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2010.03.26 06:48

생명을 위하여 도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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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하여 도피하라

이것은 2006년 9월 10일 진리침례교회 오후 예배시간에 한 설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20:1-9입니다. “또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의 손으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 도시들을 너희를 위해 지정하여 알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죽인 자가 거기로 도망하게 하라. 그 도피 도시들은 피의 원수를 갚는 자로부터 너희를 지켜 줄 피난처니라. 그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도망하는 자는 그 도시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도시 장로들의 귀에 자기 사정을 밝히 말할 것이요, 그들은 도시 안으로 자기들에게로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처소를 주어 그가 자기들 가운데 거하게 하고 피의 원수를 갚는 자가 그를 추격한다 할지라도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넘겨주지 말지니 이는 그가 전에 자기 이웃을 미워하지 아니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이웃을 쳤기 때문이라.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혹은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시에 거하다가 그 뒤에 자기의 본 도시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도시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그들이 납달리 산의 갈릴리의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의 세겜과 유다 산의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을 지정하고 또 요르단 저편 곧 동쪽으로 여리고 옆에는 르우벤 지파에서 평야 위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에서 길르앗의 라못과 므낫세 지파에서 바산의 골란을 지정하였더라. 이 도시들은 온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 가운데 머무는 타국인을 위하여 지정한 도시들이었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을 죽였을 때에 거기로 도망하여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원수를 갚는 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오늘 설교는 복음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미 구원받은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분들은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축복된 자리인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분들은 도피 도시를 통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도피 도시에 대한 설명

우리는 오늘 도피 도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서 자신들의 영토 안에 6개의 도피 도시, 즉 도피 도시라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도피 도시라는 것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해서 달아날 수 있도록 만든 도시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 세상의 어떤 법보다도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법인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생각해 주시며 인간의 입장을 얼마나 고려해 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생명에 매우 큰 가치를 두십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율법에 의하면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도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쟁이나 이론도 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자신도 죽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어떠한 언변이나 궤변으로 자신의 죄를 위장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는 생명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 이 때에는 경우가 좀 다르게 됩니다. 아무런 고의도 없고 의도도 없고 원한도 없이 사람을 순전히 실수로 죽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법인 성경에 의하면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죄의 값은 언제나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정말 아무런 의도도 없고, 악의도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에도 사형에 처해져야만 한다면 이것은 공평한 일이 못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 하나님의 법인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서에서 읽은 것처럼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 살인자는 도피 도시로 도망가면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율법이 굉장히 엄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율법은 엄격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율법에는 사람을 생각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굉장히 존중해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살던 시대에 가나안인들이나 아시리아인들 혹은 이집트인들의 법에서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이러한 존중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이 없는 곳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경시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모세가 살던 시대에 이교도들은 갓난 아기들을 불로 태우면서 자신들의 신을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모세가 살던 시대에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아기를 나일강의 악어들에게 먹이로 던지며 자신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존중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위대한 법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도피 도시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보호자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그 죽인 사람에 대해서 보복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자신의 생명도 내 놔야 합니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건 이 세상의 신에게 세뇌당해서 그런 겁니다. 사형제도를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든 범죄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형제도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형벌인가를요. 사형제도가 존재함으로 해서 많은 범죄가 좌절되기도 합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듯이 죽어야만 한다면 살인사건은 급격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성경은 명백하게 사형제도에 대해서 지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의 피도 흘려져야지만 땅이 더럽혀 지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말 아시죠? 사람들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성경의 하나님은 잔인하다고 해요. “눈을 찌른 사람을 용서하라고 해야지 왜 똑같이 보복하라고 하냐?” 하면서 잔인한 하나님이라고 해요. 그러나 그건 뭘 모르는 소리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을 “동해보복형”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받은대로 갚는 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이러한 처벌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잔인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남에게 해를 입게 되면 남도 똑같이 해를 입기를 바라지 않아요.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자기가 입은 해보다 더 심하게 해를 입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면 상대방 눈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이 그 강간한 사람이 속한 부족을 전멸시켰잖아요. 왜 통일전망대 같은거 보면 북한에서도 그러잖아요. 자기들 건드리면 백배 천배 보복하겠다고.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자기가 당한 것 보다 훨씬 더 갚아주려고 하는게 인간의 마음이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네가 당한 만큼만 갚아주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사람이 보복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에 따른 형벌을 가할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도 신약시대의 하나님 만큼이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시는 분이 아니예요. 다만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2.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

이제 다시 도피 도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피 도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도피 도시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어요. 말이 좀 이상하지요. 실수로 사람을 죽인적이 없다고 하니깐 그럼 고의로 죽인적은 있다는 말 같네요. 아무튼 실수든 고의든 저는 사람을 죽인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적인 있는 분 없으시죠? 예, 없을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든 고의든 사람을 죽인적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피 도시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과실치사의 죄를 범한 자가 도피 도시로 들어가면 죄의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법이 없죠.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법을 넘어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많이 나옵니다. 모형이라는 것은 비유적인 이야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형은 실재로 존재했던 사람과 사건에 대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건과 인물을 통해서 더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생각해 보면 뭐가 있을까요?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이 놋뱀이 아닐까 합니다. 범죄해서 죽게될 자들이 쳐다보면 산다 하는 것이 바로 놋뱀아닙니까? 이 놋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같이 인자도 들어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예요.

 

이 놋뱀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훌륭한 모형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도피 도시가 가장 훌륭한 모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도피 도시을 하나의 이야기로 꾸민다면 이렇습니다. 먼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피의 보복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도피 도시가 나오죠.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과 피의 보복자와 도피 도시가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먼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실수로 사람을 죽인자를 신약성경의 복음의 진리로 비춰보면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바로 여러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실수로 죽인 적이 없어요.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과 마찬가지의 위치에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죠. 성경에서는 우리 인간을 여러 가지로 부릅니다. 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먼지와 같다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사람을 왜 죄인이라고 부를까요? 성경은 3가지 이유로 사람을 죄인이라고 불러요. 먼저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아직 죄를 짓지 않아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은 마치 인종과도 같은 것입니다.

 

흑인으로 태어나면 흑인이죠. 아직 흑인의 문화와 흑인의 말을 하지 않아도 흑인입니다. 백인으로 태어나면 백인이예요. 미국영어에는 여러가지 방언, 즉 사투리가 존재하는데요. 보통 도시에 사는 백인들이 하는 영어를 SAE라고 불러요. Standard American English라는 말입니다. 표준미국영어라는 말이죠. 보통의 경우 도시에 사는 미국 백인들이 쓰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AAE라는 것이 있어요. African American English라는 건데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어라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흑인들이 쓰는 영어입니다. 백인들이 쓰는 말과 흑인들이 쓰는 말은 좀 달라요. 백인들은 누군가가 멋지다고 말할 때 He is nice라고 말해요. 반면에 흑인들은 그냥 He nice라고 be동사를 생략하고 말합니다. 이렇게 약간씩 차이가 있어서 미국인들은 라디오에 나오는 목소리만 듣고도 말하는 사람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쉽게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뉴스를 진행하는 흑인들이나 교육을 많이 받은 흑인들은 흑인영어가 아닌 스탠다드 어메리칸 잉글리쉬, 즉 백인 영어를 씁니다. 여러분, 흑인이 아무리 백인처럼 말하고 행동해도 여전히 흑인이지요. 흑인의 모습과 민족적인 습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아도 흑인으로 태어나면 여전히 흑인인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렘 13:23).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사람이 흑인으로 태어나고 백인으로 태어나고 아시아인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예요. 우리는 그냥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아도 죄인인 것이예요. 왜냐하면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니까요. 그래서 로마서 5장에서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좀 더 있다가 살펴보고 일단 인간이 죄인인 두번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이 죄인인 두번째 이유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실재로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혹시 나는 지금까지 전혀 죄를 지어본 적이 없다 하시는 분 있나요? 그런 분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세요. 없으세요? 미국에 1900년대 초에 샘 존스라는 유명한 복음 전도자가 있었는데요. 한 번은 복음을 전하는 집회를 하면서 방금 제가 한 것처럼 청중에게 질문을 했데요. “여기에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그러니깐 한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더래요. 그러니까 샘 존스가 일어나 보라고 했데요. 아주머니가 약간 수줍게 일어나니까 샘 존스가 그랬데요. “여러분은 지금 이 마을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분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죄를 한 번도 안지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롬 3:23).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죄를 짓지 않아도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러나 죄를 짓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람이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인인 세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아니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건 이해가 가지만 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건 무슨 말인가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가 될 수 있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어디서 훔친 것도 아니고 단지 세금을 내지 않았을 뿐인데, 하지 않았을 뿐인데 왜 죄가 되나요? 억울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겠죠.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기가 굶어 죽겠죠. 그런데 아기를 굶어 죽인 어머니가 판사에게 “저는 아기를 죽이지 않았어요. 단지 젖을 주지 않고 내버려 뒀을 뿐이예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죠.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주고 아기가 생존에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할 법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이걸 “보증인적 지위”라고 불러요. 그래서 아기를 돌보지 않아서 아기가 죽게 되면 그 부모는 유기치사죄의 죄책을 지게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도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마땅히 하라고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6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요 6:28-29)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행 17:3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에요.

 

,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이 죄인인 이유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이고 실재로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 즉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야구에서도 쓰리아웃이 있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삼세판을 참 좋아합니다. 성경은 세 가지 이유로 사람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앞에서 저는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아니 내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이라면, 그러면 그 책임은 나에게 없는게 아니냐?” 하시는 분이 있어요. “왜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심판하고 지옥에 보내냐, 그건 좀 억울한거 아니냐?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지 않겠다” 그래요.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저도 믿지 않겠네요. 언제 하나님께서 당신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책임을 당신에게 지우신다고 했습니까? 언제 하나님께서 당신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을 지옥에 보내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러면서 계시록을 보여줍니다.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계 20:12)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각자 자기 행위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또 보세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으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믿지 않는 자들이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중에 만일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여러분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여러분이 스스로 지은 죄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말은 없어요. 일반 범죄도 그 행위가 위법하고 범죄의 구성요건에 맞고 죄를 지은 행위자가 책임이 있어야 처벌을 해요. 그래서 아무리 행위가 위법하고 범죄의 구성요건에 맞아도 행위자가 책임이 없으면 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6살짜리 어린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면, 사람을 죽인 행위는 법에 어긋나잖아요, 그래서 위법하다고 해요. 또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처벌이 우리나라 형법에 명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구성요건에도 맞다고 해요. 그러나 어린 아이는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벌을 받지 않는 거예요. 물론 6살짜리 아이가 사람을 죽이면 그 부모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6살짜리 아이는 형사상의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책임이 없으면 처벌을 받지 않아요. 이것은 일반 법률뿐만 아니라 성경의 법에서도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책임이 없는 자에게 벌을 주시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죄인으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만일 한 살에 죽었다면 죄를 지을 수가 없잖아요. 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죽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예요. 그건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인간에게 책임이 없는 일입니다. 오직 첫번째 사람이자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 그 책임이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사람을 지옥에 보내지는 않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을 지옥에 보내십니다. 이것은 두 가지 조건이라기 보다는 한 가지 조건과 그 해결책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해 주겠다고 그 해결책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 값을 다 치르셨다는 대속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의 죄값을 스스로 치르러 지옥에 가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는 전혀 억울한 것이 없어요. 여러분이 지옥에 가게 된다면 그건 하나님 때문도 아니고 조상 때문도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가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 때문입니다. 그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저는 여러분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이예요. 비록 실수긴 하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그 자신도 반듯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나 실수로 한 일에 대해서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그리 공평한 일이 못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살 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방법을 지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도피 도시 안으로 피하는 일입니다. 도피 도시로 피하면 실수로 사람을 죽인 일에 있어서는 용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6:23). 죄를 지으면 반듯이 죽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고 자신이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에 따른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뉴스를 보면 가끔 아주 흉칙한 죄나 파렴치한 죄를 지은 사람들을 보게 되잖아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 쳐죽일 놈들…그러잖아요. 우리는 죄에는 형벌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죄도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여러분, 모든 죄가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합니다.

 

제가 이전에 어떤 걸 보니깐 이런게 나오더라구요.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가 배경인데, 어떤 죄인이 사또 앞에서 심문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그 죄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와 증인이 너무 명백한 거예요. 이런 경우에 왜 사극에 보면 그러잖아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러니깐 그 죄인이 사또 앞에서 싹싹 빌면서 그래요.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깐 사또가 형방한테 “저 놈이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니 죽을 만큼 곤장을 쳐라” 그러더라구요. 그러니깐 죄인이 기겁을 하면서 “죽지 않을 만큼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더라구요. 그러니깐 사또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러면 저 놈을 죽지 않을 만큼만 곤장을 쳐라” 그러더라구요. 죽지 않을 만큼만 곤장을 맞는게 더 무서운거 아닙니까?

 

여러분, 모든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과 지옥입니다. 큰 죄도 있고 작은 죄도 있지요. 그러나 모든 죄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죽음과 지옥입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서 더 큰 고통을 받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떤 사람들에게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자나요. 지옥에서도 더 큰 정죄가 있다는 것이예요. 지옥에서 더 큰 정죄가 있을 뿐이지 모든 죄에 대한 삯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죽음과 지옥입니다.

 

저는 우리가 죄인인 세 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이고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한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삼중적으로 죄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짓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즉 죄성을 그 안에 소유하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조상으로부터 죄성을 유전 받은 채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죄를 짓는 존재인 것이잖아요. 인간이 죄인이 이유가 삼중적으로 세 가지 이지만 결국 가장 근본이 되는 원인은 바로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피할 길을 주신 거예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피할 길을 주신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도피 도시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논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실수로 죽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도끼질을 하다가 도끼가 손에서 빠져서 옆 사람을 죽였다면 어쩔 수 없는 불의의 사고잖아요. 그런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도피 도시로 피하면 죽지 않고 살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은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과 마찬가지예요.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스스로 짓는 거지만 죄인으로 태어난 것은 내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잖아요.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으로 태어난 것 때문에 지옥에 보내지는 않으시는 겁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도피 도시로 피하면 살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피 도시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3. 피의 보복자

, 이제는 피의 보복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피의 보복자는 누굴까요? 성경에는 누가 피의 보복자의 역할을 하는 지가 명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피의 보복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의 형제이거나 가장 가까운 친족이 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형제가 형제를 대신하게 합니다. 형제가 없을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이 대신하게 합니다. 피의 보복자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형제나 가장 가까운 친척 중에서 피의 보복자가 그 살인자의 뒤를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살인자를 피해자의 형제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죽이므로 복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법에서는 이런 행위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 법에서도 정당방위라는 것이 있기는 한데요. 이 정당방위는 현재의 침해에 대해서만 허용이 됩니다. 또 정당방위는 자기가 아닌 타인을 방위하기 위해서도 허용이 됩니다. 즉 정당방위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할 때 제 삼자가 나서서 살인하려는 사람을 공격해도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정당방위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당방위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만 허용이 됩니다. 지난 번에 나 죽이려고 했지 하면서 공격하면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당방위가 허용되는 것은 정당방위가 “부정 대 정”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어쨋건 오늘 본문에 나온 피의 보복이라는 개념은 정당방위와는 다르고 우리 법에는 없는 개념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에 의하면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이 피의 보복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피해자의 형제나 가장 가까운 친족에 의해서 가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같습니다.

 

정리를 하면, 한 사람이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면 피해자의 친족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피의 보복자의 역할에 즉시 착수합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즉시 자신의 마을을 떠나서 도피 도시로 도망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피해자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를 위한 피의 보복자가 즉시 칼을 들고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따라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가 아직 도피 도시에 들어가기 전이면 피의 보복자는 그를 죽여도 됩니다. 그러나 도피 도시으로 들어가고 나면 이제는 그를 죽이면 안됩니다. 도피 도시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장로가 그 살인자를 피의 보복자로부터 보호해 주게 됩니다.

 

여러분,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 아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뒤에는 피의 보복자가 따르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도 피의 보복자가 그 등 뒤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때가 되면 그 피의 보복자는 자신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서 내리칠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뒤따르는 피의 보복자가 누군지 아세요? 피의 보복자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 “기록된바, 원수 갚는 일은 내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롬 12:19) 피의 원수를 갚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예요.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간의 불행입니다. 사람이 대적하고 싸우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이라는게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원수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모릅니다. 또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사람들이 성경을 왜곡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고 성경의 증언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아요.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어요. 과거에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3:16에서는 과거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2천년 전을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아느냐구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독생자를 주신게 2천년 전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왜 이런 말 들어보신적 있으세요? “하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십니다.” 이 말은 성경에 비춰보면 굉장히 잘못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지 않으세요.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미워하세요. 죄인을 미워하기 때문에 지옥에 보내는 거예요. “아니 그럼 하나님께서 죄인을 미워하시면 즉시 지옥에 보내지 왜 세상에 있는 수많은 죄인들을 다 바로 죽여서 지옥에 보내지 않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분 있나요? 하나님께서 왜 죄인들을 즉시 지옥에 보내지 않고 있는지 아세요?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분이 있죠? 그리고 매일 크고 작은 죄를 짓고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분 있죠?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을 즉시 죽여서 지옥에 보내지 않는 줄 아세요?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기 때문에 죄인들을 즉시 죽여서 지옥에 보내지 않으시는 거예요.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은 즉시 집행되지 않아요.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계신 것이죠.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사형제도 존치 국가일까요? 아니면 폐지 국가일까요? 우리나라 형법에는 사형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나라는 사형제도 존치국가에요. 그런데 이거 아세요? 지난 12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다는거.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게 김영삼 정권 말기였습니다.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정권 말기에 사형을 집행했어요. 김대중 정권은 인권정권이라는 이미지를 위해서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고 현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사형은 선고가 있은지 6개월 만에 집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법을 어기고 있는 거죠.

 

지금 우리나라에 사형수가 몇 명 있는지 아세요? 63명 있습니다(2006년 기준). 죄목은 다양한데 이들 전원이 살인을 저질렀고 범행수법도 모두 다 잔인하다고 해요. 범죄유형을 구분해 보면, 살인 28명, 강도살인 23명, 유괴살인 5명, 강간살인 3명, 존속살인 2명, 방화치사 2명이래요. 이중에는 공안사범이나 정치사범은 아무도 없어요. 모두 사람을 고의로 잔인하게 죽인 사람들입니다. 피해자수로 보면 50명은 2명 이상을 죽였고 이중 22명은 3명 이상을 죽였데요. 이중에는 유영철도 있는데 유영철은 40명 이상을 죽였어요. 전에 학교 다닐 때 법철학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그러더군요. 그 수업은 대략 40명 이상이 듣는 수업이었는데 유영철 얘기를 하시면서, 유영철이 여기있는 사람 전부만큼 죽인 거라고. 63명의 사형수 중에 13명은 1명만 죽였지만 반인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데요. 자수했는데도 사형이 선고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재판 당시에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 사람도 거의 없었데요.

 

그런데 사형을 언제 집행하는지 아십니까? 사형은 보통 오전에 집행한데요. 그래서 사형수들은 오전에 면회왔다고 하면 벌벌떤데요. 면회왔다고 하면서 데리고 나가서 사형을 집행하거든요. 그래서 오전만 지나면 일단 오늘은 아니구나 하고 안심한데요. 그래서 전에 신문을 보니깐 사형수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뽑았더라구요. “생은 내일 아침까지만 보장된다” 오후나 저녁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오전만 지나면 다음날 아침까지는 살 수 있다는 거죠. 사형수는 아직 형벌을 받지 않은 죄수입니다. 그래서 사형수는 미결수예요. 다른 징역형을 받는 죄수들은 교도소에 있는 동안 징역을 살면서 형벌을 받고 있잖아요. 그러나 사형수는 그 형벌이 사형이기 때문에 죽기 전까지는 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미결수입니다. 사형수와 같다는 거예요. 사형수는 다음날 아침까지 생이 보장될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보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의 보복자가 언제 보복을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짓고 삽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 설령 있다고 해도 자신들의 죄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관심이 많으세요. 인간들의 마음과 행위를 유심히 살펴보신다는 겁니다.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죄악을 물마시듯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잖아요. 가장 두려운 사실은 여러분의 죄가 이미 하나님께 발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보시고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예요.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로 대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원수로 여기고 계세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에 그 머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를 두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볼 때 마다 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원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 우리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다는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었구나 하고 알게 될 겁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감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게 뭔 줄 아세요?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저에게 진노하지 않을실 거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저의 원수가 아니예요. 이것이 얼마나 저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지 아십니까? 저는 지금 죽어도 돌아갈 집이 있어요. 그곳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평안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옵니다.

 

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미워하지 않으신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도피 도시으로 피하지 않은 사람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께 나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위험천만한 상태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판단하시며 하나님은 사악한 자를 향하여 날마다 분노하시는도다. 그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분께서 자신의 칼을 가시리니 그분께서 이미 자신의 활을 당기시고 준비하셨도다. 또 그분께서 그를 위하여 죽이는 도구를 마련하셨나니 그분께서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자신의 화살들을 정하시는도다.”(시 7:11-13) 이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의 머리를 향해서 화살을 정 조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그 누군가가 바로 여러분 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하신 일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행해서 진노하고 계시고 여러분을 향해서 심판의 활을 당기고 계시다는 겁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조금 더 기다려 주시지만 언젠가는 그 활시위를 놓으실 날이 올것입니다.

 

4. 도피 도시

오늘 설교의 주인공은 셋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실수로 살인한 사람, 피의 보복자, 그리고 도피 도시, 이렇게요. 실수로 살인한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피의 보복자는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이제 도피 도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도피 도시가 상징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도피 도시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실수로 살인죄를 지은 사람은 도피 도시으로 들어가면 죽지 않아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죽지 않고 살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을 대신 맞아주셨어요.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이 죄인인 나에게 날아와서 내 심장을 관통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맞아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줄 아세요?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가 만족을 얻었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 나에게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참된 도피 도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시면 그렇다는 겁니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지금 저의 설교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여러분이 영원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죄를 지었어요. 그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또 지옥에서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피 도시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도피 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구원받지 않은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모님 때문에, 아니면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나오신 분이 있나요? 그러면서 속으로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내가 그래도 교회에 다니니깐 좀 이쁘게 봐주시겠지 하는 분 있나요? 그런 분이 있다면 제 말을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이 교회 건물 안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장로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예요. 침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대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실천하는 교회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자동으로 구원받게 되고 안전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왜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계속 신앙생활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기 때문이에요. 그리스도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밤 잠자리에 들어서 내일 아침 이 세상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저는 도피 도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저는 안전하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 안에 들어오시고 또 저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 넣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제가 충고를 하나 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도피 도시으로 피하세요.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시라구요. 저는 지금 종교를 권하는 것이나 우리 교회에 계속 나오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예요. 구원과 관련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두 번 다시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세요? 어떤 교회는 자신들이 하는 방언을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것이라고 해요. 그러나 성경에 그런 말은 없죠. 어떤 목사님은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것이고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성경에 없어요. 반대파를 겁주기 위해서 자기가 지어낸 거지. 성경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이 나오기는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성경을 읽으면서 공부해 보세요.

 

저는 이전에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면, 그렇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죄도 있는 것인가?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여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제가 성경을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더라구요.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세요. 제가 지금 잘못 말하는게 아닙니다. 어떠한 죄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어떠한 죄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다 치명적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떠한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죄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용서와 죄사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있는 분 중에 구원은 받았지만 현재 죄문제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분이 있다면 제 말을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이 지은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어요. 단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고 말씀하시고 있잖아요. 작은 불의에서만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죄든 큰 죄든 그 죄로 더러워진 것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용서를 구하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모든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5. 결 론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어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고 반드시 구원받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계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세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어도 안전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여러분은 침몰하는 배 안에 있어도 안전해요.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여러분은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 있어도 안전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여러분은 무너지는 건물 안에 있어도 안전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벼랑 끝에 있어도, 사자 굴에 던져져도,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가운데 있어도 안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 참된 생명을 누리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앉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의 설교를 들으신 분이 모두 이미 구원받으신 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오늘 여기에 계신 분 중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오늘 제가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함으로 자기 자신을 헤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베푸시기 원하는 구원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언젠가 오늘의 결정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에 온 몸을 전율할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아, 나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으니 기회가 많을꺼야”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나요? 예, 그 말처럼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기회가 많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분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분들, 예수님을 영접해 본적이 전혀 없는 분들에게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생명을 위하여 도피하세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서 참된 생명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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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교리 교회론-제2장 교회와 하나님의 관계 이우진 04.13 3342
140 교리 교회론-제1장 교회란무엇인가 이우진 04.05 4038
139 양육 거룩한사람-제2과 요한복음1:19-34 이우진 04.03 4125
138 복음 (한영)하나님의 구원 계획 이우진 03.28 6499
137 복음 하늘나라와 지옥-14 하늘나라와 지옥 정리 이우진 03.22 7868
136 양육 거룩한사람-제1과 요한복음1:1-18 이우진 03.18 6778
135 복음 하늘나라와 지옥-13재창조와 하늘나라의 위치II 이우진 03.14 5532
134 복음 하늘나라와 지옥-12재창조와 하늘나라의 위치I 이우진 03.10 5316
133 복음 하늘나라와 지옥-11하나님의 평안 이우진 02.26 5566
132 복음 하늘나라와 지옥-10새 예루살렘 이우진 02.22 4713
131 컬럼 도서출판 킹제임스 후원회 안내 1 이우진 02.15 9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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