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2009.11.23 09:31

칼빈주의-제2장 무조건적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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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W. 낙스의 칼빈주의 강의

2장 무조건적인 선택

 

이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강의 Calvinism Part 2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한 것입니다. 음성 파일을 듣고 번역한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Kjv74@hanmail.net

 

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경이 칼빈의 거짓 교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칼빈주의를 배격한다고 하면 알미니안주의자냐고 묻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둘 다 잘못된 교리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둘 다 거짓 교리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존 칼빈은 제롬의 사상을 연구한 로마 카톨릭 사제였습니다. 제롬은 5세기 경에 인물로,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영원을 어디서 보내게 될지 이미 예정되었다는 내용의 이교도 철학을 기독교화 한 사람입니다. 제롬에 의하면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지옥에 갈 것이고 하늘나라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무엇을 해도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제롬은 이렇게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사람이 구원받아야만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칼빈은 제롬의 이러한 사상을 그대로 전수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칼빈주의자들도 자신들을 제롬주의자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칼빈주의는 칼빈주의가 아니라 제롬주의일 뿐입니다. 그런데 제롬주의는 제롬주의가 아니라 운명론일 뿐입니다.

 

2.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칼빈은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만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예정된 것이라면 강간범이 불쌍한 여자를 강간한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강간범이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 됩니다. 어린이들이 학대받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던 것으로 사람이 실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됩니다. 아기를 내다 버리는 여자가 있더라도 그 잘못은 그러한 일을 계획하고 예정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이 됩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미리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 결과를 바꾸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칼빈의 생각처럼 모든 죄의 원인과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하나님은 결코 죄를 짓도록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3.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칼빈주의 사상은 “튤립(TULIP)”이라는 약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적 타락”은 인간은 죄와 허물 가운데 죽어 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교리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전적 타락”이라는 교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교리”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칼빈주의의 둘째 강령은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선택하셨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영원 전에 지옥에 보내시기로 결정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그가 구원받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믿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라 예정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받았고 태어나기도 전에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것입니다.

 

4. 에드윈 팔머의 책을 다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는 칼빈주의 교과서를 집필했고 NIV의 번역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확인해 봅시다. “미리 정하심이라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미리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술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미리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쏘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 물론 칼빈주의자들은 이런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것은 자신들이 구원받는 것과 자신들의 자녀들과 손자들이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직 구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칼빈주의의 절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직한 칼빈주의자라면 칼빈주의의 양면을 다 이야기해야 합니다.

 

6. 팔머의 글을 계속 인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하신다.” 창세기 19장에는 동성연애자들이 나옵니다.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그들이 동성연애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거짓 신인 몰렉을 섬기며 자기들의 아이들을 제단에서 불살라 버렸던 자들의 행위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 됩니다. 이게 바로 칼빈주의입니다.

 

7. 팔머의 글을 계속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길 옆에 비켜 서시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놀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과 뜻에 따라 모든 일을 결정하시고 미리 정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나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나 타자수가 오타를 내는 것이나 심지어 죄까지도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에 따른 것이다.” 저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8. 팔머의 예정에 대한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예정이란 미리 정하심의 일부분이다. 미리 정하심이란 모든 것이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다. 예정은 미리 정하심의 일부분으로 하늘나라나 지옥에 가게 되는 인간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 예정은 선택과 버림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정은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고 버림은 지옥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선택(election)이란 일반적으로 투표를 통해서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이란 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도록 정하시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정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비뚤어진 관점을 가진 사람입니까!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하늘나라에 가도록 정하셨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정하셨다는 말일 뿐입니다. 이것은 칼빈주의 교과서에 나와 있는 칼빈주의자들의 교리입니다.

 

9. 이러한 거짓 교리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우연에 대한 것인데 우리는 이것에 대한 몇몇 구절들을 찾아볼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믿으시나요, 아니면 존 칼빈을 믿으시나요? 성경에 의하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 물론 성경에는 어떤 사람들이 예정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거듭난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정되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10.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겠습니다. 신명기 22:6입니다. 나무에나 땅 위에 있는 새의 둥지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길에서 네 앞에서 보거든 너는 그 어미 새와 새끼를 함께 취하지 말고(If a bird’s nest chance to be before thee in the way in any tree, or on the ground, whether they be young ones, or eggs, and the dam sitting upon the young, or upon the eggs, thou shalt not take the dam with the young:)2) 칼빈주의자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나 타자를 치는 사람의 실수나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납치하거나 죽이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1. 사무엘상 6:9을 보세요. 볼지니 만일 그 궤가 자기의 본래 지경의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그분께서 이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셨느니라.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분의 손이 아니며 그 일이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났음을 우리가 알리라, 하니라.(…it was a chance that happened to us.) 사무엘하 1:6도 보세요. 그에게 고한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는데(…As I happened by chance upon mount Gilboa…), 보소서, 사울이 자기 창에 의지하였고, 보소서, 병거와 기병들은 그를 맹렬히 따르더이다. 구약성경에서 한 구절을 더 찾아보고 신약성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전도서 9:11을 보세요. 내가 돌이켜 해 아래에서 보니 경주가 빠른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전투가 강한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며 빵이 지혜로운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재물이 명철한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며 은총이 재능 있는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오직 때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생기느니라.(…but time and chance happened to them all.)3) 인생을 살다보면 우연히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칼빈주의자들이 뭐라고 하건 우연한 일은 일어납니다.

 

12. 이제 신약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30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하나님께서 그가 강도들을 만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그에게 상처를 입혀 그를 반쯤 죽이게 하시고 떠나가게 하셨느니라.” 만일 여러분이 칼빈주의자라면 본문을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이 강도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하지만 내가 너를 도둑질하게 만들었노라.”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는 사람이 그것을 하게 만드신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진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이겠지요. 그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인간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니까요. 저는 어떤 칼빈주의자와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지만 주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저는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에 의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13. 31절도 보시겠습니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And by chance there came down a certain priest that way…) 그를 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바라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되(31-31절)4) 31절에서 어떤 제사장이 우연히 내려왔다는 표현이 보이시나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 강도를 당한 것이나 상처를 입은 것이나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간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우연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날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14. 다시 여호수아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 24장입니다. 14절부터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를 두려워하며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그분을 섬기라.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다른 신들을 제거하고 너희는 주를 섬기라. 만일 주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나쁘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혹은 너희가 거하고 있는 땅의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이 날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으로 말하건대 우리는 주를 섬기겠노라, 하매(14-15절) 성령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은 여러분이 섬길 하나님을 여러분의 의지를 사용해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선택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뜻에 따라 선택하라는 것이지요. 여호수아는 자신의 뜻과 의지와 결정에 따라 자기와 자기의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모리 족속들의 신들이나 이집트인들의 신들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신을 섬길지 여러분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칼빈주의자라면 이러한 구절들과 개념들과 진실 앞에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아세요?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아니면 여호수아는 실언을 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방금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24:14-15은 여호수아의 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예수님이 실언을 하신 것입니까? 솔로몬이 헛소리를 한 것입니까?

 

15. 로마서 8장을 보세요. 예정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8절부터 보시겠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부분만 읽지 말고 전체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가게 됩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하늘나라에 가게 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구원받게 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정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16. 성경에 나온 예정이란, 사람이 구원받게 되면 그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늘나라에 가서 앉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할 것이고 주님과 함께 통치할 것입니다. 단순히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 미래의 전부도 하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예정해 놓으신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여러분의 미래라고 말씀하시는 구절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고 주님처럼 변화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하늘나라에 갔는데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저는 그곳을 떠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늘나라에 갔는데 우리가 모두 주님처럼 변화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모여 있다면 저는 우리 모임을 떠날 겁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예정이란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처럼 변화할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맥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17. 만일 예정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서 어떤 사람은 구원받기로 정해졌고 어떤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도록 정해진 것이라고 믿는다면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시는 예정은 누가 구원받고 안 받고에 관한 예정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하는 것에 관한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가 어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정이 인간의 구원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는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유입니다.

 

18. 왜 많은 교회에서 칼빈주의를 붙들고 있는지 아세요? 성경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아무 교회나 가서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대로 설교하는지 한번 보세요.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방문한 교회가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라면 그 교회에 다니세요. 반드시 우리 교회에 나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입니다.

 

19. 에베소서 1장도 보세요. 3절부터 보시겠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으며” 제가 읽지 않은 단어가 뭐였는지 아세요?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그분 안에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예정이 해당되는 겁니다. 그 다음 부분도 보겠습니다.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셨으니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분별을 넘치게 하사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라.”이렇게 되어 있나요? 아니지요. “이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하려 함이라” 이것도 아니지요.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5-12절) 이 본문에는 예정이라는 말이 두 번 등장했습니다. 두 번 다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입니까? 12절의 끝부분을 다시 한 번 잘 보세요.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20. 여러분이 읽은 에베소서 1장의 본문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나 믿기 전에 예정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예정 안으로 들어온 겁니다. 신뢰가 먼저고 그 다음이 예정 안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이렇게 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 주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도 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본문에서 예정이라는 단어만 문맥에서 떼어내어 그 단어만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명사형인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처럼 변화할 것이 예정되어(predestinated) 있다고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예정에 대해서 성경을 인용할 때 거의 모든 경우에 잘못 인용하고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21. 오늘 우리의 얘기 주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시는지, 주님께서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약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반드시 넘어지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넘어질 것이라고 아는 것은 아이가 탄 자전거를 발로 넘어뜨리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아이를 넘어뜨리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는 누구나 넘어지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범하리라는 것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셨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현명하시기에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해서 모든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지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일을 아시는 것이지 그 일이 그렇게 되도록 하신 것은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23. 저에게는 칼빈주의를 믿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칼빈주의를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실행하지는 말라고 충고합니다. 칼빈주의를 믿으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 믿음과 실행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을 구원받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미 믿기로 예정된 사람을 설득해서 믿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일 그가 믿지 않기로 예정된 것이라면 더욱 복음을 전하고 설득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권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스탠리라는 친구는 칼빈주의자인데도 복음을 열심히 증거하고 다닙니다. 자신이 믿는 것과 반대되는 일에 엄청난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그 친구가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사람들은 그 친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그 사람들이 이미 구원을 받은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칼빈주의자들 중에는 자신이 믿는 교리와 반대로 실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에 한번 논쟁을 했던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던 어떤 칼빈주의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기도할 필요도 없고 성경을 읽을 필요도 없고 회개할 필요도 없고 복음을 증거할 필요도 없고 성경을 연구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가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하신다면 제가 그것을 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다가 넘어져서 어깨를 의자에 부딪혔습니다. 저와 다른 사람이 그를 일으켜 세우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넘어졌다고 해서 좋아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22. 베드로전서 1장을 보세요. 1절부터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1-2절) 만일 여러분이 선택받은 사람이라 해도 여러분이 받은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리고 충만한 때가 차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들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지 여러분은 선택받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갈보리 이전에는 흘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을 씻어 주실 때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선택된 것입니다. 피가 흘려지기 전에는 여러분의 죄를 씻어 주실 수 없었겠지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여러분을 씻어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23. 오늘밤 우리가 선택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간략히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셨으며 창세 전에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은 바로 그 하나님의 선택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고 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창세 전에 있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분이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택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셈이 됩니다.

 

24. 다시 로마서 8장을 보세요. 로마서 8장을 읽기 전에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 것이 맞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성경에 의하면 의인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 맞습니까?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롬 3:10)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는다는 것이 맞습니까(요일 1:8)?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 맞습니까(요 3:7)? 이제 칼빈주의자들의 말대로 우리가 창세전에 이미 선택받은 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자, 그러면 이제 로마서 8:33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무슨 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고소하리요?” 만일 제가 창세 전에 선택된 자라면 저는 구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용서받을 필요도 없어요. 저에게는 구원자도 필요없어요. 저는 거듭날 필요도 없고 피흘림도 필요없어요. 만일 제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라면 어느 무엇으로도 저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25. 그런데 만일 선택된 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겠습니까? 누가 무슨 일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분을 고소할 수 있겠습니까? 보이시나요? 주님은 어떤 죄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정죄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께는 흠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내게 죄를 깨닫게 하겠느냐?”(요 8: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도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노라”(눅 23:4)라고 증언했습니다. 여러분이 에베소서 1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 함을 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그래서가 아니며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어서도 아니고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래서는 더욱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자로 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이 없으시기 때문이고, 여러분이 바로 흠 없는 그 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 선택받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서 정죄를 받지 않는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의 때문이 아닙니다.

 

26.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누가 구원을 받을지와 누가 지옥에 갈지 미리 결정해 놓으시고 그래서 미리 아시지 않았을까요?” 예, 아마도 기독교 미신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셨을 겁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짐승들이 한 쌍씩 들어갔지요? 그런데 홍수 이후에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서 하나님께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다면 이제 그 짐승은 멸종한 것인가요? 아니지요. 성경에서는 제사에 사용할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이 방주에 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이었고 그렇지 않은 짐승은 두 쌍 씩 방주에 탔었지요.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기독교에는 미신이 있습니다. 방주에는 암수 한 마리씩 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확인하지 않고 그냥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보면 전혀 엉뚱한 게 사실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놀라운 일을 신비로운 방법으로 역사하시느니라.”는 구절은 정말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히스기야 3장에 있는 말씀인데 읽어보신적 없으세요? “성결 다음은 청결이니라.”는 말씀은 어떻세요? 아주 놀라운 성경 말씀이 아닌가요?

 

27. 마태복음 25장을 보세요. 34절입니다.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양으로 드러난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창세로부터 예비된 왕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염소로 드러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41절을 보세요.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혹시 여러분 중에 제가 방금 읽은 대로 되어 있는 성경을 가지고 계신 분 손들어 보세요.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요. 성경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라고 되어 있어요.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예비된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서 예비된 장소에 가는 겁니다.

 

28. 제가 성경을 몇 구절 인용해 보겠습니다. 칼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의도하심과 계획하심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셨을 때 어떤 사람도 그곳에 가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의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29. “그럼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뭡니까?” 이사야 5장을 보세요. 칼빈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거나 매우 능력이 적은 창조자일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가 구원받을지 창세 전에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누가 구원받지 못할지도 창세전에 알고 있었다면, 그들의 정확한 수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칼빈의 하나님이 산수를 제대로 공부한 하나님이라면 구원받을 사람의 수와 지옥에 갈 사람의 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나라를 만드셨고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서 지옥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2주일에 한번씩 이런 종류의 편지가 옵니다. 제가 간극 이론을 믿고 있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사람에게 묻고자 합니다. 그러면 마귀는 언제 타락했나요? 마귀가 타락한 시점이 언제인가요? 만일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마귀가 타락했다면 아담을 유혹한 것은 누구였습니까? 만일 마귀가 아담 이전에 타락했다면 그게 언제였나요?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넷째 날도, 다섯째 날도 아니라면 마귀는 언제 타락했지요? 언젠가는 마귀가 타락한 시점이 있을 거 아닙니까?

 

30.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죄를 짓도록 하셨나요? 칼빈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도록 하셨나요? 칼빈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보내셔서 아담을 유혹하고 타락하도록 하셨나요? 칼빈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여러분이 칼빈주의자라면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아셨고 또 그들 중 일부는, 아니, 아마도 상당수는 지옥에 보내기를 원하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칼빈주의입니다.

 

31. 이사야 5:14을 보세요. “그러므로 지옥이 자기를 확장하고 한량없이 자기 입을 벌렸은즉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큰 무리와 그들의 영화와 또 기뻐하는 자가 거기로 내려가리로다.” 제가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지옥에 갈 사람들을 미리 정해 놓으시고 그들이 누구인지, 또 몇 명인지 미리 아셨다면 왜 지옥을 충분히 크게 만들어 놓으시지 않으셨을까요? 지옥에 갈 사람의 수를 미리 아셨다면 지옥을 확장 공사 하실 필요가 무엇입니까? 왜 화산이 분출해서 땅 아래에 혼들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이번 얘기의 주제가 지옥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갈 사람의 수를 미리 정해 놓지 않으셨기 때문에 지옥을 확장하실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32. 우리가 살펴볼 다음 구절은 출애굽기 32장과 계시록 3장입니다.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나요? 질문이 좀 교묘하니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 보세요.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10:17)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죄를 기억하시나요? 만일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닌 것이네요. 그렇지요? 사실 이건 교묘한 질문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인 추측으로 신학적인 입장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추측으로 가정을 하고나서 결론으로 교리를 세우면 비성경적인 교리가 나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추측을 하고는 그 추측이 맞다면 하나님께서는 누가 지옥에 갈지와 누가 하늘나라에 갈지도 미리 아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르기로 선택하신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기만 하신다면 모든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기로 선택하셨습니다. 할렐루야!

 

33. 자 다른 문제를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쉽게 맞힐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의 수까지도 다 알고 계시지요? 이제 문제 나갑니다. 다음을 잘 듣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 7:23) 시편 139:13에서는 주님께서 사람을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아십니다. 그런데 이제 지옥에 보내시는 순간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바로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다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 채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을 선택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모든 것을 아시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이름은 아시면서 지옥에 있는 부자의 이름은 대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왜 부자의 이름을 대지 않으신 줄 아세요?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지옥에 간 부자를 알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지하 세계를 보실 때 구원받은 아브라함과 나사로와 지옥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보신 겁니다. 한번 상상해 보겠습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그가 누구인지 주님께 질문드렸을 겁니다. “주님 저 부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도 모르겠노라”고 대답하셨을 겁니다. 그러자 누가는 재차 물었을 겁니다. “주님, 저는 지옥에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제 복음서에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것이 비유라고 하지 못할 테니까요.” “누가야, 나도 너를 도와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사람을 결코 알지 못하노라.” 이런 것을 가르치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가 들어 보지 못한 것은 성경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렵습니다.

 

34. 이제 출애굽기 32장을 보시겠습니다. 32절부터 보시겠습니다. 이것은 백성을 위한 모세의 간구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32-33절) 여기서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구원받지 못한 채 지옥에 갈 것이라서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버릴 것을 미리 알았다면 왜 처음에는 그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까? 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처음부터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의 이름만을 기록해 놓지 않은 것입니까? 왜 기록한 것을 지우는 것입니까?

 

35. 계시록 3장을 보시겠습니다. 5절입니다.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 구절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의 이름이 처음에는 생명책에 있다가 나중에는 지워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권적인 결정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것을 하나님께서 그에 맞는 결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36.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강해하지도 못하는 로마서 9장의 민족적인 선택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개인의 구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택에 끼워 맞춰 버린 것입니다. 칼빈은 교회가 이스라엘이라고, 제네바는 예루살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난 500년간 칼빈주의자들이 항변한 유일한 무기는 파라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서 오직 파라오만을 인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바울도 있고 베드로도 있고 요한도 있고 누가도 있는데 왜 하필 인용하는 것이 파라오에 대한 것뿐입니까? 그 많은 구약성경의 인물들과 선지자들은 왜 인용하지 않는 것인가요? 칼빈주의자들의 다음 증인은 누구인가요? 빌라도인가요? 이세벨인가요?

 

37. 로마서 9:17을 보세요. “성경 기록이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내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너를 일으켰나니 이것은 내가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밝히 알리려 함이니라, 하시나니” 이 구절 어디에도 하늘나라에 가거나 지옥에 가거나 하는 언급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파라오야, 내가 나의 권능을 보이기 위해서 너를 선택했노라. 너로 인해서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능력있는 하나님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게 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잠깐만요. 비슷한 경우를 한번 들어 보세요. 몇 백년 후에 한 사람 등장합니다. 그는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파라오처럼 큰 권력을 가진 통치자였습니다. 그리고 파라오처럼 유대인들을 지배하던 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고레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그러자 고레스가 뭐라고 주님께 답했는지 아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답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고레스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과 권능은 온 땅에 두루 밝혀졌습니다. 고레스는 파라오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38. 파라오도 이스라엘 백성을 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파라오도 어떠한 재앙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파라오의 첫째 아들이 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병사들이 홍해에 빠져 죽지 않아도 하나님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이름과 권능이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파라오의 아들을 죽이거나 이집트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주님의 이름과 권능을 온 땅에 두루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있었고 저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고레스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있었고 저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었습니다.

 

39. 마태복음 22장을 보세요. 1절 부터 보세요. “예수님께서 응답하며 다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왕과 같으니라. 그가 자기 종들을 보내어 결혼식에 초대받은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이 오려 하지 아니하매”(1-3절) 왕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혼인 잔치는 무엇입니까? 천년왕국입니다. “오십시오. 당신은 초대받았습니다.” “오세요. 왕께서 당신을 초청하셨습니다.” “왕께서 잔치에서 당신을 보고자 하십니다.” “왕께서 당신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우리는 원하지 않아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왕이 그들을 직접 초대하고 그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으나 오지 않은 것입니다.

 

40. 4절입니다. “그가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기를, 초대받은 자들에게 알리되, 보라, 내가 오찬을 준비하고 내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라,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들의 길로 가되 하나는 자기 농장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장사하러 가며 그 남은 자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이니라.”(4-6절) 왕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종들을 모욕하고 죽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예정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잔치에 오기로 예정된 사람들이 초대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41. 7절입니다. “왕이 그것을 듣고 노하여 자기 군대들을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태우며” 만일 이 모든 것이 왕이 의도하고 계획한 것이라면 왜 그대로 행한 사람들의 행위에 화를 내는 것입니까? 왜 처음부터 오지도 못할 사람들을 초대한 것입니까? 만일 손님들이 처음부터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초청했다면 이것은 기만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계 2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다 농담이었나요? 오지 않을 것을 미리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결국 속인 것이 아닙니까?

 

42. 8절을 보세요. “그 뒤에 자기 종들에게 이르되, 결혼식은 준비되어 있으나 초대받은 자들이 합당하지 아니하니” 초대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선택인가요? 왕이 있고 왕이 베푼 잔치가 있고 또 초청이 있습니다. 왕의 개인적인 초청인데 사람들이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잔치에 오지 않았고 왕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43. 선택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정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죄의 책임이 없습니다.

 



1) 성경에서는 predestinate라는 동사형으로는 로마서 8:29,30, 에베소서 1:5,11 이렇게 4번 나옵니다. 그러나 명사형인 predestination은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온 예정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과 관련있는 것이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구원받도록 예정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역주

2) 우리말 번역에는 여기서 “우연히”라는 단어가 빠져 있습니다. 바른 번역이 되려면 “길에서 네 앞에서 보거든”을 “길에서 우연히 네 앞에서 보거든”이라고 해야 합니다.-역주

3) 우리말 번역에서는 chance를 기회로 번역하였습니다. 기회라고 번역하기보다 우연이라고 번역했더라면 더 정확한 번역이 되었을 것입니다.-역주

4) 여기서도 우리말 번역에서는 우연히라는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바른 번역이 되려면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를 “어떤 제사장이 우연히 그 길로 내려오다가”가 되어야 합니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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