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W. 낙스의 칼빈주의 강의
제2장 무조건적인 선택
이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강의 Calvinism Part 2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한 것입니다. 음성 파일을 듣고 번역한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Kjv74@hanmail.net
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경이 칼빈의 거짓 교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칼빈주의를 배격한다고 하면 알미니안주의자냐고 묻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둘 다 잘못된 교리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둘 다 거짓 교리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존 칼빈은 제롬의 사상을 연구한 로마 카톨릭 사제였습니다. 제롬은 5세기 경에 인물로,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영원을 어디서 보내게 될지 이미 예정되었다는 내용의 이교도 철학을 기독교화 한 사람입니다. 제롬에 의하면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지옥에 갈 것이고 하늘나라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무엇을 해도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제롬은 이렇게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사람이 구원받아야만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칼빈은 제롬의 이러한 사상을 그대로 전수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칼빈주의자들도 자신들을 제롬주의자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칼빈주의는 칼빈주의가 아니라 제롬주의일 뿐입니다. 그런데 제롬주의는 제롬주의가 아니라 운명론일 뿐입니다.
2.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칼빈은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만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예정된 것이라면 강간범이 불쌍한 여자를 강간한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강간범이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 됩니다. 어린이들이 학대받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던 것으로 사람이 실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됩니다. 아기를 내다 버리는 여자가 있더라도 그 잘못은 그러한 일을 계획하고 예정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이 됩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미리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 결과를 바꾸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칼빈의 생각처럼 모든 죄의 원인과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하나님은 결코 죄를 짓도록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3.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칼빈주의 사상은 “튤립(TULIP)”이라는 약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적 타락”은 인간은 죄와 허물 가운데 죽어 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교리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전적 타락”이라는 교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교리”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칼빈주의의 둘째 강령은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선택하셨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영원 전에 지옥에 보내시기로 결정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그가 구원받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믿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라 예정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받았고 태어나기도 전에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것입니다.
4. 에드윈 팔머의 책을 다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는 칼빈주의 교과서를 집필했고 NIV의 번역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확인해 봅시다. “미리 정하심이라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미리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술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미리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쏘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 물론 칼빈주의자들은 이런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것은 자신들이 구원받는 것과 자신들의 자녀들과 손자들이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직 구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칼빈주의의 절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직한 칼빈주의자라면 칼빈주의의 양면을 다 이야기해야 합니다.
6. 팔머의 글을 계속 인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하신다.” 창세기 19장에는 동성연애자들이 나옵니다.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그들이 동성연애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거짓 신인 몰렉을 섬기며 자기들의 아이들을 제단에서 불살라 버렸던 자들의 행위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 됩니다. 이게 바로 칼빈주의입니다.
7. 팔머의 글을 계속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길 옆에 비켜 서시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놀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과 뜻에 따라 모든 일을 결정하시고 미리 정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나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나 타자수가 오타를 내는 것이나 심지어 죄까지도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에 따른 것이다.” 저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8. 팔머의 예정에 대한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예정이란 미리 정하심의 일부분이다. 미리 정하심이란 모든 것이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다. 예정은 미리 정하심의 일부분으로 하늘나라나 지옥에 가게 되는 인간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 예정은 선택과 버림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정은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고 버림은 지옥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선택(election)이란 일반적으로 투표를 통해서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이란 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도록 정하시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정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비뚤어진 관점을 가진 사람입니까!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하늘나라에 가도록 정하셨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정하셨다는 말일 뿐입니다. 이것은 칼빈주의 교과서에 나와 있는 칼빈주의자들의 교리입니다.
9. 이러한 거짓 교리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우연에 대한 것인데 우리는 이것에 대한 몇몇 구절들을 찾아볼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믿으시나요, 아니면 존 칼빈을 믿으시나요? 성경에 의하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 물론 성경에는 어떤 사람들이 예정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거듭난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정되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10.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겠습니다. 신명기 22:6입니다. “나무에나 땅 위에 있는 새의 둥지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길에서 네 앞에서 보거든 너는 그 어미 새와 새끼를 함께 취하지 말고(If a bird’s nest chance to be before thee in the way in any tree, or on the ground, whether they be young ones, or eggs, and the dam sitting upon the young, or upon the eggs, thou shalt not take the dam with the young:)”2) 칼빈주의자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나 타자를 치는 사람의 실수나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납치하거나 죽이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1. 사무엘상 6:9을 보세요. “볼지니 만일 그 궤가 자기의 본래 지경의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그분께서 이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셨느니라.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분의 손이 아니며 그 일이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났음을 우리가 알리라, 하니라.(…it was a chance that happened to us.)” 사무엘하 1:6도 보세요. “그에게 고한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는데(…As I happened by chance upon mount Gilboa…), 보소서, 사울이 자기 창에 의지하였고, 보소서, 병거와 기병들은 그를 맹렬히 따르더이다.” 구약성경에서 한 구절을 더 찾아보고 신약성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전도서 9:11을 보세요. “내가 돌이켜 해 아래에서 보니 경주가 빠른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전투가 강한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며 빵이 지혜로운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재물이 명철한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며 은총이 재능 있는 자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오직 때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생기느니라.(…but time and chance happened to them all.)”3) 인생을 살다보면 우연히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칼빈주의자들이 뭐라고 하건 우연한 일은 일어납니다.
12. 이제 신약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30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하나님께서 그가 강도들을 만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그에게 상처를 입혀 그를 반쯤 죽이게 하시고 떠나가게 하셨느니라.” 만일 여러분이 칼빈주의자라면 본문을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이 강도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하지만 내가 너를 도둑질하게 만들었노라.” 칼빈주의자들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는 사람이 그것을 하게 만드신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진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이겠지요. 그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인간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니까요. 저는 어떤 칼빈주의자와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지만 주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저는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에 의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13. 31절도 보시겠습니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And by chance there came down a certain priest that way…) 그를 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바라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되”(31-31절)4) 31절에서 어떤 제사장이 우연히 내려왔다는 표현이 보이시나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 강도를 당한 것이나 상처를 입은 것이나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간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우연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날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14. 다시 여호수아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 24장입니다. 14절부터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를 두려워하며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그분을 섬기라.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다른 신들을 제거하고 너희는 주를 섬기라. 만일 주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나쁘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혹은 너희가 거하고 있는 땅의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이 날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으로 말하건대 우리는 주를 섬기겠노라, 하매”(14-15절) 성령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은 여러분이 섬길 하나님을 여러분의 의지를 사용해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선택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뜻에 따라 선택하라는 것이지요. 여호수아는 자신의 뜻과 의지와 결정에 따라 자기와 자기의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모리 족속들의 신들이나 이집트인들의 신들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신을 섬길지 여러분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칼빈주의자라면 이러한 구절들과 개념들과 진실 앞에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아세요?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아니면 여호수아는 실언을 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방금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24:14-15은 여호수아의 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예수님이 실언을 하신 것입니까? 솔로몬이 헛소리를 한 것입니까?
15. 로마서 8장을 보세요. 예정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8절부터 보시겠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부분만 읽지 말고 전체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가게 됩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하늘나라에 가게 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구원받게 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정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16. 성경에 나온 예정이란, 사람이 구원받게 되면 그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늘나라에 가서 앉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할 것이고 주님과 함께 통치할 것입니다. 단순히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 미래의 전부도 하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예정해 놓으신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여러분의 미래라고 말씀하시는 구절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고 주님처럼 변화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하늘나라에 갔는데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저는 그곳을 떠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늘나라에 갔는데 우리가 모두 주님처럼 변화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모여 있다면 저는 우리 모임을 떠날 겁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예정이란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처럼 변화할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맥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17. 만일 예정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서 어떤 사람은 구원받기로 정해졌고 어떤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도록 정해진 것이라고 믿는다면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시는 예정은 누가 구원받고 안 받고에 관한 예정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하는 것에 관한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가 어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정이 인간의 구원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는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유입니다.
18. 왜 많은 교회에서 칼빈주의를 붙들고 있는지 아세요? 성경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아무 교회나 가서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대로 설교하는지 한번 보세요.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방문한 교회가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라면 그 교회에 다니세요. 반드시 우리 교회에 나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입니다.
19. 에베소서 1장도 보세요. 3절부터 보시겠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으며” 제가 읽지 않은 단어가 뭐였는지 아세요?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그분 안에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예정이 해당되는 겁니다. 그 다음 부분도 보겠습니다.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셨으니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분별을 넘치게 하사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라.”이렇게 되어 있나요? 아니지요. “이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하려 함이라” 이것도 아니지요.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5-12절) 이 본문에는 예정이라는 말이 두 번 등장했습니다. 두 번 다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입니까? 12절의 끝부분을 다시 한 번 잘 보세요.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20. 여러분이 읽은 에베소서 1장의 본문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나 믿기 전에 예정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예정 안으로 들어온 겁니다. 신뢰가 먼저고 그 다음이 예정 안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이렇게 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 주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도 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본문에서 예정이라는 단어만 문맥에서 떼어내어 그 단어만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명사형인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처럼 변화할 것이 예정되어(predestinated) 있다고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예정에 대해서 성경을 인용할 때 거의 모든 경우에 잘못 인용하고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21. 오늘 우리의 얘기 주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시는지, 주님께서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약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반드시 넘어지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넘어질 것이라고 아는 것은 아이가 탄 자전거를 발로 넘어뜨리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아이를 넘어뜨리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는 누구나 넘어지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범하리라는 것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셨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현명하시기에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해서 모든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지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일을 아시는 것이지 그 일이 그렇게 되도록 하신 것은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23. 저에게는 칼빈주의를 믿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칼빈주의를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실행하지는 말라고 충고합니다. 칼빈주의를 믿으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 믿음과 실행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을 구원받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미 믿기로 예정된 사람을 설득해서 믿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일 그가 믿지 않기로 예정된 것이라면 더욱 복음을 전하고 설득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권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스탠리라는 친구는 칼빈주의자인데도 복음을 열심히 증거하고 다닙니다. 자신이 믿는 것과 반대되는 일에 엄청난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그 친구가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사람들은 그 친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그 사람들이 이미 구원을 받은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칼빈주의자들 중에는 자신이 믿는 교리와 반대로 실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에 한번 논쟁을 했던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던 어떤 칼빈주의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기도할 필요도 없고 성경을 읽을 필요도 없고 회개할 필요도 없고 복음을 증거할 필요도 없고 성경을 연구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가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하신다면 제가 그것을 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다가 넘어져서 어깨를 의자에 부딪혔습니다. 저와 다른 사람이 그를 일으켜 세우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넘어졌다고 해서 좋아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22. 베드로전서 1장을 보세요. 1절부터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1-2절) 만일 여러분이 선택받은 사람이라 해도 여러분이 받은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리고 충만한 때가 차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들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지 여러분은 선택받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갈보리 이전에는 흘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을 씻어 주실 때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선택된 것입니다. 피가 흘려지기 전에는 여러분의 죄를 씻어 주실 수 없었겠지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여러분을 씻어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23. 오늘밤 우리가 선택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간략히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셨으며 창세 전에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은 바로 그 하나님의 선택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고 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창세 전에 있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분이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택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셈이 됩니다.
24. 다시 로마서 8장을 보세요. 로마서 8장을 읽기 전에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 것이 맞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성경에 의하면 의인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 맞습니까?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롬 3:10)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는다는 것이 맞습니까(요일 1:8)?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 맞습니까(요 3:7)? 이제 칼빈주의자들의 말대로 우리가 창세전에 이미 선택받은 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자, 그러면 이제 로마서 8:33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무슨 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고소하리요?” 만일 제가 창세 전에 선택된 자라면 저는 구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용서받을 필요도 없어요. 저에게는 구원자도 필요없어요. 저는 거듭날 필요도 없고 피흘림도 필요없어요. 만일 제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라면 어느 무엇으로도 저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25. 그런데 만일 선택된 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겠습니까? 누가 무슨 일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분을 고소할 수 있겠습니까? 보이시나요? 주님은 어떤 죄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정죄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께는 흠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내게 죄를 깨닫게 하겠느냐?”(요 8: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도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노라”(눅 23:4)라고 증언했습니다. 여러분이 에베소서 1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 함을 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그래서가 아니며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어서도 아니고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래서는 더욱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자로 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이 없으시기 때문이고, 여러분이 바로 흠 없는 그 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 선택받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서 정죄를 받지 않는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의 때문이 아닙니다.
26.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누가 구원을 받을지와 누가 지옥에 갈지 미리 결정해 놓으시고 그래서 미리 아시지 않았을까요?” 예, 아마도 기독교 미신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셨을 겁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짐승들이 한 쌍씩 들어갔지요? 그런데 홍수 이후에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서 하나님께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다면 이제 그 짐승은 멸종한 것인가요? 아니지요. 성경에서는 제사에 사용할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이 방주에 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이었고 그렇지 않은 짐승은 두 쌍 씩 방주에 탔었지요.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기독교에는 미신이 있습니다. 방주에는 암수 한 마리씩 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확인하지 않고 그냥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보면 전혀 엉뚱한 게 사실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놀라운 일을 신비로운 방법으로 역사하시느니라.”는 구절은 정말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히스기야 3장에 있는 말씀인데 읽어보신적 없으세요? “성결 다음은 청결이니라.”는 말씀은 어떻세요? 아주 놀라운 성경 말씀이 아닌가요?
27. 마태복음 25장을 보세요. 34절입니다.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양으로 드러난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창세로부터 예비된 왕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염소로 드러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41절을 보세요.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혹시 여러분 중에 제가 방금 읽은 대로 되어 있는 성경을 가지고 계신 분 손들어 보세요.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요. 성경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라고 되어 있어요.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예비된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서 예비된 장소에 가는 겁니다.
28. 제가 성경을 몇 구절 인용해 보겠습니다. 칼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의도하심과 계획하심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셨을 때 어떤 사람도 그곳에 가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의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29. “그럼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뭡니까?” 이사야 5장을 보세요. 칼빈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거나 매우 능력이 적은 창조자일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가 구원받을지 창세 전에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누가 구원받지 못할지도 창세전에 알고 있었다면, 그들의 정확한 수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칼빈의 하나님이 산수를 제대로 공부한 하나님이라면 구원받을 사람의 수와 지옥에 갈 사람의 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나라를 만드셨고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서 지옥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2주일에 한번씩 이런 종류의 편지가 옵니다. 제가 간극 이론을 믿고 있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사람에게 묻고자 합니다. 그러면 마귀는 언제 타락했나요? 마귀가 타락한 시점이 언제인가요? 만일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마귀가 타락했다면 아담을 유혹한 것은 누구였습니까? 만일 마귀가 아담 이전에 타락했다면 그게 언제였나요?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넷째 날도, 다섯째 날도 아니라면 마귀는 언제 타락했지요? 언젠가는 마귀가 타락한 시점이 있을 거 아닙니까?
30.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죄를 짓도록 하셨나요? 칼빈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도록 하셨나요? 칼빈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보내셔서 아담을 유혹하고 타락하도록 하셨나요? 칼빈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여러분이 칼빈주의자라면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아셨고 또 그들 중 일부는, 아니, 아마도 상당수는 지옥에 보내기를 원하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칼빈주의입니다.
31. 이사야 5:14을 보세요. “그러므로 지옥이 자기를 확장하고 한량없이 자기 입을 벌렸은즉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큰 무리와 그들의 영화와 또 기뻐하는 자가 거기로 내려가리로다.” 제가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지옥에 갈 사람들을 미리 정해 놓으시고 그들이 누구인지, 또 몇 명인지 미리 아셨다면 왜 지옥을 충분히 크게 만들어 놓으시지 않으셨을까요? 지옥에 갈 사람의 수를 미리 아셨다면 지옥을 확장 공사 하실 필요가 무엇입니까? 왜 화산이 분출해서 땅 아래에 혼들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이번 얘기의 주제가 지옥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갈 사람의 수를 미리 정해 놓지 않으셨기 때문에 지옥을 확장하실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32. 우리가 살펴볼 다음 구절은 출애굽기 32장과 계시록 3장입니다.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나요? 질문이 좀 교묘하니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 보세요.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10:17)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죄를 기억하시나요? 만일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닌 것이네요. 그렇지요? 사실 이건 교묘한 질문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인 추측으로 신학적인 입장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추측으로 가정을 하고나서 결론으로 교리를 세우면 비성경적인 교리가 나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추측을 하고는 그 추측이 맞다면 하나님께서는 누가 지옥에 갈지와 누가 하늘나라에 갈지도 미리 아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르기로 선택하신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기만 하신다면 모든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기로 선택하셨습니다. 할렐루야!
33. 자 다른 문제를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쉽게 맞힐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의 수까지도 다 알고 계시지요? 이제 문제 나갑니다. 다음을 잘 듣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 7:23) 시편 139:13에서는 주님께서 사람을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아십니다. 그런데 이제 지옥에 보내시는 순간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바로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다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 채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을 선택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모든 것을 아시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이름은 아시면서 지옥에 있는 부자의 이름은 대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왜 부자의 이름을 대지 않으신 줄 아세요?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지옥에 간 부자를 알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지하 세계를 보실 때 구원받은 아브라함과 나사로와 지옥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보신 겁니다. 한번 상상해 보겠습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그가 누구인지 주님께 질문드렸을 겁니다. “주님 저 부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도 모르겠노라”고 대답하셨을 겁니다. 그러자 누가는 재차 물었을 겁니다. “주님, 저는 지옥에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제 복음서에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것이 비유라고 하지 못할 테니까요.” “누가야, 나도 너를 도와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사람을 결코 알지 못하노라.” 이런 것을 가르치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가 들어 보지 못한 것은 성경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렵습니다.
34. 이제 출애굽기 32장을 보시겠습니다. 32절부터 보시겠습니다. 이것은 백성을 위한 모세의 간구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32-33절) 여기서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구원받지 못한 채 지옥에 갈 것이라서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버릴 것을 미리 알았다면 왜 처음에는 그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까? 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처음부터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의 이름만을 기록해 놓지 않은 것입니까? 왜 기록한 것을 지우는 것입니까?
35. 계시록 3장을 보시겠습니다. 5절입니다.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 구절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의 이름이 처음에는 생명책에 있다가 나중에는 지워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권적인 결정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것을 하나님께서 그에 맞는 결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36.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강해하지도 못하는 로마서 9장의 민족적인 선택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개인의 구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택에 끼워 맞춰 버린 것입니다. 칼빈은 교회가 이스라엘이라고, 제네바는 예루살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난 500년간 칼빈주의자들이 항변한 유일한 무기는 파라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서 오직 파라오만을 인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바울도 있고 베드로도 있고 요한도 있고 누가도 있는데 왜 하필 인용하는 것이 파라오에 대한 것뿐입니까? 그 많은 구약성경의 인물들과 선지자들은 왜 인용하지 않는 것인가요? 칼빈주의자들의 다음 증인은 누구인가요? 빌라도인가요? 이세벨인가요?
37. 로마서 9:17을 보세요. “성경 기록이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내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너를 일으켰나니 이것은 내가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밝히 알리려 함이니라, 하시나니” 이 구절 어디에도 하늘나라에 가거나 지옥에 가거나 하는 언급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파라오야, 내가 나의 권능을 보이기 위해서 너를 선택했노라. 너로 인해서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능력있는 하나님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게 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잠깐만요. 비슷한 경우를 한번 들어 보세요. 몇 백년 후에 한 사람 등장합니다. 그는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파라오처럼 큰 권력을 가진 통치자였습니다. 그리고 파라오처럼 유대인들을 지배하던 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고레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그러자 고레스가 뭐라고 주님께 답했는지 아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답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고레스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과 권능은 온 땅에 두루 밝혀졌습니다. 고레스는 파라오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38. 파라오도 이스라엘 백성을 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파라오도 어떠한 재앙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파라오의 첫째 아들이 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병사들이 홍해에 빠져 죽지 않아도 하나님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이름과 권능이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파라오의 아들을 죽이거나 이집트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주님의 이름과 권능을 온 땅에 두루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있었고 저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고레스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있었고 저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었습니다.
39. 마태복음 22장을 보세요. 1절 부터 보세요. “예수님께서 응답하며 다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왕과 같으니라. 그가 자기 종들을 보내어 결혼식에 초대받은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이 오려 하지 아니하매”(1-3절) 왕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혼인 잔치는 무엇입니까? 천년왕국입니다. “오십시오. 당신은 초대받았습니다.” “오세요. 왕께서 당신을 초청하셨습니다.” “왕께서 잔치에서 당신을 보고자 하십니다.” “왕께서 당신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우리는 원하지 않아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왕이 그들을 직접 초대하고 그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으나 오지 않은 것입니다.
40. 4절입니다. “그가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기를, 초대받은 자들에게 알리되, 보라, 내가 오찬을 준비하고 내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라,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들의 길로 가되 하나는 자기 농장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장사하러 가며 그 남은 자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이니라.”(4-6절) 왕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종들을 모욕하고 죽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예정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잔치에 오기로 예정된 사람들이 초대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41. 7절입니다. “왕이 그것을 듣고 노하여 자기 군대들을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태우며” 만일 이 모든 것이 왕이 의도하고 계획한 것이라면 왜 그대로 행한 사람들의 행위에 화를 내는 것입니까? 왜 처음부터 오지도 못할 사람들을 초대한 것입니까? 만일 손님들이 처음부터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초청했다면 이것은 기만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계 2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다 농담이었나요? 오지 않을 것을 미리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결국 속인 것이 아닙니까?
42. 8절을 보세요. “그 뒤에 자기 종들에게 이르되, 결혼식은 준비되어 있으나 초대받은 자들이 합당하지 아니하니” 초대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선택인가요? 왕이 있고 왕이 베푼 잔치가 있고 또 초청이 있습니다. 왕의 개인적인 초청인데 사람들이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잔치에 오지 않았고 왕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43. 선택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정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죄의 책임이 없습니다.
1) 성경에서는 predestinate라는 동사형으로는 로마서 8:29,30, 에베소서 1:5,11 이렇게 4번 나옵니다. 그러나 명사형인 predestination은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온 예정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과 관련있는 것이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구원받도록 예정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역주
2) 우리말 번역에는 여기서 “우연히”라는 단어가 빠져 있습니다. 바른 번역이 되려면 “길에서 네 앞에서 보거든”을 “길에서 우연히 네 앞에서 보거든”이라고 해야 합니다.-역주
3) 우리말 번역에서는 chance를 기회로 번역하였습니다. 기회라고 번역하기보다 우연이라고 번역했더라면 더 정확한 번역이 되었을 것입니다.-역주
4) 여기서도 우리말 번역에서는 우연히라는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바른 번역이 되려면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를 “어떤 제사장이 우연히 그 길로 내려오다가”가 되어야 합니다.-역주

제임스 W. 낙스의 칼빈주의 강의
제1장 전적 타락
이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강의 Calvinism Part 1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한 것입니다. 음성 파일을 듣고 번역한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Kjv74@hanmail.net 1. 먼저 로마서 10:9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잘 아시는 구절입니다. 13절까지 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또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니 이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모든 사람 위에 계신 같은 주께서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2. 우리는 오늘부터 칼빈주의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존 칼빈은 극단적인 운명론을 공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역시 로마 카톨릭 사제였던 제롬으로부터 극단적인 운명론을 배웠습니다. 제롬은 420년경에 살던 구원받지 못한 카톨릭 사제였습니다. 제롬은 모든 사람들은 창세 전에 이미 죽어서 하늘나라나 지옥에 갈 것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3. 제롬에 의하면 이미 구원받을지 지옥에 갈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졌으므로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롬에 의하면 하늘나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하늘나라에 갈 것이며 지옥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구원받기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예정되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는 죽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4.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을 일반적으로 “칼빈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제롬주의”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칼빈이 만든 체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제롬의 사상을 그대로 전수받아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이 사상을 널리 전한 것뿐입니다. 칼빈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로마의 교황이 통치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했습니다. 여기서 칼빈이 한 말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의 분명한 교리를 확실히 하다 보면, 우리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계획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누가 구원을 받을지와 누가 정죄를 받을지 결정해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마저도 영원한 계획에 의한 것이다.” 5. 칼빈이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칼빈은 죄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모든 강간과 살인과 아동학대와 범죄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있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저는 그런 하나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6. 칼빈의 교리는 5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것을 “튤립(TULIP)”이라고 부릅니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그리고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 “전적 타락”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타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은 좀 괜찮아 보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제한된 속죄”는 예수님께서는 오직 구원받을 사람들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는 여러분이 이것을 원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여러분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창세 전에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되었다면 어떠한 것에도 상관없이 결국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입니다. 8.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이 칼빈주의를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어떤 칼빈주의자도 자신들의 교리를 이렇게 간략히 정리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믿는 교리를 간략히 정리하면 자기들의 믿음의 정체가 금방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는 요약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충분히 요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들로 인해서 죽으셨고 묻히셨으며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지만 믿지 않으면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지옥에 가게 됩니다. 9.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서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거창한 용어로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들킬 것을 염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거창한 용어로 치장해서 사람들이 그것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개혁자들의 신학”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제롬의 “로마카톨릭 결정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훌륭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용어가 결코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이나 “주권적인 하나님”은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서로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게 하도록 고안된 용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10. 지난 30~40년 동안 미국에서 많은 침례교회들이 칼빈주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는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자신들이 각성하여 기도와 복음증거를 열심히 하기보다, 모든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죽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선택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일진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증거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칼빈주의가 사실이라면 거리에 나가서 힘들게 복음을 증거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칼빈주의는 주님 안에서 수고하는 지체들의 손길을 멈추게 하는 교리입니다. 11. 이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전적 타락”입니다. 에드윈 팔머의 글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드윈 팔머는 칼빈주의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과서를 집필한 유명한 칼빈주의 신학자입니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이 팔머의 책으로 신학 대학에서 칼빈주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드윈 팔머는 새국제역본(NIV)의 번역자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예정론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칼빈주의의 대표적인 선생이 잘못된 역본의 번역자인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정론을 믿는다면 성경에 무엇이라고 써 있든간에 하늘나라에 갈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고 지옥에 갈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12. 팔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어 있다. 단지 병들고 부상 당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병들고 부상 당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전적으로 죽어 있다.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 채, 거듭나지 못한 채, 영적으로는 완전히 사망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주시고 영적으로 살리시기 전까지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제 거듭나게 되면 처음으로, 예수님께로 돌아설 수 있게 되며 자신의 죄로 인해 슬퍼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할 수 있게 된다.” 13. 잘 들어보세요. 칼빈주의자의 정신 세계에 따르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이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구원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이미 소유하고 있음을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음을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주장을 들으면 참 이상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성경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4. 만일 여러분이 칼빈주의자이거나 칼빈주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예정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존 칼빈은 제롬의 교리를 공부한 로마 카톨릭 사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언약이란 한 사람의 개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사제가 주는 유아 세례에 의해 아기가 선택받은 가정에서 태어났음을 확증하는 것이며, 따라서 아기는 선택받은 아기가 됩니다. 특이한 점은 어떠한 칼빈주의자도 자신들의 아기가 창세 전부터 지옥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 자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은 으레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아이들의 선택받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유아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생후 8일째 아기의 할례를 유아 세례에 접목한 것입니다. 15.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먼저 구원을 받고 나서 주님을 부르게 된다는 주장이 성경의 지지를 받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10장 입니다. 9절부터 보시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혹시 이렇게 기록된 성경 가지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성경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지 않고 “구원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입니다. 성경적으로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입니까, 구원받는 것이 먼저입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먼저입니까, 구원받는 것이 먼저입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과 칼빈이 말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성경을 믿는 사람입니까, 장로교인입니까? 성경을 믿는 사람입니까, 개혁주의자입니까? 어느 것이 되시겠습니까? 16. 우리는 선교와 전도지와 복음전파를 위해서 많은 돈을 사용하지만 매우 적은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미 구원받을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정해져 있다면 도대체 왜 선교와 복음 전파에 돈을 들이는 것입니까?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에 의한 것이라면 복음을 전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데 이런 질문을 칼빈주의를 믿는 목사에게 하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이미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 우스운 일입니다. 17. 만일 여러분이 실수로 칼빈주의자의 아이를 자동차로 치면 그 칼빈주의자는 어떻게 할까요? 모든 것을 창세 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찬양을 드릴까요, 아니면 여러분을 고소할까요? 십중팔구 고소할 겁니다. 어떠한 칼빈주의자도 “하나님, 이 사람이 저의 아이를 차로 친 것도 모두 주님의 영원한 계획과 주권적인 섭리에 의한 것이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지는 않을 겁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예정론을 오직 자신들의 구원에만 적용합니다. 18.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7절을 보세요. 17절부터 보시면서 거꾸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 무엇이 먼저 입니까? 믿음입니까, 말씀을 들음입니까? 순서 상으로도 말씀을 들음이 먼저이고 그 말씀을 믿는 것이 다음입니다. 이제 15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내어지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보내어지는 것이 먼저입니까, 선포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먼저 보내어지고 나서 선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14절의 끝부분을 보시겠습니다.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듣는 것입니까, 선포하는 것입니까? 선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제 14절의 앞부분을 보세요.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듣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부르는 것이 먼저입니까? 전파하는 것을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듣는 것이 먼저 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 입니다. 13절을 보세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9. 잘 보세요. 어떤 사람이 말씀을 가지고 있고 그 말씀을 전파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문맥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칼빈주의자들은 우리가 헬라어를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물론 칼빈주의자들도 헬라어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성경적인 논쟁에서 밀리면 항상 헬라어를 들고 나오는 것은 여러분을 혼란시키기 위함일 뿐입니다. 헬라어가 무엇이라고 되어 있든 상관없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대로입니다. 20. 어떤 칼빈주의자는 로마서 10장의 문맥이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에 순종하지는 아니하였나니 이사야가 이르기를,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느니라.” 1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18절도 보세요.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못하였느냐? 참으로 들었은즉, 그것들의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것들의 말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말씀을 듣고 믿고 믿음을 실행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1. 예전에 제가 즐겨 듣던 라디오 설교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8시부터 8시 반까지 설교하던 그 설교자는 어떠한 형태로든 죄를 하나라도 지으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주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1964년에 구원받은 이래로 단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이 “실수”를 저지를때도 있었지만 그게 죄는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실수도 분명히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설교자 다음 설교자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방송국에서 그 칼빈주의 설교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건가요?” “설교하러 왔습니다.” “뭐하러 설교하러 오셨나요.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면 어차피 바뀌는 것이 전혀 없을 텐데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힘들게 아침에 일어나서 설교하러 올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건 이미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정해졌고 주권에 의해서 그 예정이 실현된다면 무엇을 설교하든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22. 사도행전 16장을 보세요. 22절부터 보시겠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매 죄수들이 그들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즉시 문들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결박이 풀리니라. 감옥의 간수가 잠에서 깨어 감옥 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여 칼을 빼서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큰 소리로 외치며 이르되, 네 몸을 해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그때에 간수가 등불을 요청하며 뛰어 들어가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와서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그들이 이르되, 너희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칼빈의 생각일 뿐이지요.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이미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 이렇게 말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채찍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자기의 온 가족이 즉시 침례를 받은 뒤에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이르러 그들에게 음식을 차려 주며 자기의 온 집과 함께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니라.”(행 16:33-34) 23.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전적 타락”교리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은 완전히 타락해서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기 전에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주님께 요청했습니다(눅 23:42). 이디오피아 내시도 비록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빌립이 오기 전에 성경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그의 집에 보내실 때까지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있던 사람은 사도 바울이 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찾고 있었고 바울에게 와서 도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백부장이 먼저 주님께 요청했나요, 아니면 주님께서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백부장을 도와 주셨나요? 예수님께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사로의 무덤으로 오셨나요, 아니면 마리아와 마르다가 요청한 후에 오셨나요? 보시는 것처럼 칼빈이 가르친 “전적 타락”이라는 교리는 성경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4. 저는 교회에 다니지도 않고 성경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절망 가운데 빠진 채 자신은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칼빈주의 운명론은 정말 끔찍한 교리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 자신은 지옥에 가기로 정해진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않았고 믿은 적도 없으며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고 생의 단 한 순간도 회개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가 교회에 다니고 자신의 목사나 신부가 유아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자신은 선택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선택받은 사람이고 따라서 ‘나는 적어도 하늘나라는 가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무슬림도 아니고 힌두교도도 아닙니다. 성경을 믿고 가르친다는 사람이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니까 엉터리로 구원받은 사람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은 저를 매우 화나게 합니다. 여러분은 화가 나지 않으세요? 이런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화가 나지 않으면 무엇에 화가 나세요? 이런 엉터리 교리가 횡행하는 것에 화가 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에 화가 나세요?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것보다 더 화가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값이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주식이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가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해요. 왜냐하면 누군가 교회에서 제대로 된 것을 가르치지 않고 거짓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분노할 만한 일 아닌가요? 25. 요한복음 1장을 보세요. 6절부터 보세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더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이것은 그 빛에 대해 증언하여 모든 사람이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자더라. 그 빛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순서를 잘 보세요)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 주님께서는 구원해 주실 겁니다. 그러나 먼저 믿어야만 합니다. 만일 믿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택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중에 믿는 방법은 없어요. 26. 제가 아는 어떤 침례교회는 자신들이 점점 칼빈주의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는 말하기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부르는 것은 행위인데 구원은 행위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받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구원받은게 아닌데,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행위에 기대는 것이고 행위로 구원받을 수는 없고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믿고 구원받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성경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잘못된 교리를 성경으로 바로잡아 주려고 하니 그 목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다른 목사에게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교단에서 그런 거짓 교리를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27. 요한복음 6:27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말고 (잘 보세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그 양식을 위해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봉인하셨느니라, 하시니라.” 지금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하늘나라에 갈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할지 아세요? 저는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구했을 겁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확신을 가질 때까지 계속 읽고 공부했을 겁니다. 단지 제가 예정된 자이기를 희망하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28. 여러분은 언제 성경을 제대로 배우게 되는지 아세요? 단지 교실에 앉아서만은 성경을 온전히 배울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증거할 때 성경을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기 전에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논박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만일 칼빈주의자들이 옳다면 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옳다면 집집마다 방문해서 복음을 증거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전도지를 나눠주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에 대해서 논쟁할 필요도 전혀 없어요. 만일 칼빈주의가 옳다면 복음을 증거하느라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은 쓸데없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옳고 저는 선택된 자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저는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쓸모없는 일이겠지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칼빈주의가 옳다면 믿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존하는 생명을 위해서 수고하면 그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8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주님의 답변을 들어보세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구원받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일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인지 아느냐? 바로 믿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믿는 것도 일입니다. 바로 구원받게 하는 일입니다. 30. 칼빈은 인간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고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하나님께 나아온 자체로 하나님께 나아오기 전에 이미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주장은 여러분이 선택된 자라면 아직 믿지 않아도 이미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정되고 선택된 자라면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31. 이사야 55장을 보세요. 1절부터 보세요. “오 목마른 모든 자들아,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참으로 와서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치르지 말며 포도즙과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느냐? 또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느냐? 내 말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일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너희 혼이 기름진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 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서 “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칼빈은 사람이 너무 타락해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이 마르면 와서 물을 마시라고 하십니다. 생명을 원하면 와서 얻으라고 하십니다. 32. 6절을 보세요. “너희는 주를 만날 만한 때에 그분을 찾으라.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그냥 농담을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놓고 장난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걸까요?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분께서 풍성하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악 가운데 죽어 있던 죄인을 용서해 주실까요? 그러한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까요? 이미 다 용서해 놓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길을 버리고 주님께 오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33. 저는 선교에 헌신하고 자녀들을 훌륭한 복음 전도자로 양육한 형제를 알고 있습니다. 만일 칼빈주의가 옳다면 그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일 겁니다. 만일 칼빈주의가 옳다며 왜 자식들을 복음 전도자로 키워서 그들의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 겁니까? 만일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 가기로 이미 정해졌다면 왜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는 겁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 16: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아세요? 그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도 듣기 전에 먼저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선포자가 없는데 복음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복음 증거자가 없이 구원받게 된 것도 아닙니다. 복음도 없이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 구원받은 게 아니에요 34. 계시록 22장을 보세요. 삼위일체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나요?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착각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성경 구절과 여러분의 상상력과,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특정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아멘”입니다. 계시록 22:21에 있어요. 35.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20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분명하지요?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에요. 요한의 화답을 보면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입니다. 36. 이제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18절을 보세요.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자신의 말씀에 아무것도 더하지도 말고 거기서 빼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 성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성경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그대로 두라고 엄중한 경고를 하신 것이지요. 37. 이제 성령님의 마지막 말씀을 보겠습니다. 17절을 보세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이것은 이사야 55장을 인용하신 것이지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원하는 자?)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구원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라고 초청하시는 겁니다. 성령님의 말씀은 “내가 강제로 구원할 수는 없는 일이니 원하는 자는 와서 준비된 영원한 생명을 받고 구원을 받으라. 오겠느냐?”고 하시는 겁니다. “네가 믿지 않으면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니니라. 구원받기를 원하느냐?”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마지막 호소는 원하는 자는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나아와 주님께서 해 주신 일을 믿고 구원을 값없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38. “전적 타락”이라는 교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교리”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성령님께서는 이제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떠나시려고 합니다. 사회자가 성령님께 마이크를 넘기면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합니다. “성령님,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그러자 성령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할 말이 있노라.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와서 값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만일 여러분이 원하는대도 불구하고 예정된 자가 아니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오라”는 성령님의 초청은 얼마나 끔찍한 농담이겠습니까? 이건 완전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이잖아요. 예정되지도 않고 선택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완전 놀리는 것 아닌가요? 감옥에서, 병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여러분이 사람을 만난다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입술을 통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요? “오라”는 것입니다. “와서 값없이 거저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 성령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39.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에요. 타락하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어요.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생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책임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종교 생활을 하거나 교회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서 생명의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자신을 정죄하고 이대로 살면 안 된다고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종교를 찾고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사람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표적, 이적, 그리고 기적
제5장 표적과 적그리스도의 등장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Signs, Wonders And Miracles의 Chapter 5 : Signs and the Rise of Antichrist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성경 연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지침은 디모데후서 2:15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만일 성경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명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침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통해 각기 다른 시대의, 각기 다른 사람들을 다른 방법으로 다루신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신의 은혜를 기본으로 사람을 다루십니다.
2. 성경 역사의 모든 시대, 즉 율법을 주시기 이전이나 율법 시대나 오순절 이후 시대나, 심지어 환란과 천년왕국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각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다르지만 모든 시대에 동일하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히 1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상급은 행위로 드러나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들에게 약속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나누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각 시대마다 인류를 특정한 방법으로 다루시는 것을 매우 주의를 기울여 조심히 살핀다는 것입니다.
3.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유익과 위로와 교육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특정한 가르침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4.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어떤 실족거리도 주지 말되”(고전 10:32)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모든 잘못과 거짓 교리는 이들 세 구룹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 분별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입니다. 율법은 오직 이들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율법이 주어진 적은 없습니다.
5. 오늘날 사람들이 성경을 절대로 알지 못하고 이단 교리에 미혹되는 것은 목사들이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설교 재료로 사용할 뿐입니다.
6.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물리적인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눈먼 안내자입니다. 유대인들이 구해야 할 것은 교회가 구하게 가르치는 것은 이단 교리일 뿐입니다.
7.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세 그룹의 사람들이 보이십니까?)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또 세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고전 1:22-24)
8. 이제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조금 용납하라. 참으로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고후 11:1-3) 우리는 이것을 창세기 3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뱀은 이브를 속였고 이브는 죄를 지었으며 그로인해 인류는 저주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뱀이 동산에 왔을 때 그는 술이나 잡지나 티비나 영화나 록음악을 통해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뱀이 미혹하기 위해서 동산에 가져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그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잘못 인용했습니다.
9.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와서 성경을 의도적으로 잘못인용하거나 구절을 바꾸거나 변개시킨다면 그는 마귀의 사역자인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교회를 가장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공산주의나 로마 카톨릭이 아니라 성경을 변개시키고 잘못가르치고 의심하게 만드는 설교자인 것입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수용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고후 11:4) 이미 초대 교회 시대에도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하는데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0. 만일 어떤 설교자가 와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선한 행위나 율법을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마귀의 사역자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단 번에 속죄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죽으시는 일, 즉 또 다른 제가(미사)가 필요하다고 가르친다면 그는 마귀의 사역자입니다. 어떤 자들은 자신들의 소설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언약”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러한 거짓 가르침을 용납하고 심지어 그들으 따라 구덩이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11. 다른 영에 대한 것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성령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로마서 8:9과 고린도전서 12:12-13에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설교자가 와서 사람이 구원받은 이후에 성령을 받기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그는 성령이 아닌 다른 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는 마귀의 사역자입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12.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사역자들 또한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그것은 결코 큰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우리는 이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교회는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사역자들에 대해서 주의하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13. 먼저 사도 바울의 말을 살펴봅시다. “내가 자랑함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었거니와 너희가 억지로 나를 시켰느니라. 내가 너희에게서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노니 내가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무슨 일에서나 가장 으뜸가는 사도들보다 결코 뒤지지 아니하노라.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한 행위들로 사도의 표적들을 행하였노라.”(고후 12:11-12) 표적들은 사도들에게 속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표적들은 믿는자들의 표적도 아니요 그리스도인들의 표적도 아니요 바로 사도들의 표적입니다.
14. 주님께서는 열한 명을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주님께는 더 많은 수의 제자들이 있었고 그중 70명을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시에는 120명의 무리가 주님을 따랐으며 40일 후에는 500명으로 그 수가 늘어났습니다(고전 15:6). 그러나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통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고 확증할 사람들을 사도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가복음 16장에서 5가지 표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뒤에 열한 제자가”(막 16:14) 주님께서는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16:15) 마가복음 16장의 지상명령과 은사의 약속은 문자적, 교리적으로는 열한명의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표적의 은사가 사도들의 사역에 사용되고 드러났음은 명백합니다. 사도들의 표적으로 인해서 새로운 메시지가 새로운 지역에서 능력있게 선포될 수 있었습니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면 자신이 사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 다음의 사항을 확인하며 그들을 시험해 봐야 합니다.
(1)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도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다섯 가지 표적을 모두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도라고 주장한다면 그가 다섯 가지 표적을 모두 행하며 또한 표적을 행할 때에 성경에 나온대로 행하는가 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도들이 신유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칠 때 병자는 즉시 나았습니다. 은사를 발휘해서 병을 고친다면 병은 즉시 나아야 합니다.
(3)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도라고 주장하면서 표적을 행한다면 그가 표적을 행하면서 진리를 확증하는지 봐야 합니다. 그가 표적을 행하면서 기록된 신약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전한다면 그는 거짓 교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과 기록된 성경이 일치하지 않으면 항상 기록된 성경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 1:16-21)
(4)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도라고 주장하면서 표적을 행하는대 그 대상이 유대인이 아니라면 그는 거짓 교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16. 이스라엘은 표적과 함께 시작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 그들이 무슨 근거로 자기의 말을 믿겠느냐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모세가 응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매”(출 4:1)
17.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려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사람을 보내셨는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의 손으로 기적을 행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막대기이니이다, 하거늘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니 그가 그것을 땅에 던지매 그것이 뱀이 되므로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로 그것을 붙잡으라, 하시매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것이 그의 손에서 막대기가 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것은 그들이 자기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라.”(출 4:2-5)
18. 이 때까지는 기적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기적과 함께 탄생한 것입니다. “주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이제 네 손을 네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자기 손을 품에 넣었다가 품에서 꺼내니, 보라, 그의 손에 눈같이 나병이 생기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네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자기 손을 품에 넣었다가 품에서 꺼내니, 보라, 그것이 다시 그의 다른 살처럼 되었더라.”(출 4:6-7)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때까지 사람들은 늙어서 죽거나 살해되서 죽거나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었습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어느 누구도 병들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4장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질병에 걸린 사람은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19. 성령님께서 이 두가지 기적을 무엇이라고 부르실까요?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지라도 나중 표적의 소리는 믿으리라. 그들이 만일 이 두 표적도 믿지 아니하며 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거든 너는 강물을 취하여 마른 땅에 부으라. 네가 강에서 취하는 물이 마른 땅에서 피가 되리라.”(출 4:8-9) 주님께서는 두 기적을 표적이라고 부르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 부르심을 받는 그 첫 순간부터 표적과 함께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20.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능력은 여호수아의 사역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세대간 지속되던 표적과 이적과 기적은 그 세대가 죽으면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21. 오랜 세월 동안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이스라엘 가운데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훈계하셨지만 이제 방법을 바꿔서 선지자도 더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자를 율법과 선지자로 드셨습니다. “모든 대언자와 율법은 요한까지 대언하였나니”(마 11:13)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마 5:17)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마 22:40)
22. 배교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엘리야는 모세의 죽음 이후에 오랫동안 이스라엘에서 보지 못했던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듣지 않고 지키지 않자 이번에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이 율법을 어겼다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백성들은 율법을 어겼지만 그러한 경고를 듣고 싶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악했으므로 자신들이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습니다.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려면 무엇인가 확실한 증거를 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23. 성경에 의하면 “선지자(대언자, 예언자)”라는 칭호는 엘리야와 더불어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실 때 두명이 나타나 주님과 함께 했는데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전해준 모세와 첫번째 선지자인 엘리야였습니다. “(예전에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여쭈려 할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더라. 지금 대언자라 부르는 사람을 예전에는 선견자라 불렀더라.)”(삼상 9:9) 선지자라는 명칭은 엘리야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 엘리야의 능력은 엘리사까지 이어졌습니다.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다시 한 세대 동안 지속되다가 엘리사 이후로 다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후로 900년간 이스라엘에게서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느혜미야, 그리고 다니엘의 세 친구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매일 놀라운 일을 행하시며 이스라엘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선지자를 통한 말씀이 이스라엘 가운데 확증됨으로 더 이상 기적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25. “율법과 대언자들은 요한의 때까지요, 그때 이후로는 하나님의 왕국이 선포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밀고 들어가느니라.”(눅 16:16)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영적인 왕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새로운 왕국에 들어가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이러한 은사가 전수됨으로 표적과 이적과 기적은 또 다시 한 세대동안 행해집니다.
26.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이미 표적을 행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모두 병들었으며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교회를 세우는 여러 가지가 제시되었지만 표적의 은사는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는 자신이 사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낸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네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계 2:2)
27. 성경에 의하면 이제 이스라엘에게 찾아와서 거짓된 메시지를 전하며 거짓된 왕이자 거짓된 그리스도 행세를 할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거짓된 왕국을 세우고 대환란 기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시험할 것입니다. 환란 시대에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에게 강한 미혹의 역사를 보내어 그들이 거짓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살후 2:11) 배교한 유대인들은 표적과 기적으로 찾아온 거짓 메시야를 믿을 것입니다.
28. 거짓된 표적과 기적과 이적으로 찾아온 거짓 메시야를 믿는 유대인들은 거짓된 새로운 메시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시간표에 의하면 어떤 거짓되고 마귀적인 것이 이 세상에 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에 대해 우리를 무지한 채로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형제들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살후 2:1-4) 이 본문은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오면 그는 자신이 진정한 메시야라고 유대인들을 설득할 것입니다.
29.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그가 그의 때에 드러나게 하려고 무엇이 저지하고 있는지 지금 아나니 불법의 신비가 이미 일하고 있으나 다만 지금 막고 있는 이가 길에서 옮겨지기까지 막으리라.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시키시고 친히 오실 때의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 그 사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그들 모두가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5-12) 적그리스도는 표적과 기적과 이적을 행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유대인들과 수십억의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30. 거짓 은사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면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로마 카톨릭,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장로교, 오순절교회,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은사주의 교회 등 다양한 교파와 종파에 속한 교회들이 표적과 이적을 강조하거나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리적인 면에 있어서는 일치하는 부분이 매우 적습니다. 이들 교회들의 역사적인 위치는, 이들이 하나로 일치하기에는 이들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라오디게아 시대에는 서로 다른 많은 교회들이 은사주의 운동의 표적과 이적과 기적으로 하나로 연합하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체험을 따르게 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입장은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신앙고백은 형식적이된채 감각적인 것만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결국 이들의 종착지는 마귀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약 3:15). 이것은 우리가 고린도전서 11:4에서 경고받은 것처럼 다른 영을 받음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31. 모세의 시대에도 모세가 행한 표적을 흉내낼 수 있는 마술사들이 이집트에 있었습니다(출 7:10-13). 느부갓네살 왕에게도 마술사들이 있었습니다(단 4장). 팟포의 도시에 있던 싸이프러스 섬에서 사도 바울도 마술사를 상대한 일이 있었습니다(행 13:4-12). 바울은 부리는 영에 사로잡힌 점치는 소녀를 상대한 적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영향력 아래 많은 사람들을 가둬두었던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행 8:9-13).
32. 이러한 것들은 사탄도 자신의 사역자들에게 초자연적인 일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성경의 몇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그것이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그것이 지금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33.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는 사역자들이 있는 것처럼 사탄도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사역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자들이 악한 세력과 싸울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처럼 이 세상의 신도 자신의 사악한 사역자들이 교회와 대항해 싸울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지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직 적은 수의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만이 영들을 시험하고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고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표적을 행하는 자들을 거부합니다.
34.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그대로 믿는다면 마지막 때에는 하나의 세계적인 교회가 탄생할 것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께서 모으신 교회가 아니며 마음은 전혀 없는 채 입술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세계적인 교회는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능력이 있는 자를 찾을 것이며 어떤 자가 표적과 능력으로 온다면 그를 영접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의 종교계는 죄의 사람이 등장하기 전에 그의 자리를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사람은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자신의 사역자들에 의해서 길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의 영과 많은 적그리스도가 이미 활동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5. 표적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유대인들이 구하는 것이지 이방인이나 교회가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유대인들이 선지자(대언자)의 메시지를 듣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낸 메시지가 맞는지 확인하는 장치였습니다. 이러한 표적과 이적과 기적은 성경에 의하면 세 번에 걸쳐서 역사 가운데 드러났습니다. 율법을 주시면 모세와 함께 드러났고, 선지자를 주시면 엘리야와 함께 드러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복음을 주시며 드러났습니다. 이 세 경우 모두 표적은 한 세대동안 지속되다가 사라졌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표적과 이적과 기적 운동은 적그리스도의 발밑으로 세상을 인도하는 미혹의 역사입니다.
36. 이제 표적과 기적과 이적이 나타날 시대가 남았는데 바로 대환란 시대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증인인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서 다시 표적과 이적과 기적이 이스라엘 가운데 펼쳐질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미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37.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첫째 짐승 앞에서 첫째 짐승의 모든 권능을 행사하고 또 땅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 곧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니라.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 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을 소유하여 그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1-15) 이러한 경고의 말씀은 이미 2천년 전에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떤 사람이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행한다고해서 그를 따르지 않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따라가며 무엇이든지 초자연적인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선과 악, 빛과 어둠, 하나님의 사역과 짐승의 능력있는 역사를 구별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8. 이 세대의 종교인들은 표적과 이적과 기적 운동을 통해서 공통된 믿음을 찾고 있습니다. 무대는 완성되었습니다. 연기자들도 준비를 끝냈습니다. 연기자들에게 빨려들어갈 청중들도 다 모였습니다. 이제 어느 순간에라도 나팔이 울리면 막이 열리면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거듭난 무리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은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공중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아멘!
맺는 말
1.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선하고 종교적이지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혹되었지만 신실한 자들도 있습니다.
2. 거짓 교리가 판치는 원인은 설교자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의 세 가지 잘못은 (1)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과 (2) 게으름과 (3)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든 것, 최선을 드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우리나라를 망친 것은 설교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설교자들은 하나님께서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과 교리적인 면 모두에서 그렇습니다.

표적, 이적, 그리고 기적
제4장 질병과 신유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Signs, Wonders And Miracles의 Chapter 4 : Sickness and Healing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매일 고침받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의사의 손을 통해서 또는 약사의 약을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치유하시기도 합니다.
2. 병을 고치는 은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5-18)
3. 절대 다수의 아담의 자손들은 육체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은 육신적으로 잘 사는 웰빙입니다. 몸이 아프면 고침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대가라도 치르려고 합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낫지 않으면 신유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람에게 찾아가게 됩니다.
4. 오늘날 주님을 종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옛뱀이 동산에서 사용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계 21:4)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약 5:15)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계 13:3)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인용한 것이지만 이런식으로 조합해서 읽으면 진리를 인용해서 거짓말을 하는 격이 됩니다.
5. 성경에서는 육체의 연약함과 관련해서 4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 연약함(infirmity) : 약하게 된 상태
(2) 야윈, 해(illness) : 정신이나 몸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illness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나오지 않음)
(3) 질병, 병(disease) : 몸의 일부분이 고난을 받거나 기능이 완전히 상실한 상태
(4) 역병, 재앙, 병(plague) :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기는 병
6. 네가지 이유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러한 질병들을 허용하시거나 보내셨습니다.
(1) 죄에 대한 심판
(2)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3) 육체를 연약하게 함으로 인해서 영적으로는 오히려 강건해 지기 위해서
(4) 창세기 3장의 저주의 자연스러운 결과
7. 병에 대한 첫번째 이유는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것은 민수기 12:1-10에 나온 미리암의 경우를 통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모세가 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결혼한 그 이디오피아 여인으로 인하여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참으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주께서 이 말을 들으시니라. (이제 이 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였더라.) (온유하다는 것은 순종적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모세는 스스로 백성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지 않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주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중의 성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주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 내려오사 성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므로 그 두 사람이 나아가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내 말들을 들으라. 너희 가운데 대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려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리하지 아니하나니 그는 나의 온 집에서 신실한 자니라. 그와는 내가 입에서 입으로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또 그는 주의 모습을 보려니와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주의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르며 그분께서 떠나시매 구름이 성막에서 떠나갔고, 보라,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같이 희게 되었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보니, 보라, 그녀가 나병에 걸렸더라.”(민 12:1-10)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뜻에 반역하는 미리암을 쳐서 나병이 걸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8. 또 다른 예는 주님의 만찬에 합당하게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 빵과 이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가 있으리로다. 오직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뒤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실지니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여 정죄를 먹고 마시느니라. 이런 까닭에 너희 가운데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많도다.”(고전 11:27-30)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하게 산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병에 들게 하실 수 있습니다.
9.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것은 병든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지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욥의 세 친구가 저지른 실수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병든 것의 원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때문일 경우가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질병과 하나님의 심판의 관계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이로써 주 너의 하나님이라 하는 이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주께서 네가 당할 재앙과 네 씨가 당할 재앙을 놀라운 것으로 만드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가며 질병이 심하고 오래가리라. 또한 그분께서 네가 두려워하던 이집트의 모든 질병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붙게 하시며 또 주께서 이 율법 책에 기록되지 않은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네게 내리시리니 마침내 네가 멸망하리로다. 너희가 하늘의 별들같이 많았을지라도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려 하지 아니하므로 남는 자의 수가 많지 않으리라.”(신 28:58-62) 저는 중세 교화의 권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유럽을 휩쓸 역병이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1. 에이즈가 어떻게 생긴지 아십니까? AIDS의 원래 명칭은 GRID였습니다. 에이즈는 원래 아프리카의 녹색 원숭이들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된 것입니다. 이것은 녹색원숭이들로부터 아프리카의 동성연애를 즐기는 흑인들에게 점염되었고 결국 뉴욕의 동성연애자들에게까지 점염된 것입니다. 뉴스 매체는 이러한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생각하여 진실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수천년전에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던 수간에 대해서 경고를 받았습니다. “너는 어떤 짐승과 함께 누워 그 일로 네 자신을 더럽히지 말며 어떤 여자도 짐승 앞에 서서 그것을 향해 눕지 말라. 그것은 혼돈이니라… 여자가 어떤 짐승에게든지 가까이하여 그것을 향해 눕거든 너는 그 여자와 그 짐승을 죽이되 그들을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리라. 남자가 자기 누이 곧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을 취하여 그녀의 벌거벗음을 보고 그 여자가 그 남자의 벌거벗음을 보면 그것은 사악한 일이라. 그들이 자기 백성의 눈앞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자기 누이의 벌거벗음을 드러내었은즉 자기 불법을 담당하리라. 남자가 생리 중에 있는 여인과 함께 누워 그녀의 벌거벗음을 드러내면 그는 그 여인의 근원을 드러내었고 그 여인은 자기의 피 근원을 드러내었은즉 둘 다 자기들의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레 18:23, 20:16-18). 이러한 죄를 범하는 자는 죽음에 쳐해졌습니다.
12. 질병의 명칭을 바꿀 수 있고, 질병을 전염시키는 자들을 보호하는 법률을 통과시킬 수도 있으며 진실을 말하는 자를 비난할 수 있지만 사실은 언제나 사실입니다. 동성연애자들이 에이즈에 걸립니다. 동성연애자들이 에이즈를 전염시킵니다. 동성연애자들이 에이즈의 근본 원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동성연애를 싫어하시는 이유이며 그 죄악에 벌주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이 자기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는 것을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롬 1:24-27)
13. 어느 누구도 동성연애자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식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동성연애가 본성을 바꾼 것이며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동성연애자는 아니었지만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에이즈로 죽는 사람들이 모두 동성연애의 죄를 범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동성연애의 죄를 범하지 않았지만 에이즈로 죽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로마서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같은 일들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롬 1:32)
15. 오늘날 기독교의 도덕적 타락은 동성연애자들을 성직자로 임명한 것으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로마 카톨릭도 동성연애자들에게 성직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여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부르짖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의 부자들은 폭력으로 가득하고 그곳의 거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며 그들의 혀는 그들의 입에서 속임수로 가득하니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고 네 죄들로 인하여 너를 황폐하게 하리라.”(미 6:12-13)
16.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질병의 두 번째 원인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입증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눈먼 자들이 보게 한 것입니다. 만일 병든 자나 죽은 자나 눈먼 자나 나병 환자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와 같은 경우에 병든자의 질병과 연약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17. “이것은 해 뜨는 곳에서와 서쪽에서 온 자들이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라. 나는 주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사 45:6-7) “도시에서 나팔을 부는데 백성이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가 행하지 아니하였는데 도시에 재앙이 있겠느냐?”(암 3:6) 죄와 사탄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질병에 대해서, 자신의 허용하시는 뜻에 따라 눈감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행 17:30, 시 22:1, 합 1:13).
18.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언제나 책임을 지십니다. 모세의 경우와 같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실 때도 있고 태어날때부터 눈먼 자의 경우처럼 간접적인 책임을 지실 때도 있습니다. 욥은 사탄이나 자연, 혹은 그 밖에 자신이 모르는 무엇인가가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 모든 도구의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19. 이스라엘은 표적과 함께 탄생한 국가입니다. “주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이제 네 손을 네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자기 손을 품에 넣었다가 품에서 꺼내니, 보라, 그의 손에 눈같이 나병이 생기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네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자기 손을 품에 넣었다가 품에서 꺼내니, 보라, 그것이 다시 그의 다른 살처럼 되었더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지라도 나중 표적의 소리는 믿으리라.”(출 4:6-8) 고린도전서 1:22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성경은 오늘날 악한 세대가 그러한 것처럼 그들이 단순히 표적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표적은 유대인들의 정당한 요구사항입니다.
20. 질병을 고치심으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부분을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나사로라는 이름의 어떤 사람이 병들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녀의 언니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 사람이더라. (그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던 자더라. 그녀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더라.) 그러므로 그의 누이들이 그분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소서,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 하나님의 아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리라, 하시더라.”(요 11:1-4) 성경은 나사로가 병들고 죽음으로 인해 주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누가 죄를 지었기에 그가 눈먼 자로 태어났나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낮일 때에 내가 반드시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분께서 땅에 침을 뱉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 눈먼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내어졌다는 뜻이라.) 그러므로 그가 자기 길로 가서 씻고 보게 되어 왔더라.”(요 9:1-7) 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 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 2:7)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그를 내쫓았다는 것을 들으시고 그를 만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분이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그분을 믿고자 하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너와 말하고 있는 이가 그니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그분께 경배하니라.”(요 9:35-38)
22.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고치심으로 영광과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셨고 예수님께서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병을 고치시고나서 자신의 계좌로 돈을 입금하라던지 헌금 봉투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식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없으시니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돈이 필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23. 오늘날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마귀에게 미혹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죽어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24. 사도들의 은사인 신유의 능력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병든자들의 믿음 없음을 탓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며 돈을 버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는 분명합니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 7:23)
25. 사랑하는 자여, 만일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만난 경험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말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당신을 주님의 능력으로 고쳐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만일 당신을 고쳐주시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롬 5:1-3)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환난에서 나왔으므로 기뻐하나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27.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롬 5:4-5) 바울은 멀리 내다봤습니다. 그는 자신이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알았고 어린양의 보혈로 씻음받았음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주님께서 하늘에 거처를 마련하셔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반역적이며 그리스도의 성품과 정반대인 옛성품을 가지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주님과 같아지기를 바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신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환난이 있어야 함을 알고 그 가운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 나온 덕목들은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하나 위에 다른 하나를 쌓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 가운데 자라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생활입니다.
28.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연약한 육체에 종종 질병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러한 사람에 관하여는 자랑하겠으나 내 자신에 관하여는 나의 연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려 해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하리니 나는 진실을 말하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직접 나를 보는 것이나 혹은 나에 관하여 듣는 것 이상으로 나에 대해 생각할까 염려하여 이제 그만두노라.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5-7)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 몸에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29. “내가 이 일로 인하여 그것이 내게서 떠나가도록 주께 세 번 간청하였더니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셨습니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육신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속 사람이 지배할 수 있도록) 완전(영적 완숙함으로 자라감)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병고침 받는 것보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병든 상태)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고후 12:8-9) 이것은 우리가 로마서 5장에서 배운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약한 것들과 치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노니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니라.”(고후 12:10)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로 주님께서 자신들을 질병 가운데 놓으시며 치유를 위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30. 질병에 대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네번째 원인은 저주입니다. 아담이 죄를 선택했을 때 두가지 저주가 이 땅 위에 임했습니다. 첫번째 저주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살아있는 혼들은 두번째 죽음의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대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사 53:5) 또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갈 3:13)
32. 두번째 저주는 에덴의 동산에서 선언된 것으로 땅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네가 들의 채소를 먹으며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
33. “또 마귀가 그분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그분께 보여 주며 마귀가 그분께 이르되, 이 모든 권능과 그 왕국들의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그것이 내게 넘겨졌으므로 누구든지 내가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주리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경배하면 모두 네 것이 되리라, 하매”(눅 4:5-7)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이 세상의 왕국들은 사탄의 권력아래 있었습니다. 루시퍼의 이러한 발언을 주님께서는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탄은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 되었습니다. 주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때에 죄에 대한 저주가 되셨고 죗값을 모두 치르셨습니다(갈 3:13). 그리고 주님께서는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마 28:18)
34. 만일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가지고 계신 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아직도 질병과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값은 치러졌지만 실제적인 구속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환란 후에 있을 주님의 재림때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3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스물네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이르되, 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께 우리가 감사를 드림은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셨기 때문이니이다.”(계 11:15-17) 지금 현재 예수님께서는 왕이 아니십니다. 지금 현제 주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좀 신성모독적인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압니다. 주님은 나의 왕이시고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뉴욕, 워싱턴, 모스크바, 로마, 도쿄 등의 도시를 실제적으로 통치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시는 때에 오셔서 정복하시고 통치하실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대가를 치르고 사신 왕국을 아직은 실제적으로 통치하지 않으심은 분명합니다.
36.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창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 창조물이 헛된 것에 복종하게 된 것은 자진해서 된 것이 아니요, 소망 중에 그것을 복종하게 하신 분으로 인한 것이니 이는 창조물 자신도 썩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롬 8:18-25) 이 세상에 대한 값이 갈보리에서 지불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실제적인 구속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37. 신약성경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보십시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고전 15:42-43) 그리스도인의 몸도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2-4) 현재 우리의 몸은 천한 몸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빌 3:21) 우리의 몸은 사망의 몸입니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우리의 몸에 지니고 있는 저주는 주님께서 오실 때 모두 치유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두번째 죽음을 맞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주받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첫번째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38.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있는 병을 위하여 포도즙을 조금 쓰라.”(딤전 5:23) 디모데의 병은 불신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열심을 내도 여전히 질병을 가지고 있으며 주님의 은혜로 그것들을 견뎌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는 자요 동료 군사요 또한 너희의 사자로서 내게 부족한 것을 공급한 자인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였노라. 그가 너희 모두를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었으므로 심히 근심하였느니라. 참으로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그에게뿐 아니라 내게도 긍휼을 베푸사 내가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 2:25-27)
3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사도 바울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병든 가운데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이 병고침을 받을만한 믿음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남겨 두었노라.”(딤후 4:20) 바울의 동역자들도 병약했지만 이들이 모두 죄를 지었거나 믿음이 없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이 저주 아래 있는 동안 선한 사람들도 여전히 병들고 죽을 것입니다.
40. 엘리사는 대단한 능력을 소유한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능력은 엘리야의 두배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제 엘리사가 죽을병에 걸려 아프게 되니”(왕 13:14)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1. 성경에 의하면 의로운 세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그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자기 의로 자기 혼만 건지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 14:14) 그러나 선한 사람도 질병에 걸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 다니엘이 기절하여 며칠을 앓다가 그 뒤에 일어나서 왕의 일을 행하였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으나 아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단 8:27) 신약과 구약 모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선한 사람도 병들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의 저주가 육신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계 21:3-4) 병약함, 슬픔, 고통, 그리고 죽음은 모두 인간이 죄를 지어 타락한 결과입니다. 이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의 삶에서 모든 고난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시간이 더 이상 없는 때, 즉 충만한 때가 이를 때까지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보다 몸이 건강해 지는 것을 더 바랍니다.
43. 논의를 끝내기 전에 봐야할 구절이 하나 더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목회를 하지 않는 개인적인 사역을 하는 부흥사가 아님)의 장로들(복수형, 개인이 아님)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약 5:14-15) 이 구절들의 분명한 적용은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그 일부로서의 자연 세계에 내려진 저주 때문에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에 나온 장로들은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 나온 장로의 자격을 갖춘 자들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장로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은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실제적으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격을 갖춰야만 주님 앞에서 장로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효력은 그러한 자격이 충족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이 치유받아야 할 사람의 믿음을 요구하지 않음을 보싶시오. 그가 기도해야 한다는 말 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은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장로들의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을 뿐입니다.
44. 우리는 앞에서 다음의 네가지 이유로 인해서 사람이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1) 죄에 대한 심판
(2)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3) 육체를 연약하게 함으로 인해서 영적으로는 오히려 강건해 지기 위해서
(4) 창세기 3장의 저주의 자연스러운 결과
45. 그러므로 사람의 병이 낫지 않는 성경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병이 들었는데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경우
(2) 지금은 표적과 기적의 시대가 아니므로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3) 성경적인 방법으로 병고침을 위해서 기도했으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로 병든 사람이 건강할 때 보다 병들었을 때 더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을 아셨기 때문에
(5) 이 세상에서의 그의 삶이 끝나서 질병을 통해 그를 주님께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46. 병고침을 바라고 교회에 갔으나 자신의 믿음없음으로 인해서 병고침을 받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절망에 빠져버린 불쌍한 영혼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치고 외롭고 슬픔가운데 있습니다. 거짓 은사를 내세우는 가짜 신유자들 때문에 수많은 불쌍한 영혼이 상처받은채 교회를 저주하며 하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 신유자들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심판의 날에 그러한 거짓 신유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47.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병자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병자를 고치시며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실 수 있임을 믿습니다.

표적, 이적, 그리고 기적
제3장 영 안에서의 죽음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Signs, Wonders And Miracles의 Chapter 3 : Slaying In The Spirit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영 안에서의 죽음”이라는 개념은 이전 시대에는 알려지지 않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교에서 행해지던 것을 제외하면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 후반기에 이르러 기독교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2. “누구든지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멸망하려니와 명령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상을 받으리라.”(잠 13:13) 성경을 연구한다면 어떠한 현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마귀로부터 온 것인지 분간하는건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살전 5:21)
3. 성경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를 흉내내는 종교적인 마귀가 있습니다. 이러한 마귀들로 인해서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참된 사역자는 회중에게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고후 2:11)
4.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조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런 사람들이 속한 교회가 은사주의 교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경험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5. 비극적인 사실은 교회사를 통해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과 감정과 느낌에 의지해 주님을 찾다가 오류에 빠지고 미혹에 빠졌다는 점입니다.
6. 예언이나 방언이나 통역이나 신유 같은 영적인 은사들이 모두 성경적인 것인데 반해(이것들에 관해서는 잘못된 적용이 문제임) 은사주의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 안에서의 죽음”과 같은 “뒤로 넘어지는 현상”은 결코 성령님의 역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7. 오늘날 가장 힘든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들의 감정이나, 경험, 친구들, 교회 전통과 다르면 그들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마음을 닫아버리고 결국 자신들과 똑같이 미혹된 사람들에게로 달아나 버립니다.
8. 소위 “영 안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은 은사주의 목사가 손바닦을 펴고 상대방의 이마를 밀어 쓰러트리면 그 사람은 뒤로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면 집회에 모인 무리들은 환호합니다.
9. “또 내가 울래 강의 둑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사람이 그 환상을 깨닫게 하라, 하더라. 이에 그가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가까이 나아오더라.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대고 엎드렸으나 그가 내게 이르되, 오 사람의 아들아, 깨달으라. 그 환상은 끝이 임하는 때에 있을 일이니라. 이제 그가 나와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엎드려서 깊이 잠들었으나 그가 내게 손을 대어 나를 똑바로 일으켜 세우고”(단 8:16-18) 여기에 주님의 손길이 닿는 경험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뒤가 아닌 앞으로 숙이는 것이 경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10.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고전 14:40)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얘기해 봅시다. 공적인 예배에서 성인 여성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남자들 앞에서 뒤로 넘어져 눕는게 과연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일입니까? 뒤로 넘어지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은사주의 설교자들은 집회에 올 때 여자들은 바지를 입고 올 것을 권장합니다.
11. 하나님께서는 영들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요일 4:1) 영들을 시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성령님의 역사는 미혹하는 영들과 센세이셔날리즘, 혹은 길흉을 점치는 영들의 일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는 어떤 집회에서 주관하는 영이 과연 어떤 영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성령님의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인간의 영이나 더러운 영의 사역의 결과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12. 성령님은 인격을 가진 분으로서 친절하시고 품위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어떤 사람에게 머물면 그 사람은 뒤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대언을 하면 믿지 않는 자나 배우지 못한 자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달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자기 마음의 은밀한 것들이 이렇게 드러나게 되므로 그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 진실로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 계신다고 전하리라.”(고전 14:24-25)
13.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앞으로 쓰러지게 되면 코를 부러뜨리거나 이빨이 깨지거나 눈을 다치지 않을까요?” 만일 사악한 영이 쓰러뜨린 다면 그렇게 다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스스로 주님 앞에 엎드린다면 전혀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성령님께서 사람을 강제로 그의 의지와 이성에 반해서 쓰러뜨려 억지로 경배하게 하신다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 자신의 열매 중 한 부분이 바로 절제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14. 고린도전서 14:25을 보면 얼굴을 대고 엎드려 경배하는 행위는 복종과 겸손과 회개외 경배의 증거임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쓰러짐”의 방법입니다.
15. “제자들이 그 음성을 듣고는 얼굴을 대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더라.”(마 17:6) 엎드리는 것은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엎드린 사람을 주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다니엘서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이에 그가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가까이 나아오더라.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대고 엎드렸으나 그가 내게 이르되, 오 사람의 아들아, 깨달으라. 그 환상은 끝이 임하는 때에 있을 일이니라.이제 그가 나와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엎드려서 깊이 잠들었으나 그가 내게 손을 대어 나를 똑바로 일으켜 세우고”(단 8:17-18) 주님께서는 자신 앞에 엎드린 사람을 똑바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대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자신의 원수들을 어떻게 대하실 까요?
16. 성경에도 뒤로 넘어져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때에 유다가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넘겨받은 사람들과 관속들 한 부대를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거기로 오니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임할 일들을 다 아시고 앞으로 나아가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로다, 하시니라. 그분을 배반한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더라. 그분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로다, 하고 말씀하시매 곧바로 그들이 뒤로 물러가 땅에 쓰러지니라.”(요 18:3-6)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헌신된 성도들이었나요? 이들은 부흥회를 하기 위해서 주님께로 나아온 사람들이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우리 주님의 원수들로 주님을 고문하고 죽이려고 모인 자들이었습니다.
17. 당신은 결코 자신의 경험을 믿어서는 않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의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경험이 언제나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잘못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8. 지금은 영적 혼돈의 시대입니다. 거짓 설교자, 거짓 환상, 거짓 경험, 그리고 거짓 간증이 어디서나 넘쳐납니다. 미혹하는 영이 종교적인 사람들을 거짓된 길로 인도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거짓된 교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망쳐버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19. 뒤로 넘어지는 것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그들에게 훈계 위에 훈계가 되며 훈계 위에 훈계가 되고 줄 위에 줄이 되며 줄 위에 줄이 되고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있었으니 이것은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올무에 걸려 붙잡히게 하려 함이니라.”(사 28:13) 지금 주님께서 경배와 부흥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신 것인가요?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거부당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도 거부당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성령님의 참된 역사를 거부하는 사람의 결말은 자신을 낮추고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넘어져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20. 오늘날 은사주의 집회에서 “영 안에서 죽임”을 당하고 방언을 받고 특이한 경험을 하는 것과 유사한 장면이 성경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아님은 명백합니다.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말 못하는 영이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그가 그를 아무 데나 데려가서 쥐어뜯으면 그가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또 몸이 파리해지나이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그를 내쫓게 하였으나 그들이 하지 못하더이다, 하매…그들이 그를 그분께 데려오매 그분께서 그를 볼 때에 곧 그 영이 그를 쥐어뜯으므로 그가 땅에 쓰러져 뒹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그를 심하게 찢고 그에게서 나가니 그가 죽은 자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죽었다, 하나”(막 9:17,18,20,26) 이 어린 아이는 “영 안에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아니며 인간을 파괴하려는 더러운 영의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더러운 영의 사역에 대항해서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신즉 그가 일어서니라.”(막 9:27)
21. 예수님께 고통을 가하고 죽이려고 했던 주님의 원수들은 뒤로 물러나 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마가복음에서 나온 어린 아이는 더러운 영에 시달리며 넘어지고 땅에 뒹굼니다. 우리가 성경을 찾으면 찾을수록 뒤로 쓰러지고 “영 안에서 죽임”을 당하는 행위는 우리 주님의 원수들과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악한 영이 역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주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쓰러지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앞으로 쓰러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 “영 안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을 원하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누가 죽이는 자(히 2:14) 입니까?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