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2014.01.21 22:42

성경의 구원-9 에티오피아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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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에티오피아 내시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Salvation Sermon Series를 의역한 것입니다.

 

1. 사도행전 8장과 이사야서 53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8장을 보겠습니다.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 남쪽으로 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 하였는데 그곳은 사막이니라. 그가 일어나 가는데, 보라,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여왕 간다게 밑에서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아 큰 권세를 가진 내시가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자기 병거에 앉아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그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되, 가까이 가서 이 병거에 합류하라, 하시거늘 빌립이 거기로 내시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이 올라와 자기와 같이 앉을 것을 청하니라. 그가 읽은 성경 기록은 이 부분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장으로 가는 양같이 끌려갔으며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하며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밝히 드러내리요? 이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하였기 때문이로다, 하였더라. 내시가 빌립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원하노니 대언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이것을 말하느냐? 자기를 가리키느냐,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을 가리키느냐? 하매 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바로 그 성경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선포하니라.( 8:26-35) 일단 여기까지 읽고 우리가 읽은 것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우리가 방금 읽은 본문을 보면 한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에티오피아인이었으며 내시였고 여왕의 큰 신임을 얻고 있으며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나 회사나 가정의 재정을 맡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곳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은 에티오피아라는 한 국가의 재정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간다게 여왕의 신임을 얻어 한 국가 전체 재정을 책임진, 오늘날로 보면 재무부장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3. 이 사람에 대한 정리를 간략하게 하면, 이 사람은 선한 사람이었고, 세상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국가에서 인정받는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으로만 큰 성공을 거둔 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26절에 의하면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은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경배해야만 했습니다.

 

4. 유대인들의 성경은 내용적으로는 우리의 구약성경과 같지만 배열이 다릅니다. 그들의 성경은 역대기하로 끝나는데 역대기하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내게 주시고 또 내게 명하사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해 집을 건축하게 하셨나니 그분의 모든 백성 중에서 너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누구냐?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니 그는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대하 36:23)

 

5. 구약 시대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예루살렘에 와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은 종교적이었습니다. 종교적인 마음을 가지고 바른 종교생활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러 온 것입니다.

 

6. 게다가 이 사람은 능력 있고 종교적인 사람일 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차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마차는 오늘날의 자동차처럼 승차감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도로도 전부 지금처럼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악조건에서도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찾아보는 사람이었습니다.

 

7.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실을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입으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고백만 하는 게 아니라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공부에도 참여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온 에티오피아 내시처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그분을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하고 종교생활도 하고 심지어 바른 성경도 읽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그분을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8. 따라서 저는 선하고, 종교적인 열심도 있고, 하나님께 경배하러 나오고, 성경을 열심히 읽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 하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9. 선한 행위를 하고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성경을 읽는 것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 한번도 이러한 것이 구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한다고 해서 구원받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10. 이제 이 사람의 다른 면을 좀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마차에 앉아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29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되, 가까이 가서 이 병거에 합류하라(join), 하시거늘

 

11. 여러분에게 약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성경에 의하면 틀림없는 사실을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즉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교회에 무엇을 갖다 바치거나, 어떤 특별한 일을 해야 하거나, 어딘가에 가입해야 하거나,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에 대해 듣고 그분을 믿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이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12. 선하고 종교적이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성경을 읽는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 천사를 보내지도 않으셨고 특별한 영을 보내지도 않으셨고 환상을 보여주지도 않으셨고 직접 내려오셔서 음성을 들려주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구원방법입니다.

 

13. 성경은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21).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10:17). 이런 얘기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하나님의 관점과 계획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구원방법입니다. 이 외의 다른 어떤 방법도 하나님의 구원방법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단순한 구원방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망쳐버리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14.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구원받는 방법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술을 끊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술을 끊는 것은 구원받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술을 한 모금도 마신 적이 없지만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약을 끊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약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지만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15.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전혀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에 다니거나 지역 교회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물침례를 통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고 침례인 요한이 요단강에서 계속해서 침례를 주도록 하셨을 겁니다.

 

1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무한하신 지혜로 사람이 구원받는 방법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야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고 그것을 들은 사람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17. 계속해서 다시 30절부터 보겠습니다. 빌립이 거기로 내시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이 올라와 자기와 같이 앉을 것을 청하니라.(30-31)

 

18. 제가 지금부터 매우 중요한 진리를 하나 말씀드릴 테니 구원받은 분들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인 여러분과 저를 이 세상에 남겨두셔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성경이 구원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게 하신 겁니다.

 

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에 자신을 내 맡겨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입을 열어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 전도라면, 예수님을 아는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0. 다시 31절부터 보겠습니다. 내시가 이르되,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이 올라와 자기와 같이 앉을 것을 청하니라. 구원받기 원해서 먼저 전도자를 초청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전도하는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 구원받게 되는데 여기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1. 내시는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라고 하면서 빌립을 청했습니다. 그는 제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라고 한 것입니다. 내시는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는 흔히 얘기하는 준비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22. 빌립이 그대가 읽은 것을 깨닫느냐?” 라고 물을 때, 내시는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당신 갈 길이나 가시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종교가 있어요.”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은가요? 만일 여러분도 알기를 원한다면 제가 성경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23. 35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바로 그 성경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선포하니라(preached). 빌립은 내시가 읽고 있던 성경 구절을 통해 예수님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내시에게 예수님에 관해 설교(preaching)한 것입니다. 그가 읽고 있던 부분을 이사야서에서 찾아보기 전에 한 가지만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24. 설교(preaching)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강해설교, 주제설교, 간증설교, 부흥회설교 등 장소나 방법이나 목적이나 본문에 따라 설교의 종류를 나누기도 합니다. 설교의 정의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야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설교자가 소리를 지르지 않고 조용히 성경을 가르치면 그는 설교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의하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설교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25. 빌립은 내시에게 예수님을 선포했습니다(preached). 다시 말하면 빌립은 내시에게 예수님에 관해 설교한 것입니다(preach). 그러나 그는 내시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강단을 주먹으로 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방방 뛰지는 않았을 겁니다.

 

26.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님에 관해 설교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소리를 지르면서 첫째는 어떻고 둘째는 어떻고 하는 게 설교가 아니라 성경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게 바로 설교요 선포라는 것입니다.

 

27. 이제 이사야서를 53장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report)을 누가 믿었느냐?( 53:1) 여기서 모든 게 시작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전한 것(보고, 이야기, 또는 소식)을 누가 믿었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소식을 전해줄 것입니다. 제가 전하려는 소식은 날씨나 책이나 뉴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전하려는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주셨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것은 우리가 전한 소식을 누가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이 소식을 믿는 것입니다.

 

28. 같은 구절의 뒷부분을 보겠습니다.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이 세상까지 오셔서 손을 내밀어 우리를 잡으시려는 하나님께 우리가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전해주시고 계시하기를 원하시는 소식은, 여러분이 구원받으려고 뛰거나 오르거나 붙잡거나 이루거나 투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여러분을 위해 해 주신을 일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29. 계속해서 2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30. 여기서는 여러분이 예수님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자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여러분을 구원하려고 하실 때 여러분은 먼저 그분이 누구신지를 봐야 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분은 가난했고, 교육받지도 못했고, 육신적으로는 매력이 없었으며, 대단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대단한 단체를 세운 것도 아닙니다.

병원을 세우지도 않았고 자선단체를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지도 않았고 압제하던 로마 정권을 무너뜨리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33년 반을 사는 동안 대단한 일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우아함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도 없었습니다. 조금도 없었습니다.

 

31.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33년 반을 사셨고 생애의 대부분은 목수의 일을 하면서 보내셨고 마지막 3년 반 동안은 대부분 교리를 가르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별로 흠모할만한 게 없습니다.

 

32. 그래서 성경은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 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예수님은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욕을 할 때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욕을 하면서 그분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처나 모하메드나 교황의 이름으로 욕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욕을 합니다.

 

34. 거부되었으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셨는지를 알려주겠다고 해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35.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 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예수님으로부터 얼굴을 감추는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하려고 할 때나 이미 했을 때 누군가 본 사람이 없는지 살펴봅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면 일단 안심을 하지만 마음이 온전히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누군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기 때문입니다.

 

36.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지켜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피하고 그분으로부터 자신의 얼굴을 감추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을 때나 예수님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찔림을 받는 이유도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보셨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7. 아담은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경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붙잡히는 날에는 지옥으로 던져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38.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찾으시고 붙잡으시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으로 던져버리기 위해 사람들을 찾으시는 게 아니라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붙들리지 않으면 여러분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겁니다. 주님께로부터 도망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됩니다.

 

39.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주님께서 지옥에 던져버리기 위해서 자신을 찾으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정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36) 주님께서 그들을 찾으시는 이유는 이미 정죄 받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3:17)

 

40.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저는 이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예수님을 거부하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41. 우리나라에는 예수님을 멸시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목사를 귀하게 여깁니다. 사람들은 영화배우나 운동선수나 가수나 부자나 모델이나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나 남편이나 아내나 아이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예수님보다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을 무시하거나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귀하여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42.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오늘 이곳에 계신 분들 중에서 구원받은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도 예수님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왕 중의 왕이시며 주 중의 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나 어머니나 남편이나 아내나 아들이나 딸이나 사장이나 이웃이나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보다 훨씬 더 존중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왕이시고 주님이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43. 여러분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는 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여자를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는 게 아닌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44. 계속해서 4절을 보겠습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45. 여기서는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실제로 하신 일에 대한 보고(report)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왜 고난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거나 어떤 본을 보이기 위해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4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을 위해 죽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지만 성경을 위해 죽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고통을 짊어지고 슬픔을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47.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지옥에 있는 꺼지지 않는 불길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고통과 슬픔을 담당하셨다는 소식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자신들의 고통과 슬픔을 모두 예수님께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을 믿고 받아들였다면 그들의 고통과 슬픔은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대가를 지불하신 것으로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영원에서는 고통과 슬픔을 모르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48. 계속해서 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49. 이곳에 있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모든 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다( 3:10)고 말씀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3: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0. 만일 여러분이 죄를 지은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게 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저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저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51.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왕좌에 앉아계십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면 이것의 소유권에 관해서는 누구도 논쟁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그곳에 누가 가고 누구는 갈 수 없는지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하나님의 것이고 그분은 그곳의 왕이십니다.

 

52.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에는 어떠한 죄도 결코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의 죄나 불법이나 범법도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늘나라에 죄가 들어가게 되면 하늘나라는 더 이상 하늘나라라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어떤 죄라도 들어올 수 없게 하신 겁니다.

 

53. 문제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들어오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삼위일체 중 한 분으로서의, 요일 5:7 참고)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셔서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상처를 입고 상하고 징벌을 받고 채찍에 맞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벌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우리의 죗값을 치르신 겁니다.

 

54.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님, 주님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은 저를 위한 일이었다고 믿습니다. 저의 구원은 오직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라고 한다면, 성경은 여러분이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 아무런 죄를 보실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죗값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치르신 것으로 인정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십자가 위에 있던 예수님께로 모두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서 아무런 불법도 보지 못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모든 불법이 십자가 위에 있던 예수님께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서 아무런 범법도 보지 못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모든 범법이 십자가 위에 있던 예수님께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겁니다. 여러분이 죄 때문에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가 기록하고 에티오피아 내시가 읽던 소식(report)이었습니다.

 

55. 계속해서 6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6.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무거움과 부담이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아십니까?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원인은 모두 죄 문제에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정죄하고 있기 때문에 부담과 불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죄책감 때문에 마음은 늘 불안한 가운데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은 죄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은 것입니다.

 

57. 주님께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을 정죄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든 죄를 제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죄책감을 제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죄를 끄집어 내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두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개인적인 구원자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구원자 안에서 편안하게 안식하기를 원하십니다.

 

58.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죄 문제를 해결하는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과거의 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몰랐고 어떻게 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죄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십자가 앞에 죄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예비해 주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구원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59.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자신의 문제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이 결코 처리할 수 없었던 죄 문제를 내려놓으면서 주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여기 저의 모든 죄를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이것을 결코 해결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저를 위해 저의 모든 죄를 대신 해결해줄 구원자를 마련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 저의 죄를 모두 십자가에 달리신 저의 구원자에게 놓으시길 원합니다.” 이렇게 믿는 게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60. 다시 사도행전 8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36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어떤 물에 이르매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무엇이 내가 침례 받는 것을 방해하리요? 하매

 

61.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도 마귀가 보낸 사악한 영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은혜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항상 마귀가 보낸 일꾼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씨를 인간의 마음 밭에 뿌리면 사악한 영인 공중의 새가 와서 그 씨를 먹어버린다고 합니다.

 

62.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듣고 받는 여러분의 마음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내시는 마차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누군가가 한 가지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침례, 너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

 

63. 내시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구원받지 못한 분들도 종교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구원받은 분들도 구원받기 전에 종교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구원받기 전까지는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어디든 나가서 종교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고 성령님께서 갈보리 십자가로 인도해 주시어 예수님을 믿어야겠다는 확신이 들게 되면 무엇인가가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분 사이에 끼어들어 여러분을 다시 이전의 교회나 성당이나 절이나 종교나 선행이나 침례로 되돌려 놓으려고 합니다.

 

64. 구원받은 사람은 이전의 생활로 되돌아 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이는 종교나 교회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65. 계속해서 37절을 보겠습니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

 

66. 제가 한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침례를 받거나 성경대로 믿는 지역교회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이전의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중 일부입니다. 저는 지금 이러한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침례를 받거나 지역교회의 회원이 되거나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고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은 집 안에 있는 방과 같습니다. 집의 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67.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9)고 하셨습니다. 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들어오는 자는 도둑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을 침례라는 창문을 통해 받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도둑질을 하는 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을 선행이라는 창문을 통해 받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도둑질을 하는 겁니다.

 

68. 집 주인에게 환영을 받기 위해서는 창문이 아닌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문으로 들어가면 집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환영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은 침례나 선행이나 지역교회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방에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집에 들어가면 반드시 방에 들어가야 하지만 방에 있는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69. 내시는 방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빌립이 먼저 문으로 들어왔다면 방에 들어가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믿고 구원받는 게 먼저고 그 다음이 침례입니다. 침례나 선행이나 지역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은 모두 훌륭한 일이지만 구원보다 앞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시는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70.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믿음과 신뢰를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자 하십니까? 여기에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죗값을 치르셨다는 사실을 믿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71.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한 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속으로 내려가니 그가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므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그는, 영어에는 he로 되어 있음-역주)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가되 (38-39)

 

72. 어떤 사람들은 내시가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갔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빌립이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갔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둘 다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갔을 것입니다. 누군가 구원받는 것을 본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 이곳에 계신 분 중에 누군가가 구원받는 것을 보게 된다면 저 역시 기뻐할 것입니다.

 

73. 내시가 구원받는 것을 본 빌립은 정말 기뻤을 겁니다. 그러나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시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종교생활을 해도 해결할 수 없던 죄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어 죄책감은 사라지고 확신이 왔기 때문일 겁니다. 전에는 예수님을 모른 채로 왔다가 이제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구원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74. 여러분 중에는 구원받은 사람도 있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불행한 사실은 구원받지 못한 채 교회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갈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원이 아닌 자신의 종교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내시처럼 성경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고 구원받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75. 여러분이 오늘 집으로 돌아갈 때 기쁨 가운데 교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믿고 나서 교회 문을 열고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76. 오늘 우리가 살펴본 내시의 기쁨은 빌립으로부터 온 게 아닙니다. 빌립은 내시의 마음속에 있던 기쁨의 원천이 아닙니다. 그의 기쁨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이 말씀을 듣기 오래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기쁨을 여러분에게 전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분을 여러분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여러분 안에 모시게 되고 그분께서 주시는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77. 이것은 어떤 선행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고, 어떤 종교를 통해서도 얻을 수 없고, 심지어 성경공부를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순간 예수님을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기쁨가운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죄가 완전히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피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 주셔서 여러분이 이런 복을 받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마디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 16: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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