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2009.05.11 21:59

"택함받음(예정)"에 관한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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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rine of Election

“택함받음(예정)”에 관한 교리

James W. Knox 지음 / 김수광 옮김

 

다음은 제임스 낙스 형제의 설교를 편집한 글로, 이 설교는 1999년 여름 몬타나주 칼리스펠에 위치한 ‘은혜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본 내용은 저자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주석’ 시리즈 중 디도서 편의 부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정에 관한 성경적 교리는 단순합니다. 그럼에도, 선택(예정)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두고 수천 년간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분파가 생긴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신실한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합니다. 일례로, 존 칼빈은 로마 카톨릭 성직자였습니다. 그는 카톨릭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제롬,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의 가르침을 떠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예정에 관한 교리에서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둘째,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정확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편견을 가진 채 성경에 접근합니다. 성경의 내용 중 자신의 신학적 견해와 충돌하는 곳에서는 자기 확신을 고수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거나 무시합니다. 

 

셋째, 부주의한 사람들이 성경에서 몇 구절만을 취해 성경의 전반적 흐름을 왜곡하고 그 구절들을 토대로 자기만의 신학을 구축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주어진 주제와 관련된 모든 참조구절을 확인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그래서 모든 참조구절이 그가 내린 결론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진리의 말씀은 잘못 다뤄진 것이며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누가 됐건 이름을 들먹이며 비판을 하면 화가 나게 마련입니다. 이해할 만도 합니다. 어떤 사람을 지목해 칼빈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공정함을 잃는 처사입니다. 그가 칼빈의 예정론과 같은 의견을 고수하면서도 유아세례를 주거나 사람을 화형 시키는 행위에는 반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4가지 면에서 칼빈주의자인 사람도 만나봤고, 5・6가지 점에서 칼빈주의자인 사람도 만나봤습니다. 칼빈은 앞서 말한 두 가지를 다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이 사람들 중 어떤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은혜’가 자신을 구원했다고 진정코 믿었고, 또 어떤 이는 ‘주권적 은혜’라는 말이 실제로 성경에 있는 용어라고 했습니다. 그 중 몇 분은 칼빈의 예정 교리에 관해선 비록 저와 의견은 달리했지만 여전히 제 친구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실족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형제사랑으로 이 문제들을 명료하게 풀어냄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칼빈주의와 로마 카톨릭의 예정에 관한 관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간단히 기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들과 땅을 만드시기 전, 시간을 통해 내려다보셨다. (볼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분이 만든 모든 이를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만들기 이전, 어떤 사람들은 하늘 나라로 보내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내려보내기로 결정하셨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즉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왔을 때, 오직 그가 하늘나라에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들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통해 자신이 구원하기로 결정한 자들을 전복시켰고, 그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전에 새로운 출생을 주셨다.

 

아무도 구원받는 것이 뭔지 눈치 채지도 못했고 무얼 잃어버렸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그들을 전혀 다루지 않아서다. 예수님은 그들 중 누구를 위해서도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지옥에 보내기 위해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보이시려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신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 아니냐”고 비난받을 게 뻔합니다만 방금 말씀드린 것이 바로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요약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뇌리엔 이런 의문이 스치겠죠. ‘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체계에 머물려 하는가. 그처럼 이상한 이야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지 못할 것이 아닌가.’ 진정한 칼빈주의자들은 모든(심한가요, 그럼 좋습니다. 99.999%라고 하죠) 사람들이 자신과 자녀들 그리고 그 손자들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구원받기로 택함(예정)을 받았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예정)된 아이들을 선택(예정)된 부모에게 주셨다는 이 이야기는 칼빈주의의 원칙입니다. 부르심과 선택(예정)은 어린아이들이 이마에 물뿌림을 받을 때 확실하게 되고, 좀더 자란 다음엔 아이는 은혜의 언약 아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적인 선택이란 실제로 어떤 것인지, 또 하나님께 선택(예정)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여러분이 그 가운데 속해 있는지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누가복음 6장과 요한복음 6장을 살펴봅시다. 요한복음 6:70-71까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마귀니라, 하시나라. 그분께서는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그는 곧 열둘 중의 하나로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자더라.”

 

이 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받은 것으로 보여지는 한 남자를 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죽은 후에 지옥으로 가게 될 마귀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옥에 갔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하나님을 섬겼나요?” 네, 물론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나요?” 네, 물론입니다. 언젠가 제자들이 모두 마귀를 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등 이것저것을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이 일로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으므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20)

 

어떤 분들은 유다가 나쁜 인생을 살아간 몹쓸 사람이라고 추측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와 다락방에서 한 탁자에 앉아 계시면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유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이 한쪽으로 기대면서 “네, 저는 누가 좋지 않은 녀석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눈으로 지켜봤거든요”라며 속삭였을 거야.‘ 그러나 유다를 그렇게 눈여겨 봤던 제자는 없었습니다. 아무도 유다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사역자들 또한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그것은 결코 큰 일이 아니니라.”(고린도후서 11:14-15)

 

당신은 선택(예정)됐을 수 있습니다. 부르심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설교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기적을 베풀 수도 있습니다. 깨끗한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열거한 것들에 모두 해당되고, 또 모두 행하였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죽어서 지옥에 갑니다.

 

유다는 방금 말한 이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 여러분, 택함에 의존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보단 하나님께서 복음에 관하여 행하라고 하신 말씀, 그것을 듣고 행했는지에 의지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성경은 선택(예정)된 자마다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13).

 

자 이제 로마서 11장으로 가봅시다. 여기서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해 원수된 자들이지만 선택에 대하여는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로마서 11:28). 당신은 이 구절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택함(예정)과 복음은 같은 것이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일한 사람들이 복음에 있어서는 대적이면서 선택에 있어서는 사랑받는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진술은 로마서 9장, 10장, 11장 개요에서 발견됩니다. 이 구절들은 칼빈주의자들이 예정의 관한 그들의 견해를 지지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문맥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의 예정하신 자, 즉 선택받은 민족(이스라엘 민족)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 중 오직 남은 자만이 죄 가운데 죽고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물론 선택(예정)과 함께 말이죠.

 

왜죠? 선택(예정)은 당신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믿을 때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예정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정에 관한 진리를 명확히 하기 전에 성경이 예정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42:1-4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떠받쳐 주는 나의 종, 내 혼이 기뻐하는 자 곧 나의 선택한 자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었은즉 그가 이방인들에게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것을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공의를 베풀어 진리에 이르게 하리라. 그는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하며 마침내 땅에 공의를 세우리니 섬들이 그의 법을 바라리라.”

 

우리는 누가복음 4:16-21에서 위 구절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임을 듣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입니다.

 

“그런즉 성경 기록에도, 보라, 내가 선택한 보배로운 으뜸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당황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이 들어 있느니라.”(베드로전서 2:6).

 

하나님 아버지께서 놓으신 으뜸 모퉁잇돌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택(예정)된 자입니다. 그럼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를 믿는 자는 당황하지 아니하리라.”

 

당신은 그 선택(예정)된 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선택(예정)된 자입니다. 당신은 그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를 믿지 않으면, 창세 전에, 창세로부터, 창세 이래로 예비된  영원한 생명을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택(예정)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구원자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택하심(예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영원을 보낸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그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맡길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은 육안으로 그를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오직 한 사람만을 영원 안에 놓으시기로 선택(예정)하셨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로마서 8장으로 다시 가봅시다. 성경은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예정)된 자인지 여러분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선택(예정)된 자는 선택(예정)된 천사들(디모데전서 5:21)로서 하늘의 무리들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예정하신 민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입니다(이사야 45:4; 65:22) 그리고 대환란 기간에도 예정된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마태복음 24:24, 31-믿음을 가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땅의 민족들입니다. 또 하나님은 선택(예정)하신 아들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것만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 사실이 혼을 구원하지 못 합니다. 당신이 천사를 보는 것이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특별한 천사들을 만났다거나 하는 것은 구원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당신에게 전혀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스라엘 속에 합류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할 수는 있습니다.

 

, 로마서 8:29-29를 살펴봅시다. “하나님 주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목적을 따라 부름 받은 자들에게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기 때문이며, 그분은 또한 미리 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미리 정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를 또한 그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기로 미리 정하셨으니…” 아무도 하늘에 가도록 미리 정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구원받았다면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정해진 것입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로마서 8:29-32).

 

 잘 들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의 아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 사악한 자가 사악한 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아니오, 할 수 없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불법을 저지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 범법자가 범법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과업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만이 달성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께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32절을 보십시오.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당신이 만약 제롬을 열렬히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로 인해 당신은 훌륭한 어거스틴주의자가 될 것이고 이 사실은 또한 당신을 훌륭한 칼빈주의자로 만들어 줍니다. 이제 당신은 다음과 같이 믿어야 합니다.

 

‘나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 나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택함(예정)받았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로 가는 도중에 있다. 그것은 은혜의 언약과 주권적인 선택(예정)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누가 무슨 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고소하리오?” 그래서 저는 칼빈주의자들에게 물어봅니다. “구원 받았습니까?” “아, 네,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았기에 제가 어떻게 선택(예정)된 줄을 알지요” 그럼 저는 또 묻습니다. “당신이 고소당할 어떠한 일이 없다면 무슨 이유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근거 자체가 없었지 않습니까?” “당신은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유는 각자에게 죄에 대한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유죄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죄에 대한 어떤 책임에서도 자유롭고 깨끗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오직 한 명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선택(예정)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선택(예정)된 자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도달할 방도를 찾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오직 한 분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가지지 못하고, 가질 수도 없으며, 과거에 갖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절대 갖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소당할 혐의가 없이 선택(예정)된 자입니다. 사람에게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죄를 잉태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시51:5). 그는 본성상 진노의 자녀일 수 없을 것입니다(엡2:3). 그리고 그는 정죄를 받고 여호와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요3:18). 그런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충족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5장과 에베소서 2장으로 넘어가 봅시다. 고린도전서 15:22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여러분이 만일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담 안에 있습니다. 아담이 아버지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가족 계보입니다. 여러분의 뿌리를 추적하기 위해 유전학 연구를 하려고 도서관이나 몰몬 사원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뿌리는 에덴 동산으로 바로 달려갑니다. 저는 어느 도서관에서 연구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추적해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갖고 있고, 그러므로 저의 조상이 아담이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아담은 죄를 지었습니다. 죄가 아담의 피 속에 침투하여 혈관을 통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씨를 통해 그의 후손이라면 누구에게나 죄는 유전되었습니다. 저는 아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죄에 대한 책임이 없지 않으며,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는 모두가 죽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이가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경건한 의미로 ‘어떤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사람의 계보는 아담에게로 소급될 수 없습니다. 그에겐 인간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녀에게서 났습니다. 왜 그가 처녀에게서 났는지 아십니까? 그것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인간 아버지가 있었다면, 비록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이었다 할지라도 아담의 피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라면 그분 역시 모든 사람이 그렇듯 죄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씨로 태어나셨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처녀에게서 났고, 그의 혈관에는 하나님의 피가 흘렀습니다(행 20:28). 그는 죄 없이 사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택(예정)하신 자이므로 그분께 고소당할 해당사항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그의 안에서 모두가 살게 됩니다. 그가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왜 그 밖의 어떤 곳에서도 영원한 생명이 발견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영원한 생명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나 종교 안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찾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영원한 생명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예정)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담에게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께로 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 일은 육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육체적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담과 관련된 출생입니다. 즉 아담에게로 속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출생을 겪어야 합니다(요 3:3-8).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당신의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육체적으로 출생했습니다. 아담에게 속했다면 앞으로 죽을 것입니다. 이제 살기 위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선택(예정)하신 자입니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2:1을 보겠습니다. “또한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절은 말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자 보십시오! 어떻게든 나는 그분께 연합되었습니다. 그와 관련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생명을 나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삶에 들어오신 것’(오늘날의 기독교적 표현)이 아니라, 그분의 생명을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나는 아담에게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셨습니다. “음, 어떻게요? 저는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디도서 1:1)누가 하나님의 선택(예정)하신 자라고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당신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란 걸 어떻게 알지요? 그것은 당신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보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 참조 구절을 찾고 싶으면 갈라디아서 2:20을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저는 저를 구원하신 분이 지킬 줄도 믿기 때문에 제가 영원토록 구원받았음을 압니다. 그분의 믿음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택(예정)하신 자의 믿음이지요.

 

, 디도서 1:2로 되돌아 가보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 그분은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 단지 약속만을 주셨습니다. 그는 생명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내가 나의 아들을 보내리라. 나의 아들이 구원자가 되리라. 내 아들 안에 있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리라.”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엔 왜 당신이 아들 안에 있을 수 없었고 구속받을 수 없었는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피를 흘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오늘 당신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당신은 막 식사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먹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식사 하게 될 것을 압니다.” 그들은 약속했습니다. “그래, 좋아” 그들은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세상의 구원자가 되리라고 약속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서 베들레헴의 말구유가 새로 태어난 왕을 받아들이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이 세상 죄 때문에 피를 흘릴 것이라 약속했더라도 골고다 언덕의 잔인한 십자가에 못박히시까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신 것은 아닙니다. 자 이것이 중요할까요? 물론 중요합니다. 3절과 4절도 보십시다. “자신의 말씀은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명령에 따라 내게 맡겨진 복음 선포를 통하여 정하신 때에 드러내셨느니라. 공통된 믿음을 따라 나의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을지어다.” 정하신 때란 영원이 아닙니다. 시간입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구속자를 보내리라” 시간 속에서 그는 복음의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보내셨고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습니다. 시간 속에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베드로전서 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노아의 방주에서 피를 흘리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유월절의 밤에 피를 흘리시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도,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을 때도 피를 흘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당신이 성령의 성화를 통해서만 그리스도께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성령만이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은 자들만을 성화시킬 수 있다면(그리스도께로 들어가게 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심 당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피를 흘리시기 전에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영원 속에서 고안된 계획이 시간 속에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못박히심 이후에 구원받은 자들만이 축복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흠, 그럼 구약 때 죽은 모든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바로 그들이 낙원에서 기다려야만 했던 이유입니다. 그들은 낙원에서 자유롭게 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 없이는 죄의 사면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택(예정)하신 자의 죽음이 없으면 하늘나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죄는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흐음, 창세 전의 선택(예정)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에 선택(예정)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창세 전에 그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지기까지 당신은 그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피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안으로 집어넣는 수단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음,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행위를 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2절을 보고 구두점을 주의하며 살펴봅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쉼표,  그리고 또다른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쉼표, 여기서 또다른 말씀이 나옵니다.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순종’ 다음에는 쉼표가 나오질 않습니다. 즉 예수님의 순종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당신이 죄에 대한 책임이 없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 그분을 위해 흘린 당신의 피가 아니라, 당신을 위하여 흘리신 그분의 피입니다.

 

저는 에베소서 2장에 따르면 불순종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순종과 귀한 피의 흘리심을 통해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어떤 분에게서는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글쎄요, 저는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마음먹은 자를 구원하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구원하지 않기로 결정하신 자는 구원받지 못하고, 당신은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당신 말이 그렇다면 성경에서  베드로후서 1:20을 잘 읽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부르심과 선택(예정)에 대해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걸 왜 확실히 하라고 말씀합니까? 만일 사람이 선택(예정)된 것이라면, 왜 그걸 확실히 해야 합니까? 칼빈은 틀렸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니까요.

 

마태복음 22:11-14를 봅시다.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으니라, 하시니라.”

 

이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바른 옷을 걸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해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신나게 흔들어 대며 춤추고 있었다고 해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약물 복용을 하고 있다고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욕을 했다고 해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쫓겨난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입니다. 8절부터 읽어봅시다. 한때는 종교인이었던 어떤 사람의 증언을 듣게 됩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 여기에 옷을 입고 안 입고가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나는 아담에 속한자입니다. 나는 아담 안에 있습니다. 하늘의 문에 도달했을 때 나의 의로 만들어진 옷이 말합니다. “제 모습 어떻습니까? 제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안 된다. 네 모습은 좋지 못하구나.”

 “하지만 소매도 딱 맞는데요.”

 “맞다. 소매가 딱 맞는다.”

 “옷색도 제 머리에 어울리는데요.”

 “물론 그렇다.”

 “단추도 잘 끼웠고, 세탁도 잘 해서 오늘 아침 다림질을 한 겁니다. 어떠세요?”

 “아담 안에서 네 모습은 보기에 좋구나. 그렇지만 아담 안에서는 최고의 옷차림을 한다해도 들어갈 수가 없느니라.”

 “어, 그럼, 다시 가서 다른 것으로 갈아 입고 돌아오겠습니다.”

 “네가 50번 쯤 가지러 가도 좋다. 하지만 아담의 셔츠 중에는 너를 들여보내 줄 수 있는 게 없느니라. 너는 가장 바깥에 다른 외투를 입어야 하느니라.”

 그래서 교사, 구령자, 당신의 어머니, 할아버지 또는 주일학교 교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자 바로 여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있어. 너에게 잘 맞을 거야. 아니 완벽하게 맞을 거야”

“아, 어떻게 알까요? 제 치수를 알 수 없을 텐데요?”

“오, 한 치수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라도 딱 맞지. 장담할 수 있어.”

“글쎄요, 제가 뭘 해야 하죠?”

 “그냥 가져다가 입으면 돼”

“저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요

“파는 게 아니야

“그건 일해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가져다 입으면 돼. 안 그러면 너는 아담의 옷을 입은 채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될 거야”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어야 해”

“음, 제 생각엔 편협한 주장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그곳에 꼭 들어가고 싶어요. 슬쩍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은 몰래 들어가서 식탁에 앉을 것입니다. 당신만 빼고 모든 사람이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픈 엄지손가락처럼 돌출되어 눈에 확 띌 것입니다. 당신은 아담의 셔츠를 입었지만 실은 그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걸어와선 팔을 붙들고 말합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요? 이 사람 내보내.”

“하지만 전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팔꿈치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지 않았어요. 저는 손으로 음식을 먹지도 않았는데요.”

“이 사람 내보내. 잘못된 옷을 입고 있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논쟁해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입는 것이 좋겠죠?

 

그래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습니다. 딱 맞지요.

“와!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옷이 정말 딱 맞군요.”

 

저는 몇 군데의 교회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화요일이나 수요일 밤에 제가 도착해서는 “오늘 밤 성경에서 선택(예정)에 관해 뭐라서 말씀하시는지 강해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하면, 설교자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저를 쳐다보면서 “오, 안 됩니다. 설마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죠?”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부흥시키고 흥분시키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구원받으세요.”라고 누가 말하는 것을 듣고 흥분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행하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면 당신은 감격할 것이고 구원에 대해 결코 의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구원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 그럼 어떻게 구원에 들어가게 됩니까? 에베소서 1:11-12는 말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 보십시오.   “…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자, 11절을 봅시다. “예정되었다.” 11절을 봅시다. “그의 목적” 11절 “그의 작품” 11절 “그 자신의 생각의 조언” 12절 “먼저 그리스도를 신뢰한” 당신이 축복을 얻지 못했다면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당신이 그리스도를 신뢰하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3절을 봅시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하나님께는 추진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듣습니다. 그가 듣고 난 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가 복음을 믿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넣습니다. 그리고 그를 봉하여 인치십니다. 그 누구도 구원받기 전에는 예정되지 못합니다. 구원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4장과 요한일서 5장으로 가봅시다. 요한복음 14:6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그분에게서 얻어내야 합니다. 요한일서 5:11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또 그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당신은 그 아들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유일한 분입니다. 12절을 봅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논박합니다. “성경은 어려운 책이에요. 저는 성경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12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각 단어가 한 음절로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은 1학년에게도 가르칠 수가 있을 겁니다. 영존하는 생명과 영원한 저주는 한 음절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 아들을 소유하고 있다면 당신은 살게 됩니다. 당신에게 아들이 없다면,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주권(성령님은 한 번도 사용하신 적이 없는 단어)’적 선택(예정)이란 말에 신경쓰지 마십시오. ‘주권적 선포’도 신경쓰지 마십시오. ‘어거스틴주의’도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르메니안주의’ 혹은 그 어떤 인간이 만든 이름이나 인간이 만든 신학에 신경쓰지 마십시오. 당신이 아들을 소유하고 있다면 생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그 밖에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는 관계없습니다. 거리 한구석에서 선포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요양원에서 선포해보십시오.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쳐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이해할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도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복음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칼빈주의와 같이 복잡한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아르메니안주의와 같은 복잡한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간단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13절). 자,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나는 선택(예정)된 사람입니다." 내가 선택(예정)되신 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곧 우리 구원자의 눈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그분께서 정하신 때에 증언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디모데전서 2:3-6)

“다만 예수님을 보노라.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2:9)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요한일서 2:2)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이같이 판단하므로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면 모든 사람이 죽은 것으로 판단하노라.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린도후서 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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