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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지질학

Gaines R. Johnson 지음 / 김용묵 옮김

18장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


 


성경을 정직한 자세로 문자 그대로 면밀히 검토해 보니, 우리는 성경이 젊은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세기의 말씀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주된 성경 교리들과 견주어 바르게 나눠 보면, 성경도 과학이 인정하는 오래 된 지구의 증거들을 지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수억 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질학적 시간과 지표면에 존재했던 화석이라는 죽음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아득히 먼 옛날에 이 땅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결론을 얻는다. 지구는 나이가 대단히 많으며, 죽음이라는 것은 그토록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하나님께서 돌에다 증거들을 기록하여 남겨 놓으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창세기에 열거된 7일간의 창조 기록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며, 이를 무효화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오래 된 지구의 증거들은 창세기의 7일 창조보다 훨씬 더 전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거에 자연계에서 있었던 사건을 창세기 1:1과 창세기 1:2 사이의 간극에다 삽입한다면, 성경의 문맥을 잘 분간하여 배치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쯤 되는 시기에서부터 하나님의 7일 창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는 그때 말이다.


그때 빛이 왜 필요했을까? 원래 있던 창조 세계에 뭔가 나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영은 이 사실에 대해 창세기 1:2에서 평이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땅이 형태가 없어지고 비어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창세기의 7일 창조는 우주 만물을 완전히 최초로 만들어 낸 사건이 아니다. 이 사건은 하늘들과 땅의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킨 재창조인 것이다. 너무 엄청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이것은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상호 비교했을 때 도출 가능한 유일한 해답이다. 이것은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를 성경 말씀의 '문자적 해석'에다 조화시켜서 얻은 결론이지, 이미 선입견이 깔린 전통적인 해석에다 조화시킨 것이 아님을 밝힌다.


우리는 성경 기록들과 상식적인 통념을 동원하여 부정확한 낭설들을 가려낼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자연의 역사와 영적 진리라는 두 영역에서 모든 의문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최종 권위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것이 본서의 저술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히 권위역 킹제임스성경 1611년도 원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역본은 기독교계가 오늘날처럼 온갖 교리와 교파로 갈라지기 전에 만들어진 덕분에, 인간의 특정 교리에 치우치지도 현대의 인본주의에 물들지도 않았다. 또한 이 역본은 현대 지질학의 근간이 마련되기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속 과학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킹제임스성경은 니콜라스 스테노(1638-1686), 제임스 허튼(1726-1797), 찰스 르옐(1797-1875), 윌리엄 스미스(1769-1839)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며, 다윈의 진화론보다도 200년 이상이나 먼저 나왔다. 1611년에 출간된 영어 성경이 그 당시에 참된 말씀이었다면(지금으로부터 겨우 400여 년 전의 일일 뿐이다), 그 동일한 말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참된 말씀일 것이다. 필자는 전적으로 이 말씀을 최종 권위로 삼을 것이고 이를 근간으로 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방어할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한 여러 영어 역본들 중 하나일 뿐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이 성경은 본문이 내장하고 있는 용어와 개념들을 통해 자가해석이 가능한 성경이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같은 원어의 정의를 살펴보고 다른 언어 역본과도 견줘 보면, 영어 성경을 구성하는 단어들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깊어질 수 있으며 이는 필자가 권장하는 연구 방식이다. 그리하면 진리의 성령님께서 독자 여러분에게 성경 말씀을 깨닫는 명철을 주실 것이다.


성경을 공부할 때는 다음 사항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바르게 번역된 성경은 자가해석이 가능하다. 개개의 단어, 시제, 절들이 모두 세밀한 의미 차이를 담고 있다.


2.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완전히 동등한 것만이 같다고 간주될 수 있다.


3. 성경에는 모순이 없다( 10:35).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에는 자가당착을 해소하는 실마리도 성경에 반드시 존재한다. 성경은 깨뜨려지지 않는다.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상거래를 할 때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게 최대한 정확한 용어로 계약서를 작성한다. 이 원칙은 국회에서 법률이나 조례를 제정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기네 나라의 입장을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정확하고 간결한 언어로 대변해야 하는 외교관들도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특정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가 실로 막대한 의미 차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런 글을 읽는 쪽에서는 글의 행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기 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적용할 사항이 없겠는지를 찾으며 글을 최대한 꼼꼼히 독해할 것이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위력이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매사에 대해 인간에게 남겨 주신 말씀을 우리가 예우하고 해석하는 태도는 더욱 철두철미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6일 창조는 하늘들과 땅에 대한 재생성, 즉 하나님께서 파괴하신 옛 세상에 대한 대체 작업을 나타낸다. 성경과 성경을 비교해 보면 이 교리가 더욱 분명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다음 표현을 서로 비교해 보자.


...아담의 세대들”( 5:1)


...하늘과 땅의 세대들”( 2:4)


창세기 5:1-5를 보면 성경은 “아담의 세대들”에 대해 소개하지만, 이 계보는 ''으로부터 시작하지 가인과 아벨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성경에는 셋에 앞서 가인과 아벨이 분명히 등장하는데도 말이다. 왜일까? 아담에서 그리스도로 이르는 메시야 계보가 셋으로부터 다시 새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악한 자에게서 난 가인이 반역을 저지르고 동생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첫 계보는 망가지고 말았다. 그래서 셋이 다시 선택되었다. 이 패턴은 중요하므로, “최초 언급의 법칙”이라는 성경 해석 원칙에 대해 나중에 소개할 때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다.


다음 구절을 서로 비교해 보자.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1:1)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2:1)


전자에서는 '하늘'이 단수이나 후자에서는 복수인 '하늘들'이 쓰였음을 주목하라.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두 단어가 모두 복수형 '하늘'이다. 그렇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의 비판자들은 이것이 오역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의 다른 영어 성경 역본들이 그런 것처럼 창세기 1:1 '하늘들'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성령님은 창세기 1:1과 창세기 2:1에서 복수와 단수를 달리하여 번역된 KJV의 단어들을 통해, 여러분으로 하여금 뭔가 굉장히 중요한 주제로 눈길을 돌리게 하고 계신다. 같은 단어가 문맥에 따라 표현과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미묘한 차이의 중요성에 대해 탐구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에 대해 더 완전히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차이는 우리가 방금 창세기 5:1과 창세기 2:4에서 가인과 셋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며 발견한 것과 같은 맥락의 논리를 지지한다. 성경 기록이 의도하는 바와 일관되게 잘 부합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하늘' '하늘들'의 차이는 창세기 1:10, 이사야서 65:17, 요한계시록 21:1 같은 다른 중요한 성경 구절의 해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2:2에서 언급한 “셋째 하늘”이라는 용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가벼이 다뤄져서는 안 되는 주제이므로, 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12장 궁창 단원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음 구절들을 서로 비교해 보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1:28)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채우고(fill) 날짐승은 땅에서 번성하라, 하시니라.( 1:22)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replenish)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9:1)


28절에 나오는 “replenish”와 22절에 나오는 “fill”은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에서 번역되었으며, 이는 창세기 9:1에 나오는 “replenish”도 마찬가지이다. KJV의 비판자들은, '말레'라는 히브리 원어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최초로 채우는 것과 다시 채우는 것을 모두 가리킬 수 있다고 곧장 지적한다.


그들이 원어에 대해 지적한 사항 자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KJV가 의미 선택을 잘못했다면서 창세기 1:28 9:1 replenish fill로 고쳐져야 한다는 지적은 옳지 못하다. 성령님은 1611년판 KJV의 번역자들을 움직이셔서 그런 특별한 차이를 의도적으로 만드셨으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창세기 1:28 replenish를 창 9:1에서 노아를 대상으로 쓰인 동일 단어의 의미와 비교하면, 성령님께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의 밖으로 나가서 새 세상을 다시 가득 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옛 세상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아주 비슷한 명령을 내리셨다. 멸망한 옛 세상의 뒤를 이어 새 세상을 다시 가득 채우라고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다음 구절을 서로 비교해 보자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1:2)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모든 새들이 도망갔고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4:23-26)


전자(창세기) 구절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기 바로 직전이다. 후자(예레미야서) 구절의 문맥은 대환란이 끝나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미래이다. 전자는 땅이 첫째 아담을 맞이하기 전에 처해 있던 상황에 대해 말하는 한편, 후자는 땅이 둘째 아담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전에 처해 있던 상황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고전 15:45-47)


이런 논리로 간극 이론을 옹호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검증하기 위해, 성경 해석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최초 언급의 법칙”에 비춰 주요 논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법칙에 따르면, 성경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최초로 등장한 지점에서의 용법이 이후에 등장하는 지점의 용법들까지 결정한다. 킹제임스성경에는 이 법칙을 토대로 간극 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용례가 최소한 세 군데 존재한다. 먼저, 성경에서 '세대들'(generations)에 대해서 최초와 둘째로 언급하는 곳을 살펴보자.


1: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들고 들의 모든 초목이 땅에 있기 전에 초목을 만들며 들의 모든 채소가 자라기 전에 채소를 만드신 날에 하늘들과 땅의 생성 세대들이 이러하니라. 그때에는 주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또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며”( 2:4-5)


2: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에 대한 책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날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그를 만드시되 그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고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시니라. 아담이 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더라.( 5:1-3)


성경에서 '세대들'이 둘째로 등장하는 부분은 아담의 계보 목록이다. 그런데 계보를 보면 아담의 계보는 셋으로 시작하지 가인이나 아벨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브는 셋에 앞서 가인과 아벨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에서 그들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왜 배제된 것일까? 해답을 얻기 위해 성경을 계속 찾아 보자.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를 알매 그녀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이르기를,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정해 주셨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4:25)


앞 장을 보면 셋은 첫째 씨앗인 아벨을 대체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아벨은 형 가인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5:1-3의 계보에는 아벨도, 가인도 모두 생략되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의 세대들”의 초기에 존재하는 “간극”인 것이다. 그리고 “최초 언급의 법칙”에 따르면 창세기 5:1-4의 용례에서 발견된 패턴이 창세기 2:1 '세대들'에서 최초로 유래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으며, 간극도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창세기 2:4에 나오는 “하늘들과 땅의 세대들” 역시 예전의 하늘과 땅에 대한 대체물이다. 예전의 것은 루시퍼의 반역으로 인해 먼 옛날에 멸망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세대들”( 114회 등장)은 한 치의 예외 없이 예전 세대를 대체하고 건너뛰는 시작점을 가리켜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성립하는 듯하다. “세대들”이 그 다음 셋째로 등장하는 곳은 노아의 문맥이다.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창세기 6:9)


노아는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모든 후손들의 아버지이며, 따라서 필자와 모든 독자 여러분들의 공통 조상이다. 그는 새로운 세대의 시작점에 있는 인물이다. 홍수로 인해 옛 세상이 멸망한 시점은 세대들이 새로 계수되는 시작점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이 구절에서는 아담부터 라멕까지의 이전 인물이 모두 생략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세대들”은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어떤 시점을 설정한 뒤 거기서부터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지, 결코 후퇴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최초 언급의 법칙”을 “세대들”에 이어 “replenish”에다가도 적용하고자 한다. (창세기 1:28, 9:1)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1:28)


2: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 9:1)


KJV에서 “replenish”가 둘째로 언급된 곳을 보면, 주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이전에 땅의 거주민들은 모두 홍수에 의해 멸망했기 때문이다. 노아는 새 세대의 시작점이며, replenish는 다음과 같은 사건들과 더불어 주어진 명령이다.


1. 옛 세상은 물 홍수를 당했다.


2. 그것은 세상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한 불순종 사건(여기서는 아담의 죄가 해당) 이래로 계속해서 축적된 죄악이 세상을 죽음과 폭력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3. 노아는 홍수 이후 새 세상을 다시 번성시키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럼 “replenish”가 최초로 언급된 곳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리신 명령을 보면 다음과 같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1. 세상은 물에 잠겨 있다( 1:2).


2. 이 홍수도 하나님께서 이전 세상에 내리신 심판의 결과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때도 한 불순종 사건(여기서는 루시퍼의 죄) 이래로 계속해서 축적된 죄악이 세상을 죽음과 폭력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지질학 관찰에 따르면 이 땅은 죽음과 폭력이 오래 전부터 존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일관되게 증언한다.


3. 따라서 아담은 홍수 후에 엿새 만에 창조된 새 세상을 다시 번성시키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는 이전 세상에 존재하던 종족을 대체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초 언급의 법칙”이 유효하다면 이런 추론들도 타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필자는 이 진리를 확증하는 제3의 적용 사례를 여러분에게 제시해 보이겠다.


1: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without form, and void)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1:2)


2: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without form, and void)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모든 새들이 도망갔고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온 땅이 황폐할 터이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땅이 애곡하고 위에 있는 하늘들이 검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말하였고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도다.( 4:23-28)


성경에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without form, and void)”가 둘째로 언급된 곳을 보면, 저자인 대언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하늘들과 땅의 상태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 미래란 대환란이 끝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시는 때이다. 둘째 문맥의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명백하게 미래임을 우리는 다음 사실들을 통해 알 수 있다(일부 간극 이론 지지자들이 창세기 1:2의 참조 구절로 이 구절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잘못되었다).


1. 도시들이 무너졌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아담이 창조되고 사람들이 번성하기까지 이 땅에 도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2. 주님께서 물리적으로 임재하시고 분노해 계신다.


3. “온 땅이 황폐할 터”라는 문장도 시제가 미래이지 과거가 아니다.


 


하늘들과 땅이 예레미야서에 묘사된 대로 “형태가 없고 비어 있는” 상태로 전락하지만, 주님은 친히 1000년 동안 세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그 하늘들과 땅을 재생시키실 것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주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이시다(고전 15:22-47 참고). 이 둘째 아담(주님)과 그분의 이브(신부. 그분의 교회)는 현존하는 하늘들과 땅으로부터 만들어진 새로운 하늘들과 땅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재생된 일련의 “하늘들과 땅”을 성경에서는 “세상들”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재생된 세상은 언제나 예전 세상이 멸망한 다음에야 등장한다.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1:4)


“이 현 시대에서 여러 배를 받지 못할 자가 없고 또 오는 세상에서 영존하는 생명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18:30)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내 왕국이 여기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 18: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시 나게 하는 때 곧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리라.”( 19: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벧후 3:13)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1:2)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11:3)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내가 비유로 내 입을 열어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은밀히 간직된 것들을 말하리라, 하였느니라.( 13:35)


위에서 마지막 두 구절의 “세상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xxx”로, 지표면에 어떤 균일한 상태가 주도적으로 계속된 장구한 시기를 뜻한다. 지질학적 시기를 나타내는 용어인 eon의 어원인 단어이기도 하다.


“최초 언급의 법칙”에 입각하여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면 각종 예표와 의미들이 조화를 이루게 되며, 들을 귀가 있고 볼 눈이 있는 자들에게 비로소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법이다. 본서에서 도출된 결론이 사실이 아니라면, “최초 언급의 법칙”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젊은 우주 창조론자들이 간극 이론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은 교회에서 가르쳐지는 전통적인 창조설을 적극 옹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성경에서 “땅”과 “세상”의 차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으며, 덩달아 창세기 1장의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럼 창세기 1:2을 한 번만 더 문자적으로 빈틈없이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1:2)


주의를 기울여서 위 구절을 다시 읽어 보시라!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3)라고 말씀하시기 “전부터” 물질이라는 게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해 있었다. 그때 이미 지구라고 불리는 땅이 독립된 행성으로 있었고, 많은 양의 물이 있었다. 그리고 물리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어둠도 있었다( 6:12, 살전 5:5, 요일 1:5 참고). 창세기 1:2의 어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복수형이며, 이는 어둠이 한 종류보다 더 많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진리는 일부 다른 언어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어둠”을 복수형으로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창세기 1:2에서 해당 단어가 복수형으로 번역되었다. 스페인어가 그 예 중 하나이다.


Y la tierra estaba desordenada y vacía, y las tinieblas estaban sobre la haz del abismo, y el Espíritu de Dios se movía sobre la haz de las aguas.( 1:2 RV 1909)


그래서 히브리어에서 직역된 스페인어 성경은 어둠에 해당하는 “tinieblas”를 복수형으로 표현하여 한 종류 이상의 어둠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남겼다. 창세기 1:2에서는 물리적인 어둠과 영적인 어둠이 모두 존재한 셈이다.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주가 이미 악한 영향을 받았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최후엔 모든 것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는” 혼돈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태는 주님께서 땅(창세기 1:1)을 거주 가능한 형태로 만드셨다는 이사야서 45:18의 진술과 성경적으로 어긋난다.


“하늘들을 창조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며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니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45:18)


이사야서 45:18에서 “헛되이(in vain)”와 창세기 1:2에서 “형태가 없음(without form)”은 모두 같은 히브리어 “xxx(tohuw)”에서 번역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 형태가 없고 텅 빈 반죽덩어리 상태인 지구부터 먼저 창조한 뒤에 추가로 6일 동안 다른 요소들을 만드는 식으로 최초의 작업을 하신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사야서 45:18이 말씀하시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KJV와 히브리 원어는 젊은 우주 창조론을 전적으로 부정한다.


그럼 이 땅에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때 지구라는 행성에 살던 존재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들은 정체가 무엇이며 왜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 지질학적 증거에 따르면 지구에는 굉장히 다양한 생명체가 장구한 시간 동안 서식하였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화석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그것들은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죽음이라는 것이 아담이 창조되기 오래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죽음은 죄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므로, 과거에 지구에 살던 인격체도 역시 죄를 짓고 타락했음이 분명하다. 화석이 노아의 홍수 때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이렇게밖에 해석의 여지가 없다(그리고 실제로 노아의 홍수의 산물이 결코 아니기도 하다.)


지구와 그 내부의 창조물 전체가 6천여 년 전에 그 유명한 6일 동안 완전히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분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최초로 임한 게 아니냐고 즉시 반문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로마서 5:12)


이 구절은 절대적으로 사실이다. , 자신의 문맥 내부에서만 말이다. 6천여 년 전에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죽음이 이 세상에 임했으며, 그는 죄를 지은 최초의 인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러분이 “세상”과 “땅”의 성경적 개념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논리와 상식이 지지하는 진실을 간파할 수 없게 된다.


1. 성경은 “뱀”이 이브를 유혹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녀와 아담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2. 만약 뱀이 남자와 여자를 유혹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게 만들었다면, 뱀은 아담과 이브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악을 저지른 존재라는 뜻이 된다.


3. 만약 아담이 타락하기도 전부터 “뱀”이 악했다면, 뱀의 영은 아담이 죄를 짓기 “전”의 시점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죄를 지어 놓은 상태여야 한다. 이해가 되시겠는가?


4. 그러니 죽음이 죄로 인해 임하며(이는 영원불변의 법칙이다. 6:23, 1:15 참고) 뱀이 아담보다 먼저 죄인이라면, 죽음 역시 아담과 이브 이전의 세상에 이미 있었다고 해도 잘못될 것이 없다. 새로 조성된 깨끗하던 세상에 “죽음”을 가져온 것은 아담의 불순종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고대 세상에 “죽음”을 가져온 것은 루시퍼의 불순종과 반역이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성경이 묘사하는 역사의 전체 그림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상식적인 결론이 도출된다.


1.  아담은 죄를 지은 최초의 인간임은 틀림없으나, 죄를 지은 최초의 인격체는 아니다.


2.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써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오긴 했으나, 죽음 자체는 아담이 죄를 짓기 “전”부터 아담 “이전”의 세상에 이 땅에 존재했었다.


 


이렇듯, KJV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도출해 낸 재창조 간극 이론은 이 땅의 먼 과거에 죽음이 존재했음을 나타내는 화석 증거들과 모순되지 않으며, 로마서 5:12가 말하는 교리와도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성경은 “옛 세상”에서 “뱀”이 죄를 지은 시점과 “현 세상”에서 아담이 죄를 지은 시점 사이의 기간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 기간은 지질학 자료에 따르면 수백만 년에 달할 수도 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 세상에 아담과 동일한 “인류”가 아담보다 먼저 살았을 여지는 없다. 다만 외형이 현재의 인간과 비슷한 다른 생명체가 살았을 수는 있으며, 아담은 바로 그것들을 대체하라는 사명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창세기 1:28)


화석상으로 존재가 입증되어 있는 “네안데르탈 인” 같은 고대 휴머노이드 종들이 옛 세상을 살았던 주체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진화론자들에 의해 인류의 조상이라고 잘못 소개되곤 하나, 휴머노이드는 휴머노이드일 뿐 우리의 조상이 아니다. 그들은 인류와 비슷한 외형을 지니고서 먼 과거에 지구상에서 살았다. 그들의 육체에서 분리된 영들은 훗날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서 쫓아내신 마귀들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마태복음 8:16과 다른 구절들 참고).


  요컨대 이러한 결론은 사람과 죄 문제를 논하는 로마서 5:12와 성경적으로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아담은 6천여 년 전에 살았던 최초의 진정한 인간이었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독창적으로 새롭게 창조된 존재이다. 그는 로마서 5:12가 말하듯이 죄를 지은 최초의 인간이다. 죽음은 다른 곳에서 이 세상으로 “유입되어 들어왔다.” 다시 말하는데, 딴 데서 유입되었다(로마서 5:12가 그렇게 말하고, '깊음' 같은 누가복음 8:31도 참고할 것). 죽음이 처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에스겔서 28장과 이사야서 14장 같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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