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원에서 공부하는 이유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성경은 기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께 인정 받는 유일한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성경을 연구합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방법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선물로 주신 목사와 교사를 통해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둘째 방법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 배운 것을 스스로 연구하면서 그것을 확증하고 믿음으로 붙드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성경을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가지고 제 시간에 교회에 와서 가만히 앉아 증거하는 것을 들으면 됩니다. 문제는 혼자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성경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성경 연구에 있어서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는 것과 혼자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두 다리와 같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절름발이가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설교를 듣지만 스스로 성경 연구를 하지 못함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고 강단에서 선포하는 메시지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혼자 힘으로,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돕기 위해 우리 신학원은 존재합니다. 우리 신학원에서는 성경을 가르칩니다. 신학원 3년 과정을 통해 혼자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학원을 마치면 다시는 성경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제대로된 성경 연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학원은 토요일에 집중 강의 형식으로 이루어 집니다(다음 학기는 9월 첫 주에 시작함).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주일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바로 토요일 오후입니다. 3년 동안 토요일 오후를 희생한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그러한 희생을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서 주님 앞에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철도를 사랑하고 한글에 관심이 많고 킹 제임스 성경을 믿는 프로그래머
홈페이지 http://moogi.new21.org (블로그 http://moogi.new21.org/tc )
The Great White Throne Judgment
큰 흰 왕좌 심판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딜랜드 시에서 Bible Baptist Church와 부속 신학원에서 목회와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는 James W. Knox 형제가 설교한 The Great White Throne Judgment의 내용을 요약하고 옮긴 것입니다. 책이 아닌 설교라는 특성 때문에 듣기와 옮기기에 어려움이 있어 내용 전체를 번역 하지 못하고 요약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비록 요약이지만, 원래 강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손상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모두 역자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큰 흰 왕좌 심판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역자
계시록 20장, 마태복음 12장, 열왕기상 10장을 보겠습니다. 이 본문들을 통해 성경은 큰 흰 왕좌 심판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심판의 대상으로 큰 흰 왕좌 심판석에 서지 않습니다. 큰 흰 왕좌 심판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 호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중 어느 누구도 그곳에 보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고난을 당하셨겠습니까? 만일 구원받을 필요도 없다면 왜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겠습니까?
이제 계시록 20장을 보세요. 11절부터 보겠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만일 여러분이 이 땅 위에 있는 것 중 하나를 믿거나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여러분의 희망은 헛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믿고 그것을 위해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것에 희망을 두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땅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땅이 사라지면 그 위에 있는 것들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늘에 있는 것 중 하나를 믿거나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여러분의 희망은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도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끝나는 때가 오면 하늘과 땅을 포함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중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 때에는 큰 흰 왕좌와 그곳에 앉아 계신 분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어야 할 참되고 유일한 희망은 큰 흰 왕좌 위에 앉아 계신 그분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하늘에 있는 것들도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에 소망을 두고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모두 헛된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큰 흰 왕좌에 앉아 계신 분만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그분께 두고 있습니까?
나는 침례교인이다, 감리교인이다, 장로교인이다, 천주교신자다, 개신교인이다, 유대인이다, 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그분께 두고 있습니까? 나는 침례를 받았다, 성별된 삶을 산다, 성경공부를 한다, 교회에 다닌다, 주일 성수를 한다, 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분께 신뢰를 두고 있으신가요?
계시록 20장에서 말씀하시는 큰 흰 왕좌 앞을 주목해 보세요. 거기서는 모든 교회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모든 교단도 사라졌습니다. 모든 신조도 사라졌고 종교도 사라졌습니다. 그곳에는 교회 프로그램도 없고 신학박사도 없고 심리학자도 없고 묵주도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그분만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12절도 보세요.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이 세상과 하늘과 모든 것이 사라진 때에 오직 하나님과 사람만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사기꾼 같은 목사 앞에 서 있는데”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교회 재정을 훔치는 집사 앞에 서 있는데”라고 하지 않아요. 성경은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자신들보다 못한 위선자들 앞에 서 있는데”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핑겨를 대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실수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람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 해야 하는 상대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큰 흰 왕좌 심판대에서는 여러분과 하나님만이 남아서 결산을 하게 됩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심판받는 것이 유쾌하지 않겠지만 인생을 결산하는 큰 심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더 이상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죄를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구원받거나 거듭나거나 회심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큰 흰 왕좌 앞에서는 이미 일어났던 일들, 되돌릴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현재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여러분에게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채 죄 가운데서 죽게 되면 여러분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저 돌이킬 수 없는 죄악된 과거만 존재할 뿐입니다.
심판대 앞은 형벌을 협상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준엄한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곳에서는 어떠한 합의나 협의도 할 수 없습니다. 그 곳에서는 여러분이 무슨 일을 했는가를 다루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과 일치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치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산 인생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과 100%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100% 일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죄인으로 정죄받게 됩니다. 매우 간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 하나라도 죄가 있다면 죄인으로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13절도 보세요.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는지 누구와 친했는지 얼마나 좋은 집에 살았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습니다. 무엇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팜을 받습니다.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과 여러분 각자와의 관계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떤 교회를 다녔는지 여러분의 목사가 누구였는지도 상관하지 않으실 겁니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 못했고 누구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그 날,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 누구에 대해서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서는 여러분 각자 하나님과 마주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여러분에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14절부터 보세요.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고난을 당하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신판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땅의 심장으로 내려가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는지 아세요? 왜 다가올 진노로부터 피하라고 경고하시는지 아세요? 왜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신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 호수의 심판으로부터 여러분을 건져 내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분과 만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분을 믿지 않고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불 호수에 던져져서 영원을 보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열왕기상 10장을 보세요. 다윗에게는 매우 현명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통치했습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나온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18절부터 보세요.
“또 왕이 상아로 큰 왕좌를 만들고 가장 좋은 금으로 그것을 입혔더라. 그 왕좌에는 여섯 계단이 있었고 왕좌의 꼭대기는 뒤가 둥글게 되어 있었으며 앉는 자리의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었고 팔걸이들 옆에는 사자 두 마리가 서 있었더라. 또 거기에 사자 열두 마리가 그 여섯 계단의 이쪽과 저쪽에 섰는데 어떤 왕국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솔로몬은 상아로된 큰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왕좌에는 여섯 계단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일곱 번째에 왕좌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벽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왕좌의 꼭대기는 뒤가 둥글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계시록 4장과 비교해 보면, 계시록 4장에서는 왕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다고 합니다. 또 솔로몬의 왕좌에 사자 열 두 마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계시록에서는 스물네 장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왕좌가 주님께서 앉아 계신 큰 흰 왕좌의 모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마태복음 12장을 보시겠습니다. 38절부터 보세요.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에 어떤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하거늘” 사람들은 흥미있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따분한 설교보다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원해요.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
오늘 여러분에게 표적이나 기적이나 쇼를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러한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매우 기본적이고 쉬운 복음의 메시지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한 번 보세요. 41절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솔로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 왕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의 죄로 인해 죽으신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채 기적과 표적을 보여주시고 여러분이 부자가 되게 해 주시고 여러분의 병이 낫고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하게 해 주시기 만을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일을 해 주면 그때가서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날 심판대 앞에서는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음을 절감하게 될 겁니다.
그날 심판대 앞에서 아마 어떤 사람이 이렇게 불평할 겁니다. “아! 나는 복음을 제대로 들을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일 한 적도 있고 교회에 다녀본 적도 있고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닌데요.”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그리고 심판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을 보시면서 물으실 겁니다. “여기 혹시 니느웨에서 살던 사람 있느냐?”
그러면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대답할 겁니다. “예, 주님 제가 니느웨 출신입니다.” “잠깐 이 앞으로 나와 보겠느냐.”
그러면 그 사람이 앞으로 나오고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물으실 겁니다. “너는 요나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예, 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거리에서 설교했습니다.”
“그래, 내가 보냈었느니라. 그가 뭐라고 설교했었느냐?”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래? 그는 로마서에 나온 복음을 전했느냐?”
“로마서라니요, 그런건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그가 신약성경을 인용해서 복음을 증거했느냐?”
“신약성경이라니요? 그런건 못들어 봤습니다.”
“그럼 그가 거리에서 설교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도 전했느냐?”
“아닙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음, 그렇구나. 그래서 너는 그 설교를 듣고 어떻게 하였느냐?”
“당연히 회개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심판대 앞에 선 사람에게 물으실 겁니다. “너는 근처에 교회도 있었고 매주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도 있었고 성경도 있었고 게다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됐는데 왜 믿지 않은 것이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믿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러면 옆에서 듣고 있던 니느웨 사람이 이렇게 물을 겁니다. “에? 정말 이 모든 것을 다 전해 들었는데도 믿지 않았다는 건가요?”
주님께서는 니느웨 사람에게 이렇게 물으시겠죠. “복음을 여러 번 들었고 원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었는데도 복음을 거절한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그러면 니느웨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당연히 지옥에 가야 합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무시했으니 정죄받아 마땅합니다. 복음을 그렇게 듣고도 거절했다면 절대로 구원받아서는 않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니느웨 사람에게 동의하시며 심판대 앞에 있던 사람을 불 호수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나온 세바의 여왕은 낙타를 타고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이 현명한 사람으로 영적인 진리들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여왕의 몸으로 낙타를 타고 직접 아프리카 대륙을 건너 시내 광야를 지나 솔로몬을 찾아온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심판때에 그녀가 나와서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교회가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알 수 있고 원하면 언제든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원을 등한히 하고 복음을 가볍게 여긴 사람들을, 모든 어려움을 무릎쓰고 솔로몬을 찾아갔던 남방 여왕이 정죄할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려고 낙타를 타고 대륙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렇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었는데도 그걸 거절했다구요? 당신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겠네요.”
흰 왕좌 심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진리를 거부한 사람들이 정죄를 받는데 그 이유는 살인을 해서도 아니고 거짓말을 해서도 아니고 간음을 해서도 아니고 도둑질을 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춰주신 빛을 거부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어쩌면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제가 어떤 사람들을 대적해서 증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너는 저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느냐?” “예, 주님.”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거했느냐?” “예, 주님.” “저들에게 어떻게 구원받는지 말해 주었느냐?” “예, 주님.”
이것은 지금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아니면 무슨 선행을 했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구원을 받아들였는가의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절부터 보세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그것을 피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불 호수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영원히 불타는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의 악한 행위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씻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빛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흰 왕좌 심판대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그곳은 누가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고를 가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거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이미 정죄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합당한 형벌을 실행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정죄가 하나님을 믿지 않음의 결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주님께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이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저주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 사람들은 거짓말 하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 사람들은 농담이나 하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대언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이 사람들은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팔뚝에 마귀 문신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귀걸이를 하는 사탄 숭배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약중독자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마귀들을 쫓아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구제 사업도 많이 하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아마 감옥에도 방문하고 불우이웃도 돕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지 아세요? 23절을 보세요.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주님께서는 이들이 좋은 일을 한 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어느 정도 선한 삶을 산 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지옥에 던져지는 것인가요? 그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아닌 자신들을 믿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보세요. 그들은 “무엇무엇을 우리가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으로 한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을 가지고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것을 믿을 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신이 꽤나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을 것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경고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결코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나쁜 사람들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쁜 사람이건 선한 사람이건 상관없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욥기 14장을 보세요.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욥기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세요.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리이까?”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또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죽음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사람이 있고 지옥에 던져지고 나중에는 불 호수에서 영원을 보내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시록 20장에서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정하신 시간의 모든 날을 내가 기다리되 변화가 내게 이를 때까지 기다리겠나이다.” 성경은 히브리서 9:27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약속을 잡아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과 약속이 잡혀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잡혀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심판으로 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어떤 자들은 죽음 이후에 1000년 동안 지옥에 있다가 최후의 심판대에 서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더 오랜 후에 흰 왕좌 심판대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서 그분을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예약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계시록 20:6에서는 첫번째 부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에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 후에, 주님을 거부해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들, 죽어서 지옥에 있던 자들이 모두 부활해서 큰 왕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15절을 보세요. “주께서는 부르시겠고 나는 주께 응답하리니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원하시리이다.” 흰 왕좌 심판대에서 사람들은 각자 개인적으로 주님 앞에 살아온 인생에 대해 회계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질문과 답변이 있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저는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이냐? 라디오에서 복음이 나올 때 듣기 싫다고 하면서 꺼버리지 않았느냐?”
“믿으려고 해도 기독교인들이 다 위선자들이라서 그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냐? 직장에 함께 근무했던 사람 좋은 동료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느냐?”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답을 하시며 회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께 답을 하며 회계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 하나님께 “왜?”라는 질문을 했던 분이 있을 겁니다.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나요?”, “왜 하필 저인가요?” 이런 질문을 주님께 하지만 주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신적 없으신가요? 왜 주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신지 아세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답해야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는다면 여러분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왜 믿지 않았는지 물으실 것이고 여러분은 주님께 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빌라도가 주님께 물었으나 주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질문에 답하실 의무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 서계셨을 때 빌라도의 아내가 빌라도에게 와서 이상한 꿈 얘기를 했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여보, 무서운 꿈을 꿨어요. 저 사람이 큰 흰 왕좌 위에 앉아 있고 당신이 죄인의 자리에 서서 저 사람의 심판을 받는 꿈이었어요. 저 사람을 재판하지 말고 그냥 보내세요. 저 사람이 당신에게 질문을 하면 당신은 대답해야만 했어요. 제발 저 사람을 그냥 보내세요.”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원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몸을 입고 있는 인간들이 그 몸으로 무엇을 했는지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재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진화된 존재이고 여러분을 창조한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느 누구 앞에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 결과를 보고하며 회계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죽어서 그저 흙으로 돌아갈 뿐이고 여러분이 한 일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회계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을 지적인 존재로 만드시고 여러분이 사는 곳에 태어나게 하시고 재능을 주시고 지능도 주셨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했는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듣고 싶어하실 것이며 그럴 권리가 있으실 것입니다.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해명하며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자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인간에게 어떻게 인생을 사용했는지 들을 권리가 있으시고 반드시 들으실 것입니다.
16절도 보세요. “이제 주께서 내 걸음을 세시오니 주께서 내 죄를 감시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여러분 중에 구원받은 분들은 처음 성령님께서 마음 속에 구원의 확신을 주신 날을 기억해 보세요. 거듭나기 전에 아무런 꺼리낌없이 짓던 죄들을 거듭나고 나서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끊게된 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할 만일 일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보고 계시며 그 걸음을 세고 계십니다. 17절을 보세요.
“주께서는 내 범죄를 자루에 담아 봉하시고 내 불법을 꿰매시나이다.” 여러분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한 가지 길은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자루에 담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또 다른 길은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무시하고 계속 자기의 길을 고집하며 자기 방식대로 살다가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를 담은 자루를 어깨에 매고 흰 왕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서서 스스로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누구도 대신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의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그 곳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죄의 자루를 가지고 갈보리로 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내가 무엇 무엇을 했고, 무엇 무엇을 했으며…”하면서 그 위에 앉으신 분께 변명하느라 진땀을 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변명을 해 봤자 어깨에는 여전히 큼지막한 죄의 자루가 걸쳐 있을 것이며 그 죄의 자루가 있는한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흰 왕좌 심판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그 날에, 그 심판대 앞에서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 중에 자신의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셨습니다.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잃고도 계속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팔이 분명히 절단되어 더 이상 없는데도 불구하고 손가락 끝이 아프다고 하면서 고통을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지체에 대한 고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죄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직도 죄 문제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주님께 맡긴 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18절을 보세요. “산은 무너져 반드시 없어지며 바위도 제자리에서 옮겨지고 물은 돌을 닳게 하나니 땅의 티끌 속에서 자라는 것들을 주께서 휩쓸어 가시며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
흰 왕좌 심판이 일어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없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사람만이 남게 됩니다.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선 사람에게는 더 이상 믿고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는 사람들이 신뢰하던 거짓 소망들이 사라지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크리스찬 사이언스”라는 종교가 그렇게 믿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환영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도 그것은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장례식도 관도 무덤도 다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소망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재물과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치료책이 나오고 모든 질병을 정복할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할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풍부한 재물과 진보된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들은 에이즈와 암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것을 소망합니다. 인류는 누군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수 세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지만 아무도 새겨 듣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소망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도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자신들의 소망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늘나라와 지옥을 믿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그러한 것들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지옥이 없기를 바랄뿐인지 몰라도 그것은 죄를 짓고 감옥이 없기를 바라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죽으면 이러한 거짓 소망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모두 산산히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은 불 호수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생하기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저는 도대체 왜 이런 세상에서 두 번 살고 싶어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다시 태어나서 인생을 다시 살고 싶은 것인가요? 저 같으면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이 세상에서 다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루고 모든 것을 다 소유한다 해도 영원한 생명을 살 수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환생의 거짓된 소망을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모두 제거해 버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을 거라고 소망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거짓된 소망을 가진 자들도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자기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분 앞에서 그분의 질문에 답변해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선을 행해야 하나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선을 행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하나님도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면 그저 즐기고 마음 가는대로 살면 그만일 것입니다. 기말시험이 없다면 학생들이 왜 공부를 하겠습니까?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암기하고 공부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이 없다는 거짓된 소망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은 없으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마음을 바꿔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실 것이고 심판을 대충 하신 후에는 모든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초대하실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이런 식으로 설교하는 노만 빈센트 필이나 로버트 슐러 같은 사람의 말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농담이었어.”라고 하실 걸 알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 모진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진데 이러한 말보다 더 신성모독적인 것은 없습니다. 죄 문제가 중요하지 않고 죄에 대한 대가가 치러질 필요도 없었다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셔야 했겠습니까? 영원한 형벌은 없을 것이라는 거짓된 소망은 흰 왕좌 심판대에서 모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20절을 보세요. “주께서 영원히 그를 이기셔서 사라지게 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시고 내쫓으시오니” 주님의 판결은 영원하고 주님의 형벌도 영원합니다. 불 호수에서 자신의 죄값을 치르며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곳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예 분명히 그분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판결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판결을 번복하고 죄있는 사람을 그냥 풀어주는 판사를 자비롭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는 하늘나라에 가기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그 곳에 없을 것을 생각하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별로 즐거울 것 같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욥기 14장에서 하늘나라에 가면 그 모든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겪었던 이전 일들이 모두 마음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있는 자들은 지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그것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그들에 대한 그 일을 깨닫지 못하되”(욥 14:21)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지옥에 가면 자기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확실히 보장합니다. “오직 그에게 붙어 있는 살이 아픔을 느끼고 그 속에 있는 그의 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하더라.”(욥 14:2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활한 몸을 입게 됩니다. 제가 오늘 죽고 내일 휴거가 일어난다면 저의 혼은 다시 이 몸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 몸은 새로운 몸으로 변화받게 됩니다. 죽었던 이 몸이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께서는 이 몸을 변화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처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오늘 죽는다면 몸은 사람들이 땅에 묻고 혼은 지옥으로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셔서 의와 정의로 천년 간을 다스리신 후에 다시 몸을 입고 부활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꺼내시고 여러분의 몸은 무덤으로부터 불러모아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최후의 형벌을 집행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을 듣게 된 후에 몸을 입은채 산채로 불 호수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살이 아픔을 느끼고 그 속에 있는 그의 혼이 애곡”할 것이라는 성경의 표현에 주목해 보세요.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왜 죽었고, 왜 부활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대신 종교를 믿는 것입니다.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멸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요 3:17)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행 16:3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서 정죄받고 준엄한 형벌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되는지 아십니까? 성경에서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계 22:12)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저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흰 왕좌 심판대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이 서게 될 것인데 저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판대 앞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저의 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치러졌고 저는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저는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전하는 흰 왕좌 심판에 대한 메시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그 심판대 앞에 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위해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순간 그러한 구원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뜻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독자들에게 알리는 글
이 글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딜랜드 시에서 Bible Baptist Church와 부속 신학원에서 목회와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는 James W. Knox 형제가 설교한 갈라디아서 강해의 일부인 The Will of God 1, 2의 내용을 요약하고 옮긴 것입니다. 책이 아닌 설교라는 특성 때문에 듣기와 옮기기에 어려움이 있어 내용 전체를 번역 하지 못하고 요약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비록 요약이지만, 원래 강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손상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모두 역자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많은 것을 더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다른 것을 더하게 되면 혼란스러워 집니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뜻은 매우 분명하고 알기 쉽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을 더하게 되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고후 1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거듭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표적이나 느낌이나 경험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은 특별한 경험이 있고 은사가 있기 때문에 자기들만 특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무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자신의 뜻을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만 특별한 것을 말씀하셨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만이 특별한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두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 외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성령으로 인치시고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더 놀라운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 누구도 성경 이외의 더 특별한 계시를 받은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감춰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순종한다면 인생의 나머지 문제들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인생의 다른 문제들에 빠져서 거기에 몰두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갈 1:3-4)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들로 인함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1장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이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악한 이 현 세상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삶은 여전히 세상과 일치한 채 살아 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도 교회가 세상과 일치해 가고 있습니다. 교리와 음악도 세상을 쫓아 갑니다. 교회가 이 악한 세상과 어울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맞추고 심지어는 성경까지 이 세상의 구미에 맞게 뜯어 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마 7:13)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주에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이번 주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지난 주 일요일 이후로 7일이 흘렀습니다. 그 모든 날 동안, 그 모든 시간 동안, 그 모든 순간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가요? 단지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을 위한 일 말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담아 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의 인생 중 얼마만큼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기독교는 과거와 비교해 보았을 때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평가하더군요. “찬양도 똑같고 기도도 똑같고 설교는 조금 나아졌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시들어 버렸다.”
문제는 항상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과와 상관없습니다. 많은 결과를 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없고 적은 결과를 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외형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주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디라는 특정한 장소가 하나님의 뜻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아무런 훈련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불평할 수 있습니다. 불평은 옛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자연스럽게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은 새사람에게 속한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나이가 지긋한 형제님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님은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여행의 모든 부분은 주님께 감사함으로 연결되었습니다.
7.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17-18을 보세요. “너희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4:19도 보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잘 행하는 가운데 자기 혼을 그분 곧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겨 지키시게 할지어다.”
우리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를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의를 행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에 그 고난을 견뎌내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좋은 간증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지역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는 “끔찍한” 죄를 짓게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하게 되고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서 질문을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때리고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르게 행하다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과 실라는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과 인내와 기쁨으로 고난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 결과 빌립보 간수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고 결국 그와 그의 가족은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았으며 빌립보 지역에 교회가 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은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난을 통해서 빌립보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을 때 계속해서 의를 행한다면 우리의 간증은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행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에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사람들은 우리의 증언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며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으셨지만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자세로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8.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6을 보세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너희는 음행을 삼가고 너희 각 사람이 거룩히 구별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그릇을 소유할 줄 알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같이 욕정의 욕망으로 하지 말고 아무도 어떤 일에서든 도를 넘어 자기 형제를 속여 빼앗지 말라. 우리가 또한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고 증언한 것 같이 주께서 그런 모든 자들에게 복수하시느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우리는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악합니다. 이 세상은 음행을 조장합니다. 이 세상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과 열정과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조절해서 음행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짐승처럼 살지 말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앞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본능에 따라 삽니다. 어떤 행위를 하면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할까 봐 걱정하는 짐승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본능에 충실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은 영화와 TV와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답게 살라고 거룩히 살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세요? 음행을 삼가고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매우 분명하고 명백합니다.
9.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1을 보세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우리 형제 소스데네는” 같은 내용이 고린도후서 1장과 갈라디아서 1장과 에베소서 1장에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을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과 우리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하노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에 대한 것을 공부하지는 않겠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사도라는 것은 영적인 은사입니다. 선지자나 복음전도자도 영적인 은사입니다. 목사와 교사도 영적인 은사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하메드의 사도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하메드의 뜻대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선포하고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종교를 세웁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만을 위한 사도였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었고 예수 그리스도 자체였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던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업이 무엇이던 간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사원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부름 받은 회사원이고 의사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부름 받은 의사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섬기는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은사가 아니라 그 은사를 주신 분입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은사를 받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은사를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사용해서 우리 자신을 섬길 수도 있고 세상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영광이나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은사를 받았을까요? 우리는 모두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는 모두 하는 일이 다르지만 모두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지체라도 그것이 없으면 장애인이 됩니다. 새끼 손가락이 없어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온전한 몸이 아닌 장애를 가진 몸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하나의 은사일 뿐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사용해서 자기의 맡은 일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받은 은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데에다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받은 은사를 다른 데에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은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지역에는 수 백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교회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면 모두 굳건히 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선 교회가 있다면 모두 오늘 당장 망하고 문닫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사역의 목적인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교회를 시작하려고 하는 분들은 잘 생각해 보세요. 왜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까? 단지 어떤 지역에 교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세우는 것인가요? 아니면 설교를 하고 목사가 되고 싶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인가요?
만일 어떤 지역에 교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교회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목사가 되려고 교회를 세운다면 이미 그런 교회는 차고 넘치도록 많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교회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진정한 부르심 없이 단지 목사가 되기 위해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잘못된 동기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목사일지는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일 수도 있고 그냥 목사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회사원일 수도 있고 그냥 회사원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학생일 수도 있고 그냥 학생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집을 구매할 것인지 전세로 들어갈 것인지와 관계가 없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지 혹은 홈스쿨을 할지와도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홈스쿨을 해도 아이가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보내도 훌륭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이를 정규학교에 보내느냐 아니면 집에서 가르치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이를 거룩하고 깨끗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아이의 양육관 관련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옷을 어떻게 입고 화장은 어떻게 하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기준을 만들어서 그 기준에 맞으면 영적인 사람이고 그 기준에 어긋나면 육신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기준을 가지고 거룩하고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영적인 전쟁은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과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바르게 행하고 거룩하고 성별된 삶을 살고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적인 자동차가 있고 영적인 자동차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런 물질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10.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중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로마서 8:26-28을 보세요.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계획하고 계시고 중보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여러분이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고 성령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해 주십니다. 우리도 성령님처럼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들 하나님도 중보해 주시고 성령 하나님도 중보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아들 안에 있고 성령 안에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다른 형제를 비판하고 비방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합니다. 뒤에서 비방하지 말고 뒤에서 기도해 줘야 합니다.
어떤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그가 변하지 않는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는 것과 비교해 보세요. 성령님께서 지금 뭐하고 계신지 아세요? 오늘 교회에 나오지 않은 모든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도를 응답 받지 못한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시지만 그 기도는 정말 거의 응답 받지 못하고 응답을 받는다 하더라도 더디게 응답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목록을 보면서 응답 받지 못한 기도가 많음에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성령님의 응답 받지 못한 기도 목록을 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는데 기도 응답 받지 못하신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3:23, 4:7). 성령님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이러한 기도가 응답 받았을까요? 그리스도의 몸이 분열되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응답 받았나요?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다고, 혹은 기도의 응답이 너무 더디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을 생각해 보세요.
성령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하고 가르치시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중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을 향해서 쓴 뿌리를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진정으로 꾸준히 기도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세 가지
우리가 살펴본 위의 열 가지 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알고 행하고 온전히 행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세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제가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다닐 때에 저를 가르치던 주일 학교 교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받으실 만한 뜻과 완전하신 뜻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본문은 그런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일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고 어떤 일은 받으시지는 않지만 선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선하면서 완전한 것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은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희생은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는 자매들을 보면서 저 자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고 저 자매는 하나님의 받으실 만한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선하신 뜻보다는 받으실 만한 뜻이 더 낫겠지 싶어 “받으실 만한 뜻 자매”에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나중에 결혼식장에서 신부 친구 중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 자매”를 보고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어이없는 얘기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런 식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세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가지를 세 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종종 이런 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시거나 흠이 없으시거나 더럽혀지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고 더럽혀지지 않은 분이십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거나 한 아들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한 아이가 태어났고 한 아들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놀라우신 이이시거나 조언자이시거나 강하신 하나님이시거나 영존하는 아버지이시거나 평화의 통치자이신 게 아니라 놀라우신 이이시며 조언자이시고 강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는 아버지이시며 평화의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음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하신 뜻인가요, 받으실 만한 뜻인가요, 완전하신 뜻인가요? 음행을 하던지 음행을 하지 않던지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음행하지 않으면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하신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모든 일에 감사하면 그것은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온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감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선하지 않고 받으실 만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받으실 만하지는 않지만 선한 것은 없습니다. 로마서 12:2은 하나님의 뜻에 관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의 특징을 자세히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절에서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고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하게 드리거나 받으실 만하게 드리거나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몸을 드리는 것에 관한 세 가지 측면이지 각자 다른 단계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2절도 하나님의 세 가지 뜻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세 사지는 모두 함께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희생이 거룩하고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이어야 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행하는 하나님의 뜻이 선하면서 받으실 만하고 완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엡 6:6) 하나님의 뜻을 알면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속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종인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너희를 위해 항상 기도로 뜨겁게 수고하나니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완전하고 완벽하게 서게 하려 함이라.”(골 4:12) 하나님의 뜻을 행하되 완전하게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행하시되 온전하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좌절하거나 그만두지 말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선한 것인지, 받으실 만한 것이지, 완전한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독자들에게 알리는 글
이 글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딜랜드 시에서 Bible Baptist Church와 부속 신학원에서 목회와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는 James W. Knox 형제가 설교한 갈라디아서 강해의 일부인 The Will of God 1, 2의 내용을 요약하고 옮긴 것입니다. 책이 아닌 설교라는 특성 때문에 듣기와 옮기기에 어려움이 있어 내용 전체를 번역 하지 못하고 요약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비록 요약이지만, 원래 강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손상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모두 역자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은 갈라디아서 1:1-5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사람으로 말미암지도 아니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들로부터 그분을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과 더불어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오늘 우리가 공부할 주제는 하나님의 뜻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들을 종종 듣곤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들은 것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혼란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청중을 성경 밖으로 끌어내어 경험과 감정의 영역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한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낀 것이나 경험한 것이나 본 것이나 상상한 것이나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른 것은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느낌을 알지 못합니다. 아마 선한 마음을 가진 가운데 떠오른 생각일 수도 있고 악한 마음을 가진 가운데 떠오른 생각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여러분의 마음 속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롬 10:17)고 했습니다. 또 모든 성경이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지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이나 상상이 영감으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이 말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기도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영들을 시험해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이런 말도 성경에 없습니다. “문이 열리는지 닫히는지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이런 말도 성경에 없습니다. 제가 방금 열거한 말들은 성경에 없는 말들이며 이러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감정에 근거한 추측일 뿐입니다. 이러한 것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입니다.
잘 들어 보세요. 성경에는 어떤 색의 자동차를 구매해야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고속도로 중간에서 멈춘다고 해서 그 차를 구매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하고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주택을 구매할 것인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의 문제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만일 완벽한 사람과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두 남녀가 결혼을 해서 구원받고 성경 말씀대로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일이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해서 10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 중 어느 것도 베네수엘라나 콩고 중 어디로 선교사로 떠나야 할지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먼 지역으로 선교사로 떠날 것인지 아니면 고국에 남을 것인지,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의 문제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그 뜻을 알고 행하기 원합니다. 만일 여러분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 원한다면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믿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성경적인 기독교 방송이나 이상한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혼란스럽게 됩니다.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책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항상 분명하고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찾아보고 순종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명백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1. 악한 현 세상에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명백한 부분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악한 현 세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요일 2:16)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현 세상은 악한 세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말씀들을 찾아보면 모두 이 악한 현 세상과는 관련이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디에 집을 사고 어떤 차를 구입하고 어떤 색 옷을 입어야 하는지는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악한 현 세상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과 관련된 것을 놓고 주님을 뜻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닌 오는 세상과 관련된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느끼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인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어떤 일을 위해 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나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상황과는 관련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요나에게는 모든 문이 열려 있었지만 결국 지옥에서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에도 그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문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교회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도 바울에게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바울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2. 교회로 함께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이어트에 대한 책이나 강연이나 신문기사나 영상 등 정보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가 많이 있다 할지라도 살을 빼는데 관심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집을 수리하고 고치고 꾸미는 것에 관한 책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책과 정보가 있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문제를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고 성령님도 내주해 계시고 목사님도 있고 형제 자매들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치 않는다면 이런 것들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그것을 행할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늦잠을 더 자거나, 아니면 바르게 살기보다 죄를 지으면서 사는 것이나, 아니면 주님을 기쁘게 하기보다 육체를 기쁘게 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는 것은 전혀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나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가?”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까?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대부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고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9-10을 보세요. “내가 그분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가 기도할 때에 언제나 너희에 관하여 끊임없이 말하며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나아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로마서 15:31-32도 보시겠습니다. “내가 유대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구출 받게 하며 또 예루살렘을 위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아들이게 하고 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새 힘을 얻게 하라.”
로마서의 시작과 끝 부분에서 바울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의 불신자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믿는 자들과 교제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교제를 나눔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불신자들로부터 떠나 믿는 자들과 함께 모여 교제를 나누고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서로 나누고 서로 힘을 북돋아 주고 기뻐하며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힘을 얻은 다음에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진리를 가르치고 예수님을 위해 얻어 터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임을 통해서 기쁨을 얻고 새 힘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사도 바울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서 신약 성경의 절반을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서 수많은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만일 “나는 교회에 가지 않아도 돼.”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바울일 것입니다. “나는 설교를 통해 배울 것도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설교를 들을 필요가 없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바울일 것입니다. “더 이상 나를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서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배를 타기도 했고 울기도 했고 얻어 맞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기도 하는 등 수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많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통해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성도들과 만나 교제를 나누고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바울조차도 자신이 불신자들로부터 나와 믿는 자들과 함께 교제를 나눔으로 새로운 힘을 얻고 기쁨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의 매일 교회에 나와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거의 매일 형제들과 함께 주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모여서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면 온갖 욕설과 불경건한 말들을 듣게 됩니다. 세상에 물든 우리가 다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모여 교제를 나누고 말씀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이 세상의 더러움 속에 뒹굴었기 때문에 깨끗이 씻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더러운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씻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노래로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잡하거나 숨겨진 비밀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8:5을 보세요. “그들은 우리가 바라던 것과 달리 이 일을 행하되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지금 이순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과 혼과 힘과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재능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세요. 여러분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세요.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것도 아니고 나의 생각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잘 들어 보세요. 이 세상은 무엇을 가르치는지 아세요?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너 자신을 위해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은 TV와 뉴스미디어를 통해서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여러분을 세뇌시켜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도 그 교회가 자신을 즐겁게 해 주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뭔가 잘못되었어.”라고 말하는 경우, 말하는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이 교회는 완벽하지 않아.”라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완벽했다면 그 사람이 들어올 수 없었을 겁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도 하지 않으면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는지 아세요?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혼을 하는지 아세요?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왜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헤어지는지 아세요? 각자 자기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나보다 먼저 하나님을 앞에 두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것은 이 악한 현 세상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고 다른 사람을 둘째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자기 자신을 첫째 자리에 두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울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찬송을 부를 때도 있고 별로 와 닿지 않는 설교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만 생각하다가 설교 시간에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음… 이 설교는 저 형제를 두고 하는 거구만…”
교회에 와서도 자신만 생각하고 교회가 자신을 배려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을 막 대한다고 생각하면서 쓴 뿌리를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로 기분이 언짢아 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자리에 주차를 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와 악수를 하지 않아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와 악수를 해서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불평만 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여러분보다 앞에 두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린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해서 여러분의 불편함이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교제를 나누고 새로운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매우 간단하지 않습니까?
4. 자신의 세대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얘기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어제 저녁 밖에 나갔는데 바람이 매우 거칠게 불었습니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내 머리 속에 한가지 강력한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는데 그것은 제가 인도에 선교사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이러한 경험에 따라 인도에 가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일까요?
또, 만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얘기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어떤 특별한 느낌이나 인도를 받은 적은 없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수많은 인도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인도에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 사람이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교회를 세운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일까요? 자신이 초자연적인 인도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알려달라고 구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구하지 말고 이미 알려주신 뜻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뜻을 모두 밝히 드러내서 알려주셨습니다. 이미 알려주셨는데 자신에게만 특별한 뜻을 알려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과 진리로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에 순종한다면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건 간에 섬길 누군가가 있고 주님을 섬길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순합니다.
다윗은 이것에 관해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3:36을 보세요. “이는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세대를 섬기다가 잠들어 자기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보았으나” 다윗은 자기의 가족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또 이웃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세대의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세대나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은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면서 선교지에 가면 사역을 시작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교사로 부르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 어머니, 아내, 남편, 동생, 형, 누나, 아들, 딸부터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마을, 지역에서부터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미개한 종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바로 우리 마을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만 하나님을 모르는 미개한 종족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나님을 모르는 미개한 종족입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되면, 어느 특정한 장소에 가면 그때부터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특별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을 내 안에 모셨으면 그것으로 특별한 것입니다. 더 이상 특별한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속한 마을과 직장과 가정에서 주님을 섬기세요. 다른 특별한 지역에 가서 사역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러나 그 특별한 지역에 가기 전에 여기서는 주님을 섬기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능력이 없어서 못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못 섬기는 겁니다.
여러분이 속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먼저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세대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입니다. 각자 섬기는 곳이 다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는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모든 부분에 다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는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각자 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 동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목사님이 대신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전해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목사가 대신 가서 복음을 전해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맡겨졌습니다.
여러분의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여러분의 일입니다. 교회에 오면 설교자와 주일 학교 교사가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아이는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목사나 주일 학교 교사의 책임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에게는 여러분이 진리를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세대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의 마을, 여러분의 거리에서 여러분이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5.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을 보세요.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에게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갈 6:7-8) 제가 술을 마시고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제 가정과 간증을 망치게 된다면 그것이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의 경우 여러분이 뿌린 대로 거둔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죄인이 마귀의 뜻대로 행해서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 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일에도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어떤 상황과 문제와 생의 어려움과 고난에 마주치더라도 미움과 쓴뿌리와 복수심과 야비한 영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왜 구원받은 사람들이 다른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아세요? 바로 쓴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마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지 아세요? 그들의 마음에 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은 안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지만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불평할 것보다는 감사할 것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나오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혜택이며 부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개인 승용차가 있는 분도 있습니다. 개인 승용차가 없어도 편리한 교통의 혜택을 입고 편하게 교회까지 왔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이 집에 에어컨이 있고 여러 벌의 옷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굶지 않고 식사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고 있지만 이전 세대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부입니다. 우리는 주식이 떨어지거나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지만 이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이 떨어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지만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버릇없는 어린 아이마냥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며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보다 편하게 살면서 하나님께 부족하다고, 더 달라고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죽어서 하늘나라로 데려가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정욕과 욕심과 욕망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는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과 환경과 문제와 고난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무엇인가를 구하는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순수한 감사로 이루어진 기도를 드려보세요. 주님께서 해 주신 일로 인해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려보세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은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계시고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셋째 하늘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고 성경을 주셨고 일용할 양식과 입을 옷과 형제 자매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집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때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뜻 밖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의 마음이 감사함으로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받은 것에 감사하고 없는 것에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주님을 찬양하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감사와 찬양으로 시작해 보세요. 여러분에게 주신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주님께 감사를 드려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당한 모든 문제가 결국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여러분을 선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감사하지 않는다면 결코 이것을 알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6.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단순한지 아세요? 하나님의 뜻은믿는 자들이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세대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전서 2:15-16을 보세요. “그리함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자유로우나 너희의 자유를 악을 덮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로서 행하라.”
이 구절은 우리를 비평하는 자들에 대해서 두 가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고 무식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믿으면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어리석고 무식하기 때문에 진리를 믿는 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적인 것을 정죄하고 바르게 살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들과 논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론에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비평한다고 해서 반론을 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 대한 거짓 비방에 맞서기 위해서 하나 하나 반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거짓으로 꾸며 비방할 때 여러분이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그러한 것에 대꾸하지 말고 의롭고 선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비방하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맞서서 반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비방을 받더라도 사랑과 은혜와 친절과 진리 안에서 행하면 사람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우리를 비방해도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이 아닌 행위로 우리가 정당함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말로서 우리가 정당함을 입증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선한 증거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해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 사람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티커를 만들어서 자동차에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붙이고 다닐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인터넷에서 기독교를 비방하는 말들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비방하는 것에 대꾸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변명하고 해명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대로 어리석은 대로 두고 무식한 자는 그대로 무식한 대로 두고 우리는 바르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든 간에 우리는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행하는 것만이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을 침묵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육신적인 싸움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비방을 받더라도 언제나 주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여 비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사를 뒤돌아보면 기독교는 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서 간증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개신교가 천주교를 비방하면 천주교는 군대를 보내서 비방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천주교가 개신교를 비방하면 개신교도 군대를 보내서 비방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럽에서의 전쟁은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의 전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신교든 구교든 기독교 자체를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이들은 자신들을 비방하는 상대방을 문자적으로 침묵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로 인해서 상대방의 비방은 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대포와 총과 고문기구로 비방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은 것입니다.
비방하는 상대방을 조용하게 만드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은 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되이 행하면 모든 비방은 멈추게 된다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방법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이 비방을 받는다면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 대한 비방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방을 없애는 빠른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확실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절반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를 악한 이 현 세상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믿는 자들이 모여서 교제를 나누고 새로운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리 세대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비방을 받을 때 그것을 반박하지 않고 계속해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굉장히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쇼핑몰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쉽습니다.
