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3.09.17 07:31

영적 성장-10 애정(affec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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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애정(affection)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Spiritual Growth를 의역한 것입니다.

 

1. 구원받은 사람들의 애정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 갈라디아서 5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affections)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5:22-24)

 

2.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종교를 갖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선행을 하거나 업적으로 남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빛 가운데 걷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큰 책망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한 일일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진리를 보여주시는데도 우리가 계속해서 불순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성경에 무엇이라고 써 있는지 아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3. 갈라디아서 4장도 보겠습니다. 그들이 너희를 열심히 사모하나(affect) 좋지 아니하니라. 참으로 그들은 너희가 자기들을 사모하게(affect) 하려고 너희를 떼어 놓으려 하는도다. 그러나 좋은 일로 열심히 사모함을(affect) 받는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언제라도 좋으니라.( 4:17-18)

 

4. 오늘 우리는 애정(affection)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갈라디아서 5:24에 나온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they that are Chsist’s)”이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기 위해 들어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고 동시에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집어 넣어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됩니다.

 

5. 여러분이 알건 모르건, 실감하건 실감하지 못하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 인해 여러분이 구원받게 되면 여러분의 애착들과 정욕들은 십자가에 못박히게 됩니다. 성경은 못박았느니라.” 라고 과거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6.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라면 여러분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6장에 의하면,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죄에게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7.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생각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점령하지 못한 게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8.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진실은 이렇습니다. 나의 육신, 나의 육신의 애착들, 육신의 정욕들은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여기에 고정시킨다면 우리는 육신대로 살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에 종 노릇하며, 죽은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9.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나 우리에게 허락하신 상황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에 있습니다.

 

10. 우리가 방금 살펴본 갈라디아서 4장에 의하면 잘못된 애정(affection)이 있습니다. 17절에서는 잘못된 애정(애착)이 있다고 하고 18절에서는 좋은 애정이 있다고 합니다. 애정은 가치중립적인 것입니다. 좋은 것에 애정을 가지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에 애정을 가지면 나쁜 것입니다.

 

11. 먼저 애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애정은 생각(mind)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본능과는 다릅니다. 애정은 열정(passion)과는 다릅니다. 열정은 현재의 즐거움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12.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의 생각은 무엇인가를 사모합니다. 즉 무엇인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성향과 관련된 본능이 있습니다. 더운 날씨를 잘 견디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추운 날씨를 잘 견디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채와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기와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본능적인 기질에 속하는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애정은 아닙니다.

 

 

 

13. 애정은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 추구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따르면 본능적인 면에 있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관한 것들이나 영적인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의도적으로 영적인 것들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성상 자연스럽게 영적인 것들을 추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14. 애정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열정입니다. 열정은 현재의 즐거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무엇인가를 하지만 애정이 아닌 열정을 가지고 할 수도 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방식의 은사주의 집회는 애정이 아닌 열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애정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자신이 들은 그 말씀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정립합니다. 그러나 열정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그 말씀 자체를 즐기기는 하지만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저 듣기 좋은 설교를 듣고 즐겼을 뿐입니다.

 

15. 제가 여러분에게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고정시키라는 말씀을 전했을 때, 설교가 끝나고 나서도 여러분이 그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서 삶에 적용시킨다면 여러분은 애정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열정은 한 순간에 흥미를 보이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애정은 지속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애정, 그리고 영적인 것에 대한 애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애정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좋은 애정도 있고 나쁜 애정도 있습니다. 무엇에, 누구에게 애정을 보이느냐에 따라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나 사람에게 애정을 두고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애정을 두었고, 어떤 사람은 담배에, 어떤 사람은 마약에, 어떤 사람은 음행에, 어떤 사람은 음악에, 어떤 사람은 유흥에, 어떤 사람은 남자 친구에, 어떤 사람은 여자 친구에, 어떤 사람은 이것에, 어떤 사람은 저것에 애정을 두고 살았습니다.

 

17. 애정은 항상 생각을 특정한 대상에 붙들어 두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든지,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것은 애정으로부터 나옵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십대에 주로 형성됩니다. 애정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을 망치는 것은 열정(passion)입니다. 우리가 애정을 바르게 사용한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고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애정을 잘못된 대상에 사용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18.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애정을 두었던 대상에게 아직도 동일하게 애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끔찍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구원받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옛 애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여 애정을 차지했던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셨고 여러분이 마땅히 애정을 두어야 할 새로운 것을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고 묵상해야 할 새로운 것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애정을 두어야 할 새로운 것을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19. A.W. 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진심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가 혼자 자유롭게 있을 때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으로 자신을 채워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교회에 있을 때의 모습을 보고 평가하지 마십시오.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있을 때의 자신을 보고 평가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있을 때, 마음속으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가 바로 여러분의 진짜 모습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여러분의 마음 속을 점령한 것과 여러분이 마음 깊이 원하는 바로 그 것이 여러분의 진짜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여러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 형제 자매들에게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20.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이 말씀하시는 애정이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가 무엇에 애정을 두어야 하는지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구원받고,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마땅히 애정을 두어야 하는 네 가지 것이 나옵니다. 먼저 로마서 12장과 데살로니가전서 2장과 고린도후서 7장을 통해 우리가 애정을 두어야 할 첫째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1.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음악과 영상은 대부분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매우 정교한 컴퓨터입니다. 어떤 것들은 한번 각인되면 4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22.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까요? 먼저 로마서 12장을 보겠습니다.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12:10)

 

23. 고린도후서 7장도 보겠습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 육체에 안식이 없었으며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여 밖에는 싸움이 있었고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담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디도를 오게 하사 우리를 위로하시되 그를 오게 한 것뿐만 아니라 그가 너희 안에서 위로받을 때 얻은 그 안위로 위로하셨나니 그가 너희의 간절한 소망과 너희의 애곡과 나를 향한 너희의 뜨거운 마음을 우리에게 고하였으므로 내가 더욱 기뻐하였느니라.(고후 7:5-7)

 

24. 데살로니가전서 2장도 보겠습니다. 유모가 자기 아이들을 돌보듯 너희 가운데서 부드러운 자가 되었노라.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다정하게 사모하여(affectionately)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혼까지도 너희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자 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소중하였기 때문이라.(살전 2:7-8)

 

25. 여러분이 애정을 두어야 하는 첫째 대상은 바로 형제들입니다. 여러분은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특정한 대상에 애정을 두어야 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형제 자매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 자매들에게 합당한 애정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그들에 대해 항상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6. 여러분의 마음속에 형제 자매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는 훨씬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이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이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께 더 많은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27. 정말 비참하고 슬픈 사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형제 자매들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잘 나가야 하는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승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느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형제 자매들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28. 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관한 것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형제 자매들에 대해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형제 자매들에게 애정을 두어야 하는데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이 세상에 관한 것들이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29.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정치적인 문제로 마음을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이란,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시리아에서의 전쟁, 북핵문제, 혹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누가 정권을 잡을 것인지, 좌파가 잡을 것인지 우파가 잡을 것인지, 이런 문제로 생각과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좋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형제 자매들에 대해 충분히 기도하고 있다면 이러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도 됩니다.

 

30. 여러분은 형제 자매들에게 합당한 애정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형제 자매들에게 합당한 애정을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여러분이 받은 영적 은사를 가지고 그들을 섬긴다면 나머지 시간에 이 세상에서의 문제들을 생각해도 그것은 전혀 죄가 아닐 겁니다.

 

31. 이 세상에는 온갖 간교한 죄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 구절을 들어서 이것은 죄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모습으로 위장을 한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을 전혀 죄가 아닌 모습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마땅히 하라고 하신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다면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32.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축구경기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축구경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죄입니다. 저는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죄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으로 인해 형제들에게 애정을 두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면 그게 바로 죄라는 겁니다.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해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할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33.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왔다가 떠나간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왜 떠나갔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합당한 애정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목록은 전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그들을 위한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기도에 응답하여 떠난 형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움직여 주셔서 교회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셨으나 아무도 떠난 형제, 실족한 형제를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해 주실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34. 여러분, 왜 우리가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지 아세요?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게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 나에게 유익한 것, 내 집, 내 직장,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중요한 것만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만 기도하기 때문에 다른 형제 자매들에 대해 기도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35. 저는 집이나 직장이나 직업을 위해 기도하는 게 죄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합당한 애정을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애정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죄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3. 자신의 남편과 아내에게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36. 이제 우리가 애정을 주어야 할 둘째 대상을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을 보겠습니다. 또한 이것을 알라. 즉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딤후 3:1-3)

 

37. 여기서는 본성의 애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것을 로마서 1장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이 자기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그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그들은 곧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 뒤에서 헐뜯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업신여기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한 일들을 꾸미는 자요,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요,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같은 일들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 1:21-32)

 

38. 로마서 1장의 문맥에서 말하는 본성의 애정이란 무엇입니까? 남자는 여자와 함께 짝을 이루고 여자는 남자와 함께 짝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본성의 애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본성의 애정은 아니겠지만 본성의 애정은 이런 것과 같습니다.

 

39. 성경은 마지막 때의 특징으로 사람들에게 본성의 애정이 없는 것을 꼽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거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거나 애완동물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지막 떼에 사람들에게서 본성의 애정이 사라진다는 말은 동성연애자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주신 본성의 애정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에게 애정을 갖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주신 본성의 애정은 남자를 사랑하고 그에게 애정을 갖는 것입니다.

 

40. 구원받은 모든 형제들의 애정은 자신의 아내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입니다. 아내를 생각하고 돌보고 도와주고 보호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음란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이나 영상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러한 것들의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대로 자신의 아내에게 합당한 애정을 두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의 문제는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것들에 잘못된 열정을 갖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41. 자매도 자신의 남편에게 합당한 애정을 보여야 합니다. 남편에게 합당한 애정을 보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한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매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눈에 옳지 않게 보여도 그 말에 따르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결혼한 자매들이 가장 빈번하게 짓는 죄는 자신의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자매는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닌 겁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라 할지라도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여자를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볼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자를 그렇게 살라고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말을 하면 아마 사람들은 저를 보고 미쳤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이백 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면 아무도 저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이백 년 전에 진리였던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진리라고 믿습니다.

 

42. 아내는 남편에게 합당한 애정을 두고 남편은 아내에게 합당한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비단 결혼한 사람뿐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애정을 두고 여자는 남자에게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 합당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애정이 아닌 열정이 있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성경적 정의에 의하면 애정은 지속되는 사랑과 관련이 있고 열정은 순간적인 즐거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애정은 영적인 것과 관련이 있고 열정은 육신적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43. 오늘날 많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애정이 아닌 열정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일 때는 사랑하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외도를 하는 겁니다. 애정이 아닌 열정으로 상대방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열정으로 결혼하면 그 끝은 이혼입니다. 애정은 지속되는 사랑이지만 열정은 태워버리는 불입니다. 하나를 태워버리고 나면 태워버릴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방황합니다. 이것이 바로 열정입니다.

 

4. 하나님의 집인 지역교회에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44. 디모데전서 3장과 역대기상 29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디모데전서 3장을 보겠습니다. 데모데전서 3장에서는 집사와 감독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인도자들이 어떻게 교회를 감독하고 인도해야 하는지 지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교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내가 곧 네게 가기를 바라면서 이것들을 네게 쓰노라.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네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4)

 

45.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는 이렇게 지역교회를 언급하면서도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지역교회의 회원들의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역교회가 모이는 장소가 하나님의 집은 아닙니다. 성경이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물리적인 장소를 의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건 지역교회건 항상 믿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46. 우리가 방금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역대기상 29장을 읽으면서 영적으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또 내가 그 거룩한 집을 위하여 예비한 모든 것 외에도 내가 내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였으므로(affection to) 내 소유의 재물 곧 금과 은 중에서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드렸노니(대상 29:3)

 

47. 우리가 합당한 애정을 드려야 할 세 번째 대상은 성경에 의하면 바로 하나님의 집인 지역교회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지역교회로 모이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나누고 찬양을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지역교회에 애정을 두고 있습니까? 구원받기 전에는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것에 애정을 두었을 겁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나서는 애정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에 애정을 두게 된 것입니다.

 

48. 저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형제 자매들이 교회에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교회에 대한 애정이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이 단순히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교회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일요일 오전에 갈만한 곳은 수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이 시간에 교회에 오셨습니까? 교회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교회에 왔다면 잘하신 겁니다.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고 애정은 전혀 없이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는 명백합니다.

 

49.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여 자신의 소유물을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드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신약의 진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잘 못 믿는다고 해서 가난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소유한 재물과 신앙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저 자신이 소유한 것을 하나님의 집을 위해 드렸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과 애정이 하나님의 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50. 여러분이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않으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재물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바른가 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재물보다 여러분의 태도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51. 다윗은 재물이 아닌 하나님의 집에 애정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재물을 주셨습니다. 그의 애정은 재물이 아닌 하나님의 집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물을 다시 하나님의 집을 위해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면서 무엇인가 이득을 얻으려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은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52. 우리는 왜 하나님의 집에 애정을 두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고 하나님께서 바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경배를 받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께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53. 이제 마지막으로 골로새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의 애착(affection)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라.( 3:1-2)

 

54. 성경은 여러분에게 위에 잇는 것들에 애착을 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생각(mind)을 강제로 바꿔주지 않으실 겁니다. 강제로 여러분이 바른 생각을 하도록 하지도 않으실 겁니다. 강제로 여러분이 바른 것을 원하도록 하지도 않으실 겁니다. 다만 여러분에 어디에 애정을 둬야 하는지 말씀하시고 여러분을 인도해 주실 겁니다.

 

55. 하나님께서는 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책을 책상 위에 둘 수도 있고 장롱 속에 넣어 둘 수도 있습니다. 책을 어디에 두느냐는 전적으로 저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생각과 애정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생각과 애정은 여러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56.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애정을 두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이러한 것 중 하나에라도 애정을 두지 않는다며 여러분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마귀만큼 세상적인 겁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이러한 것에 애정을 두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불 가운데 구원을 받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아무것도 받을 게 없을 겁니다.

 

57. 어떤 사람은 자신은 구원받았지만 이러한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이 구원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의 생각이 비참할 정도로 극도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에 애정을 두라고 하셨는데 누군가는 이러한 것에 애정을 두지 않겠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옳은 것이겠습니까?

 

58. 교회에 와서 하늘나라에 대해 찬양하고, 거듭남에 대해 찬양하고, 예수님의 피에 대해 찬양하고, 주님의 영광에 대해 찬양하고, 주님의 구속에 대해 찬양하고, 자신이 받은 구원이 얼마나 감사한지에 대해 찬양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서는 일주일 내내 이러한 것들 것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그것이 진정한 찬양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일에 교회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한번도 기도하지 않고 성경도 전혀 읽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습니까?

 

59.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가 바르기를 원하고 목사도 바르기를 원하고 교리도 바르기를 원하지만 자신은 바르게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60. 여러분은 지난 한 주 동안 얼마나 이 세상의 것들을 생각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지난 한 주 동안 얼마나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애정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애정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61. 오늘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애정을 두어야 하는지, 즉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여러분은 형제 자매들에게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에게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 계신 분, 예수 그리스도께 애정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순례의 길을 마칠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었으며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이었는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두어야 할 것들에 애정을 두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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