.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그토록 높이고 그분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지 아십니까? 구원자 없이 하나님과 대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설 중재인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과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생각하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6. 하나님께서는 충만한 때가 이르자 중재자를 보내셨습니다
29. 제가 어떻게 구원받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구원도 받지 못한 채 구약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보니 노아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구원자가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역시 구원자가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구원자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며 구약 성경을 읽는 동안 성령님께서는 제 마음에 깨달음을 주셔서 저도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0. 갈라디아서 4장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속박 당하였느니라.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갈 4:3-5)
31. 충만한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수천 년 전에 욥이 울부짖으며 간구했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이 세상에 하나님이면서 사람인 한 분을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의하면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며(마 1:23), 요한복음 1장과 골로새서 1장에 의하면 창조자이시고, 요한복음 10장에 의하면 아버지와 함께 계신 분이시며, 요한일서 5장에 의하면 아버지와 성령님과 더불어 하나를 이루며 증언하시는 분이십니다.
32. 충만한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대언자를 보내신 것도 아니고, 제사장을 보내신 것도 아니고, 성경 교사를 보내신 것도 아니고, 왕을 보내신 것도 아니라,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의 구원자와 중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한 구원자와 중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복된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구원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분에 대한 생각으로 완전히 고정되고 나면 어떤 설교나 부흥회나 찬양으로도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7. 죄사함과 구원의 확신과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옵니다
33. 히브리서 10장을 보겠습니다.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랬더라면 경배하는 자들이 한 번에 깨끗하게 되어 더 이상 죄들을 의식하지 아니하였을 터이므로 그것들을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그러나 그 희생물들에는 해마다 죄들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나니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라.”(히 10:1-4)
34. 우리가 방금 읽은 본문에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과 이 세상 종교의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이 세상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종교 행위를 하고 계명을 지키고 의식을 수행해도 여러분의 양심은 여전히 여러분을 정죄할 것입니다. 성경은 황소나 염소나 어린양이나 비둘기의 피로는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죄의 본성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으며 붉게 물든 죄를 씻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5. 짐승의 피나 종교 행위나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년 다시 똑 같은 제사를 드리고 종교 행위를 하고 의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제사를 드리고 의식을 치르더라도 죄가 제거되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무의미한 똑 같은 일만 반복합니다.
36. 우리 시대에도 은혜가 아닌 율법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선행이나 의식이나 제사를 신뢰하는 사람은 모두 은혜가 아닌 율법아래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는 자신의 죄가 진정으로 제거되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으면 자신의 죄가 진정으로 용서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양심은 여러분이 그 무슨 일을 하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여러분을 정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7.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을 가지고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해 주신 일을 통해서만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한 일을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는지 알지 못하기에 확신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해 주신 일을 통해서는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 하신 일을 만족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며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분을 통해서만이 참된 평안과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38.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죄로 인한 번제 헌물과 희생물들은 주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였나이다, 하시느니라. 위에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희생물과 헌물과 번제 헌물과 죄로 인한 헌물은 주께서 원치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시나이다, 하셨는데 그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뒤에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셨으니 그분께서 첫째 것을 제거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5-10절)
39. 10절에서 말하는 “이 뜻”은 누구의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마 26:39).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마련된 그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몸을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드리셨습니다.
40. 여러분의 모든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지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예수님의 대속의 의미를 여러분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분의 몸을 통해 이루신 일에 달려있습니다. 저의 구원과 거룩하게 됨과 죄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는 모두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달렸습니다. 저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 막았던 저의 죄는 모두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41.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 위에 있는데, 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신 겁니다.
42. 베드로전서 2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 2:24) 나무에 달린 그분의 몸으로 저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43. 인간과 하나님을 갈라 놓은 것이 무엇입니까? 죄였습니다. 저에게는 저의 죄를 담당하여 제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저를 대신해서 죽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대신해서 죽어주심으로 저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던 것은 사라져버렸습니다.
44. 다시 히브리서 10장으로 돌아가서 나머지 구절을 마저 보겠습니다. 10절에서 “단 한 번 영원히” 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 보십시오.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구원받았다가 잃어버렸다가 다시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45. 구원받고 나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죄를 짓는 것은 이미 받은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고 나서 짓는 죄는 영적 성장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 구원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그 사람의 행위와 관련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해 주신을 일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였는지와 관련 있는 것입니다.
46. 저는 다른 사람의 종교를 비방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확실하고 단순하게 성경에 복음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제사장마다(every priest)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take away) 못하거니와”(11절)
47. 성경은 인간 제사장의 섬김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대인 제사장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종교의 “모든 제사장(every priest)”의 모든 제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교의 제사나 제사장으로도 죄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성경이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한다(take away)”고 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죄들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동사가 과거형으로 되어 있지 않고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 천년 전에만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로 죄를 제거하지 못한 게 아니라 지금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48. 사람들이 왜 지금도 제사장(priest, 사제)에게 가서 계속 제사를 드리는 아십니까? 계속해서 드리는 그 제사들로 그들의 양심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그런 제사를 많이 드려봤자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제사장을 통해서는 아무리 많은 제사를 드리고 정성을 다해도 불법과 죄들이 전혀 제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양심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들이 단 한 번에 영원히 모든 죄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구원도, 구원의 확신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평안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49. 저는 다른 사람의 종교를 비방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제사장(사제)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희생제사(미사)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닌 마귀의 제사장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에 영원히 제사를 드리셨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제사를 한 번 드리셨다면 더 이상 죄를 제거하기 위한 다른 제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50.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12-14절)
5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저의 믿음과 신뢰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었을 때, 저는 저의 모든 죗값을 치르신 분께 제 믿음과 신뢰를 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의 모든 죗값을 치르기 위해 한 번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예수님을 저의 구원자로 받아들였을 때, 저의 모든 죄는 사라진 것입니다.
52. 제가 하늘나라에 가는 이유는 제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저에게 완전한 구원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원받은 이유는 제가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저의 구원자께서 저의 모든 죗값을 치러주셨기 때문입니다.
53. 만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자신이 구원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감사함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54. 구원은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이루어 가는 게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구원을 이루어 간다면 우리가 구원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에 우리가 무엇을 더하게 된다면 그 구원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엉터리 구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에 자신의 행위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에는 아무것도 더할 게 없습니다. 그저 감사함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55.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은 저의 혼을 구원하기에 충분합니다. 저는 거기에 더할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더해서도 안 됩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만으로 제가 구원받을 수 없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부족하다면 저는 결코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피를 흘리고 값을 치르신 것에 제가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에 행위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제가 무엇을 해야, 어떤 행위를 해야 그분의 피로 이룬 대속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완성하신 일에 저의 행위를 더한다는 것 자체가 그분을 완전히 모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56. 성경은 저의 모든 죄가 제거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저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완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그 일은 바로 저를 위한 일이었다는 겁니다.
8.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57. 요한복음 19장을 보겠습니다. “이 일 뒤에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일이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 기록을 성취하시려고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이제 거기에 식초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놓여 있으므로 그들이 해면을 식초로 적신 뒤에 우슬초에 달아 그분의 입에 대니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신 뒤 숨을 거두시니라.”(요 19:28-30)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58. 계속해서 디모데전서 1장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딤전 1:15)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59.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무엇이라고 하신지 아십니까? “다 이루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죄인들을 위한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 구원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0.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구원을 시작할 테니 너희가 완성하거라.” 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거의 다 이룬 구원을 줄 테니 너희가 마무리하거라.” 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주님께서 하신 일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두 예수님을 거절하고 자신을 믿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 구원받으려고 하거나 예수님을 믿으면서 자신의 행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구원과 한참 동떨어진 생각입니다.
9.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음
61. 고린도전서 15장을 보겠습니다. “또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을 너희에게 밝히 알리노니 너희 역시 그 복음을 받았으며 또 그 가운데 서 있느니라.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고전 15:1-4)
62.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음입니다. 만일 누구라도 이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닙니다. 복음은 여러분이 자신의 죄악된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여러분에게 구원과 거룩함과 완전함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입니다.
63. 요한복음 3장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선물로 주셔서 그 아들을 믿는 사람들은 언젠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게 아니라, 아들을 믿는 바로 그 순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64.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17-18절)
65.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20:31).
66. 자기가 구원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온전히, 전적으로, 진심으로 믿는지 자문해 보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거나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67. 여러분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겁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이룸으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십자가 위에서 끔찍하게 죽도록 하지 않았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주님을 여러분의 개인적인 구원자로 신뢰하기 원하십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혼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68. 지구온난화, 원유값상승, 자원고갈, 부정부패, 환경오염 등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 외에 개인적인 문제로 불평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로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69.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렀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불평을 해도 기뻐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된다면 전 우주에서 가장 놀라운 분이 자신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