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느 영에서 유래되었냐에 따라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네가 누구에게 말을 하였느냐? 누구의 영이 네게서 나왔느냐? (욥 26:4)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눅 9:55.. KJV에만 제대로 적혀 있음)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계 20:12)
A. 악한 행위 (마귀의 영)
남이 잘 되는 걸 시샘하고 잘못 되는 걸 고소해하는 것, 남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것, 어떤 형태로든 살인자와 간음자의 성품, ‘나 하나쯤이야’ 하는 심보, 내게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고 착취하고 싶어하는 심보, 배신, 변절 등...
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나쁜 짓이라고 알 수 있는 일체의 행위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쁜 짓은 전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할 줄 안다. 쇳덩어리가 제아무리 노력해도 물에 뜰 수 없듯, 사람이 원래 이런 근성이 있는 걸 어찌하겠는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B. 겉보기로 악하지는 않으나, 죽은 행위 (인간의 영)
그런데 사람은 타락해서 죄를 짓는다고 해도, 죄가 죄라는 것과 죄의 결과가 나쁘다는 걸 인지조차 못 할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살인이나 불효가 나쁘다는 것 정도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안다. 사람이 너무 타락해서 죄에 대한 책임을 질 능력조차 없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고 지옥에 보낼 수가 없으며, 실제로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을 못 하는 어린아이는 죽어서 지옥이 아닌 하늘로 무조건 간다.
모든 사람들이 A처럼 살았다간 인류는 자멸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나름대로 죄를 억제하고 ‘제어’하는 여러 장치들을 고안해 냈다. 세상 정부와 법률, 군대, 교육 제도 같은 시스템을 만들고 각종 사상, 철학, 도덕, 교양, 인격, 예절, 명예 같은 개념을 생각해 냈다. 시스템 중에는 하나님도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의 입장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것도 있다.
이것을 가장 강조하는 조직 중 하나는 군대이다. 국가가 공인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인 만큼 군기와 규율, 명예를 목숨처럼 강조함으로써 그 잠재적 야만성을 감추고 포장한다.
B는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황금률 정도는 알고 있다. B만으로도 언뜻 보기에 대쪽 같은 지조와 절개가 나올 수 있고 애국자, 열녀, 열사, 성인군자, 사상가, 독지가, 심지어 순교자가 나올 수 있다. B는 자부심과 자기 의를 강조하며 지극히 긍정적이다. 내게 돈만 있으면, 좋은 환경과 여건만 갖춰진다면 내 힘으로 의로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내 개똥철학에 따라 내 소신껏 최선을 다해 선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B는 선행에 대한 진짜 동기를 장담할 수 없다. 나중에는 십중팔구 가식과 위선으로 빠진다. 예를 들어, 이게 진짜 겸손인지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황금률은 ‘어차피 난 더 잃을 게 없는데 이판사판이다’(안 주고 안 받기)란 사고방식이 왜 잘못됐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며, ‘긴 병 앞에 효자 없다’ 같은 한계도 드러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판별하지 못한다.
또한 죄를 제어한답시고 인간이 만든 모든 시스템은 결국 또다른 허점을 만들어 낼 뿐이다. 가령, ‘종교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하나 있는 게 사람 인성에 좋다’고 무심코 내뱉기에는 종교 때문에 벌어지는 폐해, 부작용도 얼마나 큰가?
제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고, 아무리 산업화가 진행되고 아무리 정치 제도가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뀌어도 사람의 본성은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더라도, 그나마 B라도 있어서 A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람을 독려하셨다. 남들보다 B의 비중이 월등히 더 높은 사람을 우리는 훌륭한 위인으로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B는 하나님의 앞에서 죽은 불완전한 행위일 뿐이며, 하나님 앞에서 결코 합격 판정을 받을 수 없다. 그저 A와 B 비율만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다.
성경은 우리의 죄악이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조차 더러운 누더기 같다고 말하며(사 64:6), 최선의 상태에서라도 헛될 뿐이라고 말한다(시 39:5).
C. 바른 믿음에서 나온 진짜 선한 행위 (하나님의 영)
C는 B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더러 애써 지키라고 주어지기에 앞서, 우리 깜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으라고.. 하나님 앞에서 항복하라고 주어졌다는 것을 인지한다. 나에 대해서 긍정적인 게 아니라 지극히 부정적이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음을 믿는다. 천지에 그분의 이름 외에 구원의 통로가 없음을 믿고, 내 자아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주관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선을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도록 한다.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고 나는 그분의 선을 유통하는 사람일 뿐이다. 위선이고 가식이고가 있을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살았다간 눈 뜨고 코 베인다. 바보 병신 신세 되고 사회 생활 제대로 할 수가 없어진다’고 주위에서 막 빈정거리지만... 그런 빈정거림에 성질을 내던 내 옛사람은 어차피 죽었으니 거기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 진짜로 사회 생활 제대로 못 하는지, 굶어죽는지는 그건 생산자인 하나님이 책임질 일이고, 난 성경에 기록된 대로만 자발적으로 잘 행하면 된다. 게다가 이 세상은 어차피 내 진짜 집이 아니며, 잠시 머물러 가는 곳일 뿐이다. 진짜 좋고 영원한 집은 하늘에 따로 있다!
그러니 남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손해를 보든 말든, 심지어 다른 동료 성도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 성경만 있으면 세상 트렌드가 어떻든 제아무리 똑똑한 지성인이 코멘트를 하든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분은 뚜렷하다. 사도들 중에 누구는 순교하고 누구는 탈옥한 게 하나님 마음대로였듯이. 그리고 환경과 여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북한에 살든 남한에 살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보상도 못 챙길 정도로 너무 열악한 환경이란 없다.
당연히 예수쟁이라 해도 로봇이나 좀비가 아니며, 자유 의지와 감정이 있고 육신이 있다. 늘 저런 모드로 사는 게 아니다. 육신이 자꾸 살아난다. 제일 수준이 낮은 A의 영향을 받을 일이야 잘 없겠지만(전혀 없다는 건 아님), 겉보기로 그럴싸하고 번드르한 B와 그렇지 못한 C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려는 유혹이 늘 찾아온다. 그럴 때 실수로 육신에게 기회를 또 줘 버리면(롬 13:14) 앗차 실수하는 것이며, 기도와 믿음으로 극복하면 이기고 내공과 경험치가 상승하며, 예수님의 형상으로 좀더 다가가게 된다. 정신 건강에 이로운 건 부수적인 소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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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락한 이 악한 세상 하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의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경영 방식에 순응하여 믿음으로 한 선행만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고 훗날 놀라운 보상으로 되갚아 주실 진짜 선행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C의 양만을 평가하신다. C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금은보화로 드러난다(고전 3:12). 믿으려면 이런 걸 믿어야 한다. ‘주여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십시오’라고 간구하면 그분께서 믿음을 북돋워 주신다. (막 9:24)
세상에서 직싸게 고생하고 노력해서 B를 잔뜩 축적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허사가 될 것이다. 차라리 히틀러처럼 나쁜 짓 깽판 실컷 부리고 나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면 모를까, 저건 선행 하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서 이거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B는 어차피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미 좋은 평판으로 보상을 받아 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마 6:1-2 같은. 눅 16:15, 요 12:43도 참고), 하나님이 참작하셔야 할 이유가 더욱 없다.
그리고 C 게이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보상은 고사하고 구원도 못 받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인간 중에 악한 성품인 A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A를 벗어나고자 끈질기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A의 대안으로 일컬어지는 B의 한계에 맨날 좌절하곤 한다. 그럴 때 신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이 현실을 참 하나님을 찾는 기회로 삼아라. 하나님이 어설프고 불완전한 B라는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정말 놀랍도록 의롭고 공정한 C라는 잣대를 누구에게나 제시하셨음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이 사실은 아직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구원으로의 초대가 될 것이고, 이미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동기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